• "반MB는 이미 하나의 정당이다"
        2010년 05월 20일 01:19 오전

    Print Friendly

    1. ‘독자적 진보정치론’과 ‘비판적 지지론’의 20년 대결

       
      ▲필자(사진=정상근 기자) 

    87년에도 그랬다. 선거로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와 이들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92년에도 그랬다.

    신한국당 김영삼의 당선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김대중을 지지해야 한다고. 그래서 전국연합은 김대중과 정책연합을 하고 지지선언을 하였다.

    97년에는 좀 더 화려했다.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은 김종필의 자민련과도 연합하고, 재야와 시민사회는 김대중에 대해 또다시 비판적 지지를 하였다.

    2002년에는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정치상품을 홍보하면서 ‘이번만큼은 지지해달라’라는 전혀 새롭지 않은 논리로 다시 비판적 지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하였다. 2007년에도 마찬가지 논리가, 그리고 지금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반MB라는 이름으로 떠돌고 있다.

    오래전에 이런 글귀가 어느 술집에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늘은 현찰, 내일은 외상’ 직접 경험하고 닥치는 것은 언제나 오늘이고, 오늘의 내일도 닥치면 오늘이 되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였지만 오랫동안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비판적 지지론의 논리가 거의 이와 똑같다. 지금은 시급하고 중요하니 유력한 보수정당에게 힘을 주고, 여유가 조금 있는 내일은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겠다고 것이다. 그러나 그 내일은 오지 않고 언제나 오늘의 논리가 지배한다.

    87년부터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흐름은 이러한 비판적 지지론과 대결하고 극복해온 역사이다. 언제나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이 무엇이고 차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것이 독자적인 진보정치론이었다. 그렇게 민중당,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고민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자정당론과 고립-자족주의는 달라

    분명하게 하자. 독자 진보정당론이 고립주의, 자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도 연대를 고민하고 국민여론과 흐름에도 민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진보정치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관점과 방향에 서서 수렴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힘과 영향력이 부족하고 미약하더라도 그것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고민해야지, 힘과 영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보신당은 반MB를 당연히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신당의 전략은 결코 될 수 없다.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 중 누가 우승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우승권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한국 축구를 그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노총, 민중운동의 ‘정치’와 시민운동단체의 ‘정치’가 맥락과 결이 달랐던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금 당장의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의 선택 틀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키우고 성장시키는 정치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는 늘 차악의 정치를 선택해왔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지지하고,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그러기에 당연히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힘과 영향력을 가진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게 되는 차악의 선택이라는 정치 전략을 선택해온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관이어야 하는가?

    솔직히 하나 고백해야 할 것은, "무슨 길이 올바른가?" 라는 질문이 "그 길을 유능하게 개척하고, 풍부하면서 지혜롭게 걸어왔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뼈아픈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2. 과연 한국형 국공합작인가?

    일각에서는 반MB연대라는 이름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이 연합한 것을 한국형 ‘국공합작’으로 논리화하기도 한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 거대하지만 무능한 중국국민당과 작지만 탄탄한 중국공산당이 전략적인 연합을 하고 항일공동전선을 형성한 것을 한나라당이라는 절대악(?)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과 나머지 소수정당이 연합한 것을 비유한 논리이다.

    이것은 두가지 성격을 가진 논리이다. 하나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이 아니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연합이 일시적 의미가 아니라 중장기적 성격을 갖는 정치 전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국공합작과 유사한 정치실험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긍정적일 수가 없다. 뚜렷하게 대중들에게 인식된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 독자적인 항일전쟁을 수행할 정도의 전투력과 물리력,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가진 정치지도자를 가졌던 중국공산당에 비유할 수 있는 정당이 지금 반MB연대 진영에 과연 있는가? 라고 자문했을 때, 대답은 ‘없다’이다.

    반MB 연대의 비극성

    최소한 국공합작을 할 당시에는 형식적으로는 국민당이 주요 보직과 역할을 맡았지만 공산당이 맡은 역할과 비중도 작지 않았고, 상당한 지역에서는 항일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다. 허수아비 공조가 아니라 실질적인 공조였고, 그 상당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중국공산당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지방선거의 반MB연대에서 민주노동당이 대부분 민주당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명백한 ‘팩트(사실)’이다.

    그래서 중국의 국공합작과 같은 정치모델을 유연하게 고민하고 선택할 수도 있다고 분명히 생각하지만, 현재의 반MB연대가 국공합작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견강부회의 논리일 뿐이다.

