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따지 않는 봄의 미인
    2010년 05월 19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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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의 계절이 돌아왔다.

살아있는 것들은 그때그때 맞추어 제철에 나오는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 몸이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고파서 먹는게 아니라 몸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그 절기에 제철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과 내 몸이 상통(相通)하는 일종의 ‘제례(祭禮)의식’이다.

매실이 절기로 갖는 의미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첫 결실이기도 하고 새해 새봄 입맛을 돌게 하는 기분 좋은 첫번째 자극이다. 매실이 담고 있는 사연도 많은 사람들이 연중행사의 하나로 생매실로 술도 담고, 엑기스도 만들고 짱아찌도 담는다. 또 겹겹이 사연도 많아 필자의 생각과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결과물중의 하나다.

   
  

전남 광양 옥곡 매실농장

따르릉!
“금년에는 생매실을 언제 공급하시나요?”
“예, 6월 20일이 넘어야 합니다.”
“아니 다른 데는 보통 5월이나 6월초면 이미 끝나버리는데…”
“우리는 완전히 나무에서 제 본성대로 익은 다음에 수확을 해서 보내드립니다. 그래야 매실 본연의 맛을 드러내거든요. 송구스런 이야기지만 고객들이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내려가서 뵙지요.”
며칠 전의 단호한 응답을 기억하고 기대감을 가지고 광양에 내려갔다.

   
  ▲ 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번 단련된 다음에 나오는 법이며,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는 법이다. <주역>

매화는 엄동설한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설중매(雪中梅)를 통하여 꺾일지언정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하고, 희고 맑은 색과 야하지 않고 은은한 향기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겼다.

매화는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유교적인 가치관으로는 군자(君子)를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부처의 화신(化身),
도교에서는 신선(神仙)으로 보았다.

민간에서는 주렁주렁 열리는 매실의 풍요로움을 다산(多産)의 컨셉으로 보았다.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피는 봄의 전령으로서 ‘선구자’를 상징했고 봄바람을 타고 오는 미인(美人)을 상징하기도 했다.

매실을 왜 망종 이후에 수확하나?

망종은 양력으로 6월 6일경이다,
매실은 꽃이 핀 후 열매가 결실되어 조금씩 자라게 되는데 5월 중순이 되면 제법 매실이 모양을 갖춰 겉으로 보기에 별차이가 없어 보인다. 매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씨가 여물고, 표면의 솜털도 벗겨지게 된다. 색깔이 연두색에서 짙은 청색으로 그리고 나중에 완숙되면 노란색으로 변하게 된다.

   
  ▲ 5월 3일, 어린 매실(왼쪽사진)은 솜털이 보송보송 여린 빛이 역력했다. 조금더 자라면 청매실이 된다(오른쪽사진)

흔히 청매실이 몸에 좋다고 선호하는 소비자들 때문에 푸른 매실은 다 청매실인줄 아는데 사실 청매실이란 품종은 없고 매실이 노랗게 익기 전의 상태를 ‘청매실’이라고 부른다.

매실씨에는 청산배당체(아미그달린)가 들어있다. 이 친구는 살구씨, 복숭아씨, 은행, 푸른콩에도 일부 들어 있는데 우리의 장내효소와 결합하여 시안산화합물을 형성하여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하지만 장내효소와 결합하지 않도록 아미그달린만 추출하여 혈액에 주사하면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하여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흔히 항간에 매실의 독 운운하는 것은 바로 이 아미그달린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미그달린은 풋매실에는 씨뿐 아니라 과육에도 다량 함유되어있다. 그러니까 매실과육에도 있던 아미그달린이 매실이 점점 자라나면서 매실씨에만 남게 되는 것이다. 매실이 완전히 익어 씨가 단단해지면 매실과육에는 아미그달린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아미그달린은 설탕과 소금이나 알코올에 의해 분해되면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고 우리 몸에 유리하게 흡수되게 된다.

무릇 모든 과실은 제대로 익어야 제 성분을 내고 효능을 발휘하는 바, 풋매실의 과도한 아미그달린 섭취보다는 안전하게 제대로 익은 매실씨에 의해 얻는 아미그달린 효능이 더 안전할 것이다.

거기다 5월 달에 수확한 매실에 비해 6월 중순 이후에 수확한 매실 구연산 함량이 무려 14배나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우리가 매실을 먹는 가장 큰 이유가 ‘피로회복과 체질개선’이라고 한다면 완숙된 매실 즉 ‘망종 이후의 매실’을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이옥분 여사는 망종 이후 시기를 잡아 수확을 하여 나누는 것이다. 좋은 값을 받고 아니고를 떠나 물 흐르듯 순리에 맞춰 제대로 된 매실을 공급해야 ‘오래가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함초롬 이슬 머금은 매실농장

   
  ▲ 농장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제일 나이 많이 먹은 40여년된 매실나무다.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다. 중후한 맛, 묵직함이 느껴진다.

전남 광양 옥곡IC를 빠져 나오면 집은 옥곡 중학교 인근에 있고 함초롬이슬머금은 매실농장은 한참을 더 올라가 해발 500m높이에 있다. 예전에 다랑이 논이었던 곳까지 알뜰하게 매실을 심어 오늘의 농장을 일구어냈다.

