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폐소생술, 죽음에 이르는 시술?
        2010년 05월 17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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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의 올드 팬이라면 지난 99년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호세의 퇴장, 롯데 선수들의 시합거부 등 이야기거리가 정말 많았던 이날 경기였지만 가장 극적인 장면은 역시 임수혁의 홈런이었습니다.

    아, 임수혁

    롯데가 3-5로 지고 있던 9회초 공격. 임수혁은 대타로 나와 임창용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홈런을 때려냅니다.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지고, 롯데는 11회초 김민재의 결승타로 삼성을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지요.

    유난히 극적인 홈런이 많았던 임수혁이었습니다. 두 번의 대타 만루 홈런과 역전 끝내기 홈런, 동점 홈런 등등… 짧은 선수생활에도 불구하고 롯데 팬들이 오래도록 임수혁을 기억하는 건 아마 이런 극적인 장면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한 장면

    그 임수혁이 2000년 4월 18일 잠실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2루를 달리다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곤 산소호흡기를 매단 채 식물인간으로 지낸 지 9년 10개월. 올해 2월 7일 임수혁은 힘겹게 붙들고 있던 마지막 숨을 내려놓습니다.

    임수혁이 쓰러지자 언론과 야구팬들은 일제히 야구장의 응급의료 체계를 비난했습니다. 그가 쓰러진지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더라면 소생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음 이야기를 읽어본 뒤 같이 고민해보시지요.

    2006년 5월 <뉴스위크>에는 ‘To Treat the Dead’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시술’이라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뇌세포와 심장세포는 5분이 지나면 죽는 것이 아니고 1시간이 지나도 살아있으며, 둘째 산소가 차단된 지 5분이 지난 세포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갑자기 다량의 산소가 공급되면서 오히려 세포가 죽게 된다는 겁니다.

    죽음에 이르는 시술

    논문을 쓴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응급의학과 랜스 베커 박사팀은 심혈관계 응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대신 산소와 혈액을 매우 낮은 수준에서 서서히 공급하고, 혈액온도도 33°C까지 낮춘 결과 심박 정지 후 10~15분이 지난 환자의 84%를 소생시켰다고 합니다. 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환자는 고작 15%만 소생했습니다.

    놀라운 내용이 아닙니까?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죽음을 부르는 심폐소생술’을 당장 중단해야 할 텐데요. 다음 사례를 보고 좀 더 생각해보시지요.

    존엄사 문제로 유명했던 김 할머니를 기억하십니까? 2008년 2월 폐렴으로 입원한 뒤 조직검사를 하다가 뇌손상이 생겨 3일만에 식물인간이 되신 분이죠. 그후 대법원 판결로 ‘존엄사할 권리’를 인정받아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했던 김 할머니.

    모두가 며칠 만에 돌아가실 거라고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안정된 호흡을 유지하면서 201일 동안 살아 계시다가 지난 1월 10일 돌아가셨습니다. ‘존엄사’ 운운했던 법원이나,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끝까지 반대했던 병원이나 모두 우습게 되어버렸죠.

    임수혁도 김 할머니처럼 진작 산소호흡기를 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전에 병원으로 옮기면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양의학의 최근 연구성과와 오래 전 동양의학

    더욱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베커 박사의 이 새로운 주장이 아주 오래 전 중국과 한국의 의서에는 정설로 다뤄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후한시대의 의사 장중경은 『금궤요략』이란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침에 자기 손으로 목을 매어 죽은 것을 저녁에야 알았는데 몸이 싸늘하였다… 빨리 이불 속에 편안하게 눕히되 가슴을 반듯하게 해주고 목을 똑바로 놓아준 다음 기가 통하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죽은 사람의 입과 코를 막아주어 숨이 차게 해주면 살아난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발로 환자의 양 어깨를 디디고 손으로 머리털을 활줄처럼 팽팽해지게 잡아당기면서 늦추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사람은 손으로 환자의 가슴을 자주 문질러주고 또 다른 한사람은 팔다리를 쥐고 굽혔다 폈다…

    이 내용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과 코를 막는 겁니다. 응급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부의 산소공급과 급격한 충격을 차단하고 독자적인 생존체계를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다음 몸을 펴주고 마사지를 해서 서서히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산소를 급격하게 공급하면 활성산소가 만들어져 인체를 공격하는 치명적인 독소가 된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강제적인 산소공급 방식을 계속 고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꺼져가는 불씨에다 거센 바람을 불어넣거나 커다란 장작을 얹어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단식 후 비어있는 위장에 급격하게 음식을 공급하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 전 심장쇼크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밤새도록 팔다리를 주무르기만 해서 회생시킨 사례가 한의사들 사이트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제 친구는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자 십선혈(손가락의 손톱 밑 중앙으로부터 약 2∼3㎜ 떨어진 곳에 있는 혈)에 피를 내서 소생시키도 했습니다.

    지난 2004년 청주, 2006년 제주도 소방본부를 시작으로 많은 119대원들이 위급 상황에 쓸 수 있는 한방 응급조치를 익히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종래의 심폐소생술과 강제적인 산소공급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속히 이뤄지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김 할머니, 제2의 임수혁이 소생의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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