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큰 희생 각오하고 강정 지켜내야
    진보 영원한 소수, 계산 너무 하지마"
    [인터뷰-문정현 신부] “내가 이렇게 살아난 건 기적이야”
        2012년 05월 12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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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8일 강정에 상주하며 주민들과 같이 투쟁과 평화의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 만났다. 사자후라는 식상한 표현으로 신부님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못할 것 같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온 몸의 기를 실어 격정을 토하시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저 강정이라는 고향 제주의 살 한쪽이 악랄한 괴물에게 할퀴고 유린되는 것이 가슴 아파서 촛불을 들었을 뿐인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신부님의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따금 고개만 끄덕이는 것 밖에 없었다. 감히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28일 제주도 강정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그냥 신부님의 말씀을 물 흐르듯 듣는 것이었다. 여기에 코멘트를 다는 것이 오히려 신부님의 생각을 읽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있는 그대로의 인터뷰를 올린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는 역시 독자의 몫이다. <필자 주>

    * * *

    “경찰이 내 앞에 와서 쓱 밀치는 거야”

    문상빈 추락사고가 난 이후 신부님의 건강이 무척 염려됩니다. 몸은 어떠신지요? 사건의 경위도 좀 말씀해주십시오.(4월 6일 오후 1시 20분경 제주도 강정포구 남방파제 삼발이 위에서 문정현 신부가 7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해양경찰이 미사를 방해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또 신부님이 추락하여 의식을 잃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인 데도 해양경찰은 신부님의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다)

    문정현 그 당시 사건으로는 죽은 몸이었지. 당시 주변에 한 30여 명이 기도를 하고 있었어. 성금요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금요일 날,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기도,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한 14처의 각 처마다 기도를 하며 가는데, 14처가 남방파제 끝이었던 말이지. 제1처는 멧부리, 그 다음에 사업단 정문, 현장입구 정문 순서였지.

    사실 내 걸음으로는 힘든 걸음이야. 단 한 번도 그렇게 걸어본 적이 없어요. 오토바이 타고 왔다 갔다 했지. 그날 처음 따라 간 거야. 상당 부분을 제가 제의를 입고 주관을 했고 나머지는 예수회 신부님이 주도를 했는데 사실 그 남방파제는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지. 구럼비를 보기 제일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힌 다음부터는 삼발이 끝까지 가서 동방파제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야.

    인터뷰 중인 문정현 신부.

    거길 잘 알아요. 거기 다니면서 내려다보면 참 섬뜩해. 그런데 그 날을 그렇지 않았어. 왜냐면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지. 구럼비로 들어가려는 우리 활동가 둘이 경찰 두 명에게 쫓기는 상황이었어. 그때 정신 바짝 나더라구. 그래서 막 고함을 쳤지 “위험해, 위험해~”라면서.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성공을 했어. 붙잡히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가는 걸 보니 마음이 급해지더라고. 저 사람이 빨리 헤엄쳐서 구럼비까지 무사히 가야할 텐데 하는 마음이었지. 그래서 “빨리 가”하고 외치고 돌아서는데, 바로 내 뒤에 경찰이 보이더라고. “야 너희들, 여기서 나가! 나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고 외치는데, 이 경찰이 바로 내 앞으로 와서 나를 쓱 밀치면서 위치를 바꿔 버리더라구.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내가 중심을 그만 잃어버리고 미끄러지면서 추락한 거지. 미끄러지는 순간, “어?”하고 외쳤는데, 순간 정신을 잃었지. 아무것도 기억이 없어. 당시 주변 사람들 40여 명은 전부 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방문객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었다. 신부님과 같이 천주교 평화운동을 오랫동안 함께하고 계시는 오두희 선생님이 계속 인터뷰를 하라며 문을 닫아주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라요. 사람 소리가 들렸어. 나랑 같이 활동하시던 예수회 김정욱 신부님이신데, 그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지. ‘내가 아직 안 죽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또 필름이 끊기더라고. 그리고 잠깐 정신이 돌아왔는지 누가 우는 소리가 막 들렸어. 그리고는 또 필름이 끊기고.

    서귀포의료원에 갔는데 의료원에 들어간 것도 모르겠어. 눈을 떴는데 원불교 교무님 두 분이 서 있는 게 보이더라고. 그러고 사람들이 왁자지껄 했고. 그 다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어. “X-레이 찍고 제주대학교 병원으로 옮기자”는 소리는 들었지.