    오히려 현재의 선거연합과 유사한 것은 92년 민주당 김대중 후보와 정책연합이라는 것을 하고, 지지를 선언한 전국연합의 사례이다. 전국연합의 입장에서는 일방적 지지가 아닌 정책연합을 통한 지지라고 보겠지만,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92년 전국연합이 민주당과 정치연합을 한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정치집단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상 민주당 김대중후보를 지지한 수많은 지지그룹의 하나였을 뿐인 것이다. 그 역사가 지금 반복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하나의 사회단체였고, 지금은 상당한 기반과 지지도를 가진 독립적인 정당이기에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기반을 자신 스스로 허물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3. 반MB는 이미 하나의 정당이며, 반MB연대는 한국형 양당제론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국회에서 의회활동을 고민할 때 다양하고 적극적인 연대를 추진했었다. 무엇인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막기 위해서 그 목표를 위해 다양한 연대를 추진했다.

    때로는 개혁연대라는 이름으로 열린우리당과 연대도 했었고, 때로는 야당연대라는 이름으로 한나라당과 공조를 하기도 했었고, 또 때로는 진보연대라는 이름으로 국회 바깥의 민중진영과 시민사회와 연대하기도 했었다. 그게 연대이다. 연대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질 때 실현되고 강력해지는 것이다.

    반MB연대는 말 그대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이고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이다. 그것은 당연히 한나라당을 낙선시킬 수 있는 유력정당과 유력후보에 대한 지지운동이다. 그 논리는 워낙 단순하다. 그래서 강렬하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논리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든다면, 대전시장 선거에서 현재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고 민주당 후보는 한참 떨어져서 3위를 달리고 있다. 반MB의 논리이면 민주당 후보는 당선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자유선진당 후보를 지지하고 한나라당의 당선을 막는 것이 논리적 순서인데, 현실은 또 전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웃기는 논리이고 웃기는 현실이다. 그래서 진보신당이 반MB에는 찬성하지만 ‘묻지마 연대’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반MB 대안연대, 가치연대를 주장하였지만, 그 힘은 미약하였다.

    웃기는 논리, 웃기는 현실

    지금의 정치지형을 보면, 한나라당에도 친이, 친박세력이 있고, 민주당에도 내부에 주류, 비주류세력이 있듯이 현재 반MB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은 독립적인 정당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정당 내에 존재하는 계파, 의견그룹 정도의 위상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반MB는 하나의 정당,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이 논리와 이 흐름은 궁극적으로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이라는 양당제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이것은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에게는 스스로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는 독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국민참여당은 성격이 다르다. 본질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한 뿌리에서 나온 내부 분파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에서 자민당-사회당의 보수/혁신체제가 무너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자민당 내의 일부 세력과 사회당의 다수세력,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지원을 받아서 일본 민주당을 창당하고, 일본 사민당과 공산당의 혁신세력을 주변부 정당으로 전락시키고 자민당과 민주당의 보수양당제를 만들어가는 정치지형 변화과정과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보수양당제로 촉진하는 역할을 민주당의 유능한 전략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의 일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생전에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민주노동당에게 상당한 지분을 보장하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 강기갑 대표가 괜찮은 정치인 같다”는 발언을 한 것도, 그리고 이해찬 전 총리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에게 상당한 애정과 관심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위의 국공합작 논리와 연계하여 본다면, 반MB는 하나의 통합된 보수야당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민주당과 소수정당이 전략적 동맹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이름은 보수양당제로 붙여질 것은 명확하다.

    4. 민주노총의 고뇌는 이해하나 5/13 중집결정은 역사적 퇴보이다.

    민주노총의 5월 13일 중집에서는 기존에 결정하였던 정치방침, 즉 ‘진보정당의 통합과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진보정당의 후보 단일화를 촉진한다. 복수의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할 경우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정당 후보를 단일화하거나 단수의 진보정당 후보일 경우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한다’는 결정을 사실상 폐기하였다.