함초롬농장은 그 지역 제일꼭대기에 자리잡아 오염원이 전혀 없고, 바람과 햇빛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 농장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제일 나이 많이 먹은 40여년된 매실나무다.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다. 중후한 맛, 묵직함이 느껴진다.

   
  ▲ 농장 산꼭대기 정상부근에 있는 삼형제바위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해준다. 차근차근 사이 좋은 삼형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묻어있을까?

오래오래 가는 일

   
  ▲ 풀과 나무가 같이 큰다. 무농약인증농가 표지판

생산과정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풀이 다 자라나면 베어서 나무 밑에 놓아서 거름되게 한다. 풀도 농장의 한식구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크도록 배려하고 손작업으로 베어내 밑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또 일체의 오염원이 없는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충분히 익혀서 따므로 맛과 향도 덩달아 좋은 편이다. 하늘,바람,구름,땅,햇볕…. 높은 산 위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풍성함은 함초롬 매실의 품질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익은 것을 골라 따야 하므로 이 험한 농장비탈을 오르내리며 일일히 사람 손으로 선별하여 딴다. 따낸 것을 딸들하고 죽 늘어 앉아서 선별작업을 하는데 딸애들이 참 옹골차다. 푹신한 포대에 매실을 부어 깔아놓고 기준크기에 미달하거나 상처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 골라낸다. 한번만 하면 될텐데 딸애들은 한번 더 뒤집어서 똑 같은 작업을 한번 더 하면서 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귀하게 해야 고객들이 알아주고 우리들의 일을 오래오래 할 수 있도록 하거든, 엄마!”

   
  ▲ 수확철이 되면 시집간 딸들이 총 집합이다. 하나하나 빈틈없이 고르고 또 고른다.

식초나 가공상품 만들 때는 4~5년이 걸려도 기다려서 만든다. 화학첨가물을 넣어 인위적으로 맛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들은 오래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옥분 여사와의 대화에서 자주 나온 ‘오래가는 일’이란 말과 뜻이 오래 남는다. 상품이 차고 넘치는 지금 세상에서 작지만 잔잔한 감동으로 ‘소비자들의 마음’과 직거래하려는 몸짓인 것이다.

산에서 나는 약재(산야초)에도 애정을 쏟아 고객들이 어디어디가 아프다 소식이 들어오면 농장에 자생하는 약초를 캐서 보내준다. 고객은 감동해서 뭉클한 심정을 전해오기도 한다.

7남매이야기

엄마는 늘 밥상머리에서 틈나는대로 책을 읽었다. 그런 자연스런 분위기가 보이니 초등학교 동생들은 쉿! TV 꺼! 힐끗힐끗 엄마 옆에 앉아서 죽 책을 본다. 7남매가 2년 터울이라 옷물림, 책물림이 자연스러웠고, 여러 손을 거친 책은 아주 헌책이 되서 부엌 아궁이 불쏘시개로 쓰곤 했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면서 엄마는 그 책을 하나하나 읽고 계셨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가 너무 멋있었다. 엄마는 공부하란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했다. 그렇게 그 애들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들을 했고 7남매 모두 원하는 곳에서 자기하고픈 공부들을 한껏 마칠 수 있었다.

– 둘째딸 문미경씨 회고 –

   
  ▲ 이옥분 문희주 부부와 7남매가족들

이옥분 여사는 위로 딸 여섯을 두고 막내로 아들 하나를 낳았다. 산꼭대기 마을에 살면서 워낙 가난한 살림에 비단장사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대구 섬유시장에서 비단을 끊어 남편은 등짐을 지고, 엄마는 머리에 이고 뒤로는 애 하나를 업고 양손에 방물꾸러미를 들고 경상도로 전라도로 비단을 팔러 다녔다. 꼬물꼬물 조무래기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학교를 보내야 했고 악착같이 살아내야 했다.

부모가 장사하러 돌아다녀야 하므로 아무래도 학교근처에 있어야 그나마 남은 아이들이 조석을 끓여먹고 학교 가기가 수월타 싶어 학교근처로 집을 옮겼다. 그런 이유이기도 했지만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으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공부를 제대로 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도 일견 가졌다.

"애들은 애들대로 나하고 애 아빠는 애 아빠대로 온 식구가 고생 많이 했지요.
우리는 우리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

그 살아온 이야기를 죽 하는데 필자인 나도 눈물이 퀭했다.
이야기 나누다가 퀭해지면 옷깃을 여미고 다시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가 또 마음 쨘해지고…

필자의 어머니도 고등어(생선) 행상, 과일 행상, 인삼 행상으로 나와 내 여동생을 키워냈다. 유년시절에 우리 집은 대전시 태평동에 살았다. 석양이 뉘엿거릴 무렵 뚝방길 저쪽 지는 해를 등뒤로 엄마가 하루 종일 고단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왜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철이 없어도 한참 없을 때다. 지금은 홀쪽 하시지만 당시만 해도 몸이 좋으신 편이었다.