    병원으로 옮긴 다음부터 통증이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뭐 죽도록 아픈지는 모르겠고. 결과를 보니 척추 뼈 3~5번 골절, 손가락 골절, 어깻죽지 골절이 됐다고 하는데… 발뒤꿈치가 상처는 없는데, 금이 간 건지 어떤지, 아프긴 많이 아픈데 잘 모르겠어. 그 이외에는 괜찮아.

    의사가 최소한 3개월, 6개월은 걸릴 수 있다고 했지. 그 얘기를 금요일에 했는데 다음 날 늦은 오후에 찾아와서는, “오늘 오후에 척추 수술을 두 분 했는데 두 분 다 하반신 마비입니다. 그런데 그 두 분은 2m도 안 되는 곳에서 떨어진 분들입니다. 근데 신부님은 7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아마도 신부님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군. 한마디로 기적이란 얘기지.

    “한 마디로 기적이라는 얘기지”

    의사 선생이 회진 올 때마다 “혹시 양 다리에 전기가 오듯 찌릿찌릿하거나 뻐근함을 느끼지 않느냐?”고 매번 묻더라고. 괜찮다고 하니 그러면 복대를 차고 조금씩 걸어보라고 했지. 등만 좀 뻐근하고 괜찮다고 하니 어느 날 의사 선생이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러면 이제 퇴원해도 되겠다고 하더라구.

    문상빈 퇴원하신 후 군산에서 요양을 하시기로 했는데 왜 바로 강정에 오셨어요?

    문정현 군산에서 두세 밤 잤나? 근데 집에 도저히 못 있겠어. 마을회관에서 사이렌 소리가 막 들리는 것 같고, 양 정문에서, 포구에서, 멧부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모여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리고 군산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내가 밤에 잘 때 막 고함을 지르더래. 당장이라도 제주엘 내려가고 싶은데 아무도 내가 제주에 가는 걸 용납을 안 해. 그래서 내가 비행기 표를 끊어버렸어.

    활동량이 엄청 줄었지. 승용차를 타고 내릴 때도 통증을 느껴. 그저께 내가 그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는데 사업단과 현장 입구 정문의 분위기가 험악하더라고. 이전보다 훨씬 험악해져 있어.

    미사 시간이 됐는데도 레미콘 차량이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픈 걸 잊고 그걸 저지했어. 근데 용역이 나를 붙잡으러 오더라고. 그래서 레미콘 차 밑으로 들어갔어. 그러니까 용역들이나 경찰들이나 우리 식구들이 모두 난리야. 우리 활동가들과 주민들까지 와서 막 울면서 나오라고 하더라고. 경찰은 사람들을 연행하려고 여경까지 배치돼있는 상황이고.

    여성 활동가 두 명이 내 옆으로 와서는 나오시라고 하면서 “신부님이 안 나오면 저희가 연행됩니다. 저희는 계속 활동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연행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나와 주세요.” 근데 이 사람들 맘을 알지, 어떻게든 나를 나오게 하려는 말이었지.

    경찰과 삼성 직원은 뒤로 빠지고

    아무튼 참 힘들게 나왔는데, 벌써 미사가 시작되려고 해서 그 차량을 막고 미사를 했지. 그런데 미사 후반부에 양쪽 정문에 저 사람들이 스피커를 달아놨어. 해군 군가를 막 틀고 그래요. 성능이 굉장히 좋아. 그리고 막 경고방송을 해요. 뭐 5년 이하의 징역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미사 후반부에 그것이 들리고 미사 진행을 더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일어나 항의를 했지. “미사 중간에 이럴 순 없잖아. 나 얘기하러 들어가겠어. 문 열어!” 그런데 문을 열 턱이 없지. 그렇다고 누가 와서 대답하는 놈도 없어.

    근데 어디서 “야 이 씨xxx” 하는 육두문자가 나오더라고. “이 놈의 자식”하고 야단을 치는데, “야 이 씨xxx. 니가 신부야?” 하는 거야. 그래서 ‘아 이런 놈은 가만 두면 안 되겠다’ 생각했지.

