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좌파, 완주를 바란다"
        2010년 05월 19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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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프레시안>에 고정칼럼을 올리는 김종배씨의 글 ‘유시민과 친노벨트를 더욱 환영함’이라는 글 때문입니다. 그의 글 속에서 도를 넘어서는 ‘진보’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와 무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시사평론가의 현실 재구성 방식

    필자가 그의 글을 읽은 것은 노회찬을 ‘양념정치인’이라고 규정하며 훈수를 둔 글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처음 글은 그의 글에 대한 반박의 글을 매개로 해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말단에서 정치학을 연구,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그 제목에 끌려 보게 되었습니다. 시쳇말로 하면 ‘낚인 것’입니다.

       
      ▲ <김종배씨의 칼럼 ‘유시민과 ‘친노 벨트’를 적극 환영함’ (자료=프레시안)

    하지만 그 제목, 내용과 무관하게 너무 ‘교훈적인 글’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히 한 ‘시사평론가’가 그 어떤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글이라는 점에서, 즉 반면교사로서 기능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다음의 두 구절이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더 자극한 부분이기에 인용합니다.

    “….지방선거가 MB 대 친노 구도로 짜이면 동시에 검증대에 오른다. 이론과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진보는 논외로 하고, 정권을 잡고 정책으로 구체화 됐던 진보, 다시 말해 국민 앞에 실체를 보였던 유일무이한 진보가 다시 한 번 국민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른바 진보정당의 중간지대에 위치하면서 때론 야권 재편의 걸림돌로 때론 야권 재편의 대안으로 거론되던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환영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부여됐기에 환영하는 것이다.”

    먼저, 그에게 ‘이론과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진보’는 논외입니다. 물론 소재의 선정은 글 쓰는 이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글에서 그 ‘진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수구매체들이 더 친절한 듯합니다.

    누굴 ‘진보’라 칭했나?

    최소한 그들은 한 마디 덧붙여 주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철거민들의 투쟁현장, 4대강사업반대투쟁의 현장 등에 가면 항상 그들을 볼 수 있다고. 그들이 몽매한 대중들을 선동하여 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에다 이런 정보 하나 더 붙여주면 어떨까요.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구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감시당하고 수배당하고 쫒기고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입니다. 최소한 그런 정보를 몇 자 더 적어 넣어주었다면 그래도 그 진보가 누구인지는 대강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이들이 아니라면 그 ‘이론과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진보’를 정확히 적시하던가요.

    물론 이러한 요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애초 ‘이론과 구호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표현은 그 어떤 사실, 진실과 무관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말만 앞세운다.’는 내용으로 진보를 색칠하고 무시, 배제하기 위해 동원된 언술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에게 진보는 ‘보수를 위한 양념’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없어도 될 고명’이라고 말해주지 않아서요.

    하지만 원래 진보정치가 ‘양념, 고명의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기도 힘들 듯합니다. 아마도 그는 천성적으로 ‘이론과 구호’를 싫어하는 이 같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그것이 어디 학습을 한다고 다 되는 것입니까.

    무엇보다 ‘가난한 자들’, ‘고통 받는 자들’의 아픔을 ‘자기 것’이라고 느끼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것이 ‘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히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현실적인 자들’보다는 그 ‘이론과 구호만을 외치는 분들’, 어찌 보면 그 ‘대책 없는 분들’에게 더 정이 갑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더 미안하기도 합니다.

    "밤엔 여당하는 진보정당?"

    그래도 이 정도의 무시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 다음 문장이 더 걸작입니다. ‘민주당과 이른바 진보정당의 중간지대에 위치하면서 때론 야권 재편의 걸림돌로, 때론 야권 재편의 대안으로 거론되던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환영한다.’라는 평가 말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그가 지적한 진보정당은 ‘이론과 구호 속에서 존재하는 진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경쟁력 없는 민주당’을 우측에 거느린 친노벨트의 왼쪽에 끼워 넣어 주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라는 것이 곧 드러납니다.

    먼저, 저는 친노정당 혹은 그 세력이 진보정당을 포함한 야권 재편의 중간에 위치하여 어떤 의미 있는 논의를 진행했는지, 혹시 진보를 자임하는 어떤 정당이 그들과 내밀하게 그런 일을 진행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역시 그는 그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정보를 주었더라면 ‘진보’라는 작자들이 저런 세력, 혹은 인간들이었구나, 과거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그렇게 하였듯이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식의 짓거리들을 하며 대중을 우롱하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을 기르는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 그가 그 세력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으로 활동한 그 진보정당이 지금 커다란 압력을 받게 되어 ‘묻지마 반MB’를 실천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괜한 추론마저 하게 됩니다. 그 과거가 폭로될까 봐 두려워서 말입니다. 설마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정권 잡은 진보만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요구와 추론은 애초부터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정권을 잡고 정책으로 구체화됐던 진보’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경쟁력 없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친노세력의 왼쪽에 있는 그 진보정당조차도 그냥 장식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입니다. 진보정당 앞에 굳이 ‘이른바’라는 말을 붙여 넣은 것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이겠지요. 이렇게 하여 그에게 제도 안팎의 모든 진보는 결국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제 이런 과정을 거쳐 이 ‘시사평론가’가 설정한 커다란 목적이 달성됩니다. 무엇이냐구요. ‘유일하게 의미 있는 진보’는 ‘이론과 구호 속에만 있지 않고 정권을 잡고 정책을 구체화시켰던 친노세력, 그의 재결집체인 국민참여당’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보수(친노세력이 유일한 진보로 격상되면, 자연히 수구는 보수가 되겠지요)’, 즉 ‘이론과 구호 속에만 있지 않고 정권을 잡고 정책을 구체화시켰던 보수정치세력의 후계인 이명박 정권’과의 양자 대결을, 그야말로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으로 상정하게 됩니다. 너무 과도한 해석입니까.

    지금 저의 목적은 친노세력을 매개로 한 이 ‘시사평론가’의 ‘반MB연대’ 주장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자유이고 새로운 주장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친노세력이 처한 조건이 절박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유일무이한 진보로 노무현과 그의 후예들을 격상시키는 것을 넘어 자기 마음대로 진보를 재단하여 이리저리 세우고 어르고 뺨 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위에서 수구정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바로 그 정치세력을 다시 한 번 평가해 달라고 때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 사회에서 수구정치세력을, 수구매체를 제외한다면, 웬만한 이들은 이런 주장을 대놓고 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부끄러운 행태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보좌파,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그렇기에 그에게 한 마디 충고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급박할 때일수록, 품위도 지키고 인간적 예의도 지켜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시사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한 표라도 더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라 믿기에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의 글을 보면 그것을 알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사평론가의 글에 토를 다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혹시 필자처럼 그의 글을 보았을 ‘진보좌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을 통해 지금 자신들의 존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돌아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지지도가 함께 움직이다가 그나마 선거철이 되면 홀로 지지율이 빠지는 것에 대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혹시 스스로 그것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숙고, 성찰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말합니다. 진정 진보좌파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진보연대가 불가능하다면 독자적으로 완주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보좌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독자적인 자존과 명분을 세우는 것 또한 당선에 버금가는, 즉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정치적 행보이자 성과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잊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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