    이 방침에 새로운 심의기준을 5월 13일 회의에서 추가하였고, 그 내용은 ‘진보정당이 포함되어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반MB연대 후보와 (단일화 하지 않은)진보정당의 후보가 양립한 경우, 확정된 심의기준 3항을 준용하여 민주노총 후보/지지후보로 보지 아니한다. 단 조합원은 예외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서로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양쪽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데, 이상규 후보가 노회찬 후보와 단일화를 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는데, 이 경우 기존 방침에 의하면 노회찬 후보가 민주노총 지지후보가 되어야 하지만 5월 13일 중집에서 결정한 새로운 심의기준을 적용하면 노회찬 후보와 한명숙 후보 중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인터넷 언론의 한 기사 구절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은 기괴한 논리가 등장한다 "… 민주노총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후보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한 것이 아니고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사퇴했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노동당 후보가 살아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서울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민주노동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가 양립한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이상규 후보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의식적으로 단일화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 한명숙 후보 안에는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가 살아있다는 기괴한 논리인 것이다.

    민주당 안에 민노당 있다?

    논리를 더 나아가면 민주노총의 기존 방침은 이상규 후보와 노회찬 후보가 단일화하라는 것이었다. 둘이 단일화하지 않으면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회찬 후보와 한명숙 후보 중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회찬 후보와 한명숙 후보가 단일화하라는 것을 방침으로 결정한 것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정치방침, 즉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그리고 현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전술방침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대중조직, 노동조합운동의 본질이 단결에 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화 이후, 특히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의 처지가 곤란하고 어려움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중운동에 어려운 부담과 조건을 만드는데 진보신당도 일정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곤란한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노총의 독자 진보정당의 건설과 성장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을 무력화시키고, 민주당이라는 보수정당 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예전에는 민주당과, 지금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시키려는 한국노총식의 정치와 질적으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대중운동이 가지는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5월 13일 민주노총의 중집 결정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역사에서 중요한 퇴보이다.

    5. 무엇을 다시 생각할 것인가

    민주당과 연대도, 공조도, 협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할 수는 없다. 민주당 내에는 보수파도 있고, 개혁파도 있을 것이다. 같은 노무현 정부 출신이더라도 민주당에 속한 사람, 국민참여당에 속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의 차이일 뿐이다.

    약간의 포지션 차이가 있더라도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 신자유주의 세계관과 진보정치의 그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민주노동당 10년과 진보신당 2년으로 대변되는 진보정치의 독립적인 역사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경제/노동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후적인 보완장치를 추진하는 것, FTA와 초국적자본, 투기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극화 등 부정적 후과에 대해 일부 보완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 교육 의료 주택정책 등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경쟁주의를 옹호하면서 공공성을 거론하는 것, 부동산정책과 재개발정책 등에서 자본과 이윤의 논리를 정면에서 규제하고 재구성하지 못하면서 몇가지 보완책으로 땜질하려는 것, 이것이 민주당 정치와 정책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그러기에 그 원인에 대한 근본적 처방과 새로운 접근은 없고 일부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만 보완책을 모색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길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반성이 된다. 진보가 민주당과 동일하게 반MB를 외치고 실천하더라도, 왜 진보는 민주당과 운명공동체가 될 수 없는지를, 진보정치의 정책과 대안, 대한민국 개조 비전이 민주당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대중적으로 알려내는데 부족하고 미흡하였다는 점을 반성하게 된다.

    진보진영 남 탓할 때 아니다

    우리의 힘이 부족하고 미흡하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존재하는 여전히 대중성 있는 일부 인사들의 역량에 의존하려는 관성과 자족주의적 정치에 안주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기에 반성하게 된다. 당 대표단의 한 사람이기에 그 반성에서 더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이와는 별개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사고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공조하면서 사실상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훼손하고 진보정치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에서 퇴행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진보적 시민사회가 사실상 민주당 지지 활동을 하고 있다는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잘되었다. 저네들은 어차피 그런 세력이었다. 저런 세력과 공조는 안하는 것이 더 낫다. 오히려 진보신당의 입지가 넓어지고 독자 발전을 할 기회가 높아졌다” “애초에 저런 세력들과 무엇인가를 해볼려는 것이 문제였고 잘못이었다”라는 발상과 생각을 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기도 어렵다. 남 탓으로 자신의 올바름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 남 탓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고 실천하는 것에는 그 발전과 성장에 우호적인 환경과 조건을 형성하는 실천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환경과 조건을 악화되는 것을 방관하면서 혹은 그러한 흐름에 삿대질만 한다고 해서 진보정치의 성장과 발전이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정치전략이 후퇴하고 민주노동당이 보수양당제 담론에 포섭되어가는 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성장 발전을 가로막는 것만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성장과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들의 위기는 우리의 기회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지방선거의 성적표가 어떠하든 이러한 환경과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치의 전략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진보정치 항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 같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