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 2% 부족…더 세게”
        2010년 05월 19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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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무난한 토론회였다. 극우정당을 자임하는 자유선진당의 지상욱 후보가 “국가 파산은 복지 때문이 아니라, 건설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세상은 많이 변했고, 4대 동시선거가 최초로 이루어졌던 1995년에 비추어 보자면 후보들의 시정(市政) 이해와 정책 제시도 괄목상대할 수준이었다. 물론, 18일 MBC 토론회에서 4명의 서울시장 후보가 내보인 핵심공약의 매력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한명숙의 무상급식과 노회찬의 무상보육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한명숙은 이번 지방선거의 전체적인 구도에 맞추기 위해 이미 잘 알려진 무상급식이라는 아젠다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은, 한명숙이 무상급식을 제시할 것으로 예측하고 이와 차별화하면서도 30~40대에 대한 집중 소구(訴求)로써 무상보육을 제시한 것 같다. 둘 다 훌륭하다.

       
      ▲ 왼쪽부터 오세훈, 한명숙, 노회찬, 지상욱 후보

    지상욱이 제시한 자립형 시민건강보험은 근래 진보진영 일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가기준(national minimum)에 추가 서비스를 더하는 현대 지방자치의 맥락에서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TV토론의 시간 제약 때문인지 설명이 충분치 않았고, 지상욱이 그 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두어 차례 반복됐다.

    불성실하고 오만한 오세훈

    오세훈은 불성실하거나 오만한 것 같다. 다른 세 후보가 대단히 획기적인 복지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 후보는 사교육비 학교폭력 등을 없애는 ‘공교육 살리기’를 하겠다고 제시했다. 공교육 살리기가 복지 확대보다 조금이라도 뒤진 과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공약이 전두환 때부터 귀가 닳도록 반복된 것이고, 그처럼 끊임없이 약속했음에도 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비추어 보자면, 오세훈은 ‘아무 것도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굳히기 만으로도 낙승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선거는 게임일 뿐 아니라 유권자와의 대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오세훈 진영은 무시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두 선두 후보의 약점이라는 하나고등학교와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조금 더 진전되었다. 오세훈은 매끄러운 말솜씨로 귀족학교를 서민학교처럼 변신시켰고 앞으로의 선거운동에서도 계속 같은 논리를 반복할 것 같다. 지난 정권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실제 폐기했던 것 아니냐는 오세훈과 노회찬의 공격에 한명숙은 나름의 변명을 했지만, 궁색하게 들렸다.

    문제는 열린우리당 정권이 무상급식 공약을 폐기하는 데에서 한명숙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는 지점에 있지 않다. 18일 토론회에서 한명숙이 밝힌 시말(始末)은 사실처럼 보이는데, 이는 거꾸로 당시의 한명숙이 실질적 정책 결정권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한 후보가 토론회에서 보여준 몇몇 모습은 아직은 정치할 만한 깜냥으로 보아주기 어려운 지상욱 후보에 못지 않았다. ‘노무현의 이미지 좋은 대독(代讀) 총리’에서 이해찬이라는 막강한 후견인의 종용으로 ‘준비되지 않은 서울시장 후보’가 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불안함이 엿보였다.

    한명숙의 원죄

    한 후보는,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회단체의 보조금을 중지하지 않았느냐는 노회찬의 질문에 “보조금 끊은 건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한 후보가 오 후보를 을러대는 ‘거짓말’이라는 공격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한명숙은 총리실 산하에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2006년 5월 17일 함세웅 위원장과 공동주재로 위원회를 열어 불법 폭력 시위에 참여한 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결정한 바 있다.

    마무리 발언에서 보여준 오 후보와 한 후보의 지지 호소는 강력했다. “미래 세력과 과거 세력의 전쟁”이라는 오세훈의 규정은 노무현 기일을 이용하여 강력한 표 결집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한명숙은 “진짜와 가짜”라는 프레임을 썼는데, 이는 두 정치세력에 대한 자기 규정인 동시에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장관과 총리를 거쳤다는 그의 전력상 ‘진짜’ 이미지를 잘 고수하기는 만만치 않을 듯하다.

    노회찬의 호소는 두 후보에 비해 호소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노 후보는 “이번 선거는 뭐니 뭐니 해도 오만한 이명박 오세훈 … 야당이 돼야 하지만 … 패기, 추진력, 배짱”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

    머뭇거리는 노회찬

    첫째, 정권 심판이나 야당 승리 논리는 한명숙의 것이지, 노회찬의 것이 아니다. 둘째, 개인의 부각은 미미한 진보신당 세력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걔네가 되겠어?”라는 유권자들의 회의는 현실의 힘에 대한 판단에서도 나오지만, 집단의 비전에 대한 투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노회찬의 마무리 발언은 매우 미력하지만 진보신당이 가진 장점을 잘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었다.

    18일 토론회 내내 한명숙은 추상과 당위 만을 내세웠고, 오세훈은 현실적 제약 조건이라는 몰염치한 변명을 되뇌었다. 이에 비해 노회찬은 당위와 예시를 적절히 섞어 가장 설득력 있는 정치인상을 보여줬다. 시정 이해도와 정책 제시 능력도 노회찬이 가장 돋보였고,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呼名)할 때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부족하다. 노회찬은 거칠지만 큰 울림을 주는 정치인이었다. 소소한 득표 전술에 얽매이지 말고, 본래의 모습을 머뭇거림 없이 보여주는 것이 노회찬의 가장 확실한 선거 전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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