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보복 절대 반대 이유
        2010년 05월 15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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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요즘 외국 언론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한국어 계통의 단어는 ‘김정일, 주체, 태권도’와 함께 ‘천안함’입니다.

    세상이 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저 같으면 솔직히 별다른 궁금증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발표의 내용을 듣지 않아도 대체로 이미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불보듯

    강온의 조절은 있겠지만, 아마도 어느 정도 ‘이북 책임’을 언급 내지 암시할 듯하며, 이와 동시에 우리 측의 조치 내지 보복을 언급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 예측은 어긋나지 않을 듯합니다. 여태까지의 한국 정부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저들의 내부 사정이야 저로서 알 수 없지만, 한국의 고급 군인들의 공식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군 내부에서 ‘북 책임’을 거의 의심하지도 않는 것 같고, 정부는 정부대로 발언의 강온 조절을 할 수 있지만 군의 판단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판단이란 꼭 어떤 구체적 ‘증거물’에 입각한 것도 아닙니다. 일단 NLL 지역은 사실상 ‘저수준 지속 해전’의 현장이고, 여태까지 거기에서 몇 번 남북 해군간의 혈전들이 있어왔고, 남북 군사 관계가 최근 크게 악화됐다는 정황 등은 ‘북 책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될 듯합니다.

    그 다음에 판단하는 주체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지요. 예컨대 "1970년대에 아 해군이 설치한 기뢰"다 내지 "피로 누적이다" 하면 군 내에 책임 추궁은 불가피할 터인데, ‘적군’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 더 편한 처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악마 북한’이 저지른 일이라면 책임 추궁 대신에 ‘보복’을 하고, 군사긴장 분위기 속에서 예산을 계속 늘리면 되니까요. 이렇다 할 만한 물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그런 부분들도 궁극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원한 미해결 가능성

    제 학생들이 계속해서 제게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보는가"를 묻고 있는데, 저는 "아마도 영원한 미해결 사건이 될 듯하다"고 보통 답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는 설령 – 한국내 주류의 주장대로 – ‘북괴 소행’이라 해도, 아마도 ‘완벽한 범죄’에 가까운 소행이었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2년 간의 사실상의 반북 정책에 열을 받은 북한 내부의 강경파들이 설령 ‘보복’의 의미에서 이 일을 감행했다손 치더라도, 저들은 절대 자살하려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를 빌미 삼아 한-미가 대규모 충돌 내지 전면전을 일으킨다면 궁극적으로 북한으로서는 ‘끝’이니까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절대 흔적을 남겼을 리는 없습니다.

    특히 후국 북조선의 나라님이 호금도 황제를 알현하러 연행 길로 가기 몇 주 전에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 더욱더 ‘완벽에 가깝게’ 했을 터이고요. 그리고 흔적이 없는 한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러시아 속담대로 "잡히지 않았다면 도둑은 아니다" (Не пойман – не вор)라는 이치죠. 물증이 없는 이상은, 북한을 무조건 탓하는 것은 북한의 열악한 국제적 위치를 이용하는 일종의 ‘횡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생각해보시죠. 만약 북한 해군의 한 배가 갑자기 침몰했다면 북한이 아무리’남한 탓’을 계속 해도 세계에서 그걸 누가 들어주었겠어요? 호금도 황제도 비록 후왕의 말이라 해도 아마도 들어주지 않았을 걸요. ‘힘이 바로 정의’인 법, 경제적 힘이 북한의 약 25배가 되는 남한의 발언력도 이 사회진화론적 정글 속에서 그 만큼 더 강하단 것이죠. 그러나 남북한 관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 ‘발언의 힘’을 악용하는 것은 전혀 올바른 처사는 아닙니다.

    같은 무죄 추정 원칙 적용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그 어떤 ‘보복’도 근거 없는 ‘국가 폭력’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대국가는, 비록 상황적 증거들이 상당히 있더라도 확증이 없는 이상 유력한 용의자라 해도 풀어주지 않습니까?

    정치적으로도 백해무익

    마찬가지로, ‘확증’이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도 없는 이 엉터리 ‘정치 재판’에서 검찰과 판사를 겸업(?)하면서 북한에다 ‘유죄판결’을 내려 이 판결을 바로 보복을 통해 실천에 옮긴다면, 이는 무법천지의 이야기지 근대적 법치와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국제법적으로도 ‘폭력’ 이상이 아닐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도 백해무익일 것입니다. 생각해보시지요. 한국 해군이 장차 어떤 빌미를 잡아 보복의 의미에서 다음 차례의 또 하나의 서해교전을 일으킨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양쪽에서 실제로 전면전을 전혀 바라지 않기에 국지전 이상은 안 돼도, 결국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군에 끌려간 수십 명의 남북한 젊은이들이 비명에 죽는 일 외에 그 어떤 결과도 없을 것입니다. 남한 젊은이보다 북한 젊은이들이 더 많이 죽을 확률은 높지만, 이는 과연 우리가 기뻐해야 하나요?

    북한이 다음 차례의 서해교전에서 패배한다 해도 이는 그 정권의 안정성에 하등의 영향도 없을 것이고 (‘미제와 남조선 괴뢰에 희생된 조국의 렬사’를 기리는 열풍은 오히려 ‘선군’ 정권을 이념적으로 더 강화시키죠!) 심지어 남한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에도 별로 영향을 안줄 거에요.

    결과가 뻔한 서해교전이 일어난다고 해서 유빠가 박빠로 변하지도 않고 영남 토호들의 영향권에 있는 백성들이 갑자기 호남 ‘성주’들의 말을 더 잘 듣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남북 청년들의 죽음과 국방 예산 증액

    유일한 결과는, 국가에 맞설 힘도 국가적 폭력의 최악의 형태인 징병제의 망을 벗어날 만한 요령도 없는 이 땅 양쪽의 씨알들이 양쪽 ‘상전님’들의 명을 받들어 서로 뜻없이 죽이는 일일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 검투사처럼 말에요. 물론 양쪽 국방 관료들의 예산도 늘어나는 게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는 참 이상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재력이나 권력이 있는 자들이야 당연히 꽤나 빠지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젊은 남성들이 ‘대안이 없는 징병제’의 그물에 걸려 군에 가서 빠짐없이 살인 훈련을 받죠. 살인 훈련을 받았다가 무슨 이유로든 죽게 되면 대개의 경우에는 국가와 사회는 이를 묵살합니다.

    예컨대 그 수많은 안전사고의 희생자라든가, 상명하복의 억압적 체제와 상사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신 분들이라든가, 이 분들은 대개 ‘주류’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재수 없이 국가 폭력에 ‘잘못 걸린’ 씨알들이니까 이 체제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나 이들의 죽음의 원인으로 ‘악마 북한’이 지목만 돼봐요. 당장에 전국민이 애도하는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일이야 사실 지극히 맞는 일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자면 대다수 한국 남성들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 당한 채 군에 끌려가는 그 원천적 사실부터 애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 각자 선택의 자유, 소신의 자유를 존중하는 모병제 도입 등을 고려해보는 게 군에서 희생 당하시는 분들을 애도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아닐까요? 적어도 미래의 희생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모병제면 보통 전문가인 병사들의 능력과 태도 등이 더 좋아, 사고의 건수라든가 희생자의 수 등은 많이 줄어들죠)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에 그 무슨 보복을 외치면서 같은 수의 북한 젊은이들을 ‘정당하게'(?) 죽이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해결이라고 보는 셈이지요. "이에 이, 눈에 눈"이라고요? 아니, 소망교회와 같은 강남 지배층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구약성서만 읽나요? 신약성서는 인 읽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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