이거 팔아서 얼마 남고 저거 팔아서 얼마 남고…. 새끼들 눈에 밟힌다며 장사가 잘된 날 즐거워 하시던 엄마가 생각이 나서…. 팔다 남은 갈치쪼가리로 엄마가 끓여주신 갈치조림이 얼마나 맛나던지….
엄마는 비린내를 아주 싫어하시는데 그때는 장사까지 하셨으니 엄마의 생활력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옥분 여사, 농장 일을 이어받을 준비하는 둘째딸 미경씨, 그리고 나.
셋은 이야기 하다 말고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빨개졌다. 각자는 엄마가 그리웠고 사무쳤고 이옥분여사는 애들이 생각났을 터….

안병권의 고향보따리에서 눈시울이 뜨거운 채로 현장 인터뷰하기도 처음이다.

닭을 키우는 엄마

농장 길을 올라가는데 이옥분 여사가 닭모이 걱정을 한다. “그럼 먼저 주고 올라가시죠, 뭐. ^^”
그랬더니 반색을 한다.

이옥분씨는 오래 전부터 닭을 키웠다. 처음에는 사위들 오면 주려고 키웠다. 사위가 여섯이나 되니 ‘사위사랑은 장모’라 씨암탉 잡아서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자식들이 또 제 자식들을 낳고 나서부터는 닭들이 낳는 알을 손자손녀들에게 먹이는 재미에 30여년째 닭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에게 먹이고픈 심정 그대로 ‘장모의 사위사랑 닭 키우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닭들에게는 매실을 먹인다. 그래서 그런가 잔병치레 안하고 건강하고 실하게 자라나 자기들의 역할을 다하는 닭이 된다.

   
  ▲ 장닭과 암탉들을 방사하여 키운 계란이다. 필자에게도 한 판을 주시길래 얼른 받았다. 그 집 사위가 되는 기분으로…^^

엄마의 꿈

   
  ▲ 이옥분 여사와 둘재딸 문미경씨

이옥분여사는 사람은 배운만큼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수준에 맞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고 믿는다. 해서 몸소 몸으로 책을 읽고 사람사는 도리를 보여주며 아이들을 키웠다. 대학은 입학만 시켜주마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주의 였다.

농장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갈 때다. 아이들 이야기좀 해주십사 청했다.

큰애는 말이 없이 과묵하고 진중하고
둘째는 활발하고 민감한 편이고
셋째는 더하고…..
넷째는 대학연구실에 있고
다섯째는 고교선생님으로 지가 시켜버릇하며 야물다
여섯째는 약사로 일하고
막내는…

한마디 한마디
한아이 한아이
고스란히 품고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2005년도 전까지는 매실을 생산해서 순천장에 내다팔고 알음알음 전화로 주문 받아서 팔고, 농협 같은 기관을 통해 출하했다. 그러던중 힘없는 농민상대로 물량과 가격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경험하고 나서 한바탕 뒤집어 엎었다. 그리고 발길을 이내 끊고는 소비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찾았다. 해서 셋째딸이 공부하여 농장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그게 2006년도의 일이다.

그 덕분에 점점 외연이 넓어져 이제는 제법 많은 고객들이 함초롬 이슬머금은 농장을 알아주게 되었고 광양기술센터에서 2010년 그렇게 소원하던 매실가공시설지원자금을 내려 보내줘서 지금 착공을 하고 시설준비가 한참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시설이지만 평생 꿈을 이룬 것 같고, 이옥분 여사의 꿈과 희망을 매실에 버무릴수 있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사업을 크게 키우거나 외부지원에 의존하는 컨셉이 아니고 그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농장도 발전하고 아이들도 잘살고 고객들도 덩달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꿈이다. 그니의 말대로 ‘오래 하는 일’을 하고 싶고 ‘오래 하는 일’이 되고픈거다. 금년 가을 무렵부터는 이옥분 여사는 매실가공상품들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의 어려서부터 꿈이 고아원을 차리는 일이다. 엄마는 조건 없이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지금도 새마을 부녀회일원으로 노인들 목욕시키시고 지역 행사에 발벗고 나선다. 내게 다소 해가 되더라도 상대방이 불상타 싶으면 도와줘야 직성이 풀린다.

어렸을 때 기억이다. 어느 날 엄마가 미용실에서 젊은 아가씨를 만났다. 집도 없고 갈데도 없는 그녀가 측은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먹이고 재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애기(여동생)를 맡겨놓고 매실밭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와보니 애도 없고 그 아가씨도 없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맨발로 그 높은 집에서 뛰어 내려와 마을입구까지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가씨가 애기를 데리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손에는 집의 시계와 패물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호되게 혼을 내고 아이의 손을 나꿔챘다.

– 둘째딸 미경씨의 회고 –

하지만 엄마는 시계와 패물은 그녀의 손에 그냥 들려서 보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녀가 불쌍했던것이다.

   
  

엄마는 항상 자식들보다 먼저 간다.
진자리 마른자리 살피고
모든 근심걱정 감싸 안고 저만치 앞서 간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엄마의 저 마음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지난 40여년….

매실을 머금고
자식을 머금고
함초롬이 이슬 머금은

엄마가 저만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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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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