    “야 니가 나를 죽여. 나를 죽일 수 있어. 죽여.”하는데 이놈이 수녀님들에게도 “야 이 씨xxx” 하는 거야. 기가 막히더라고. 처음에는 우리가 경찰하고 싸웠잖아. 아니면 삼성 대림의 회사 직원들과 싸웠고. 그런데 이놈들은 뒤로 빠지고 어디서 험상궂은 놈들이 나타나서 미사를 방해해. 미사에 대한 모독이야. 그놈들 상대하느라 완전 기진맥진 했지.

    그리고는 어제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어. 의사가 “전기가 오듯 찌릿찌릿 하냐”고 물어봤다고 했잖아. 그게 오는 거야. 이거 큰일이구나 싶었지. 그래도 오늘의 미사를 갈 수 밖에 없었어. 신부가 나밖에 없었으니까. 가서 조촐한 미사를 했지. 근데 다행히 그 현상이 아침에 한번인가 두 번인가 찌릿하긴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괜찮더라고.

    이제 5월 15일에 치료받으러 갈 건데. 그러면 그 때 이 손 기브스를 풀지, 아니면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부러진 데가 잘 됐으면 풀겠지. 허리는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맘이지. 늙은 삭신이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그래도 내가 강정을 못 떠나겠어. 내가 못 견디겠더라고. (사진을 좀 찍겠다고 하니, “그래도 내가 웃어야지”하면서 환하게 웃어주신다)

    문정현 신부.

    강정, 대추리 원죄는 현재 야당

    문상빈 자연스럽게 4.11 총선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 목소리가 높았고, 쌍용차 한진 강정 등의 민중 현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정현 저는 총선 결과에 강정 문제 해결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누누이 강정마을 회장님에게도 말했어요. “야권연대나 야권통합이 많은 지지를 받으면 그만큼 쉬워질 수는 있지만, 야권이 대승을 한다고 하더라도 또 그때 가서는 강정문제를 놓고 야권과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총선을 의식하지 말고 지난한 싸움을 하고 총선에 임하자.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라고 얘기했었지.

    이 말은 야당이 강정문제에 대해서 원죄가 있다는 거야. 대추리에 대한 원죄도 있지. 한미FTA에 대해서 원죄도 있고. 그런데 그 원죄에 대한 대응, 반성이 아주 미흡하더라고. 아주 미흡해. 한명숙 대표가 강정에 한 번 왔었지. 그때 강정주민들이 만났는데,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게 아니라 총선 바람에 한 번 만난거야.

    그때 이미 총선 결과가 불안하다고 하더라고. 그때 이(민주당) 사람들은 저쪽(새누리당)에서 FTA, 해군기지 이야기가 나올까 겁을 먹는 것 같더라고. 박근혜가 입만 열면 “FTA, 해군기지는 자기네(민주당)가 시작한 것이다”고 떠들고 다니니까. 그래서 나는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응해라고 요구했어. 말이 나올까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했는데 민주당은 적극적이지 못했어.

    총선 날 병원에서 밤잠을 설쳤는데, 결과가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 생각을 안했어. 그래도 몇 석이라도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거기에 못 미치니까 역시 아쉬운 마음은 크지. 그렇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우리가 좌절하고 있어야 하나? 결코 좌절할 수 없어.

    저 구럼비가 다 깨졌다 하더라도 해군기지 백지화 싸움은 계속돼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거지. 총선 결과를 기대해서 우리가 싸움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제는 우리가 더 큰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투쟁을 지속해야 해.

    정당 얘긴 정말 하고 싶지 않아

    대선도 역시 마찬가지야. 정치라는 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했지만 불만족스러운 것일 수 있고, 기대를 안했는데 기대 밖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거지. 이제 정치인들이 강정의 해군기지를 백지화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어.

    문상빈 민주통합당이 한진, 쌍용차 문제와 비정규 문제를 해결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정현 맞지. 대추리와 부안 핵폐기장 문제 좀 봐. 참여정부 때 새만금 간척사업 때문에 재벌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을 봤잖아. 그래서 용산참사까지 이어지지 않았어? 원죄는 민주당에게 있지. 이렇게 자격미달 수준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권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면 그런 과거에 대해 정말 절절하게 참회하고 반성을 했느냐 하면, 아니라는 거지. 그 안에서도 기득권 싸움으로 이어지고, 힘은 없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정말 걱정돼. 근데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새누리당에게 뺏기면 회복 불능이고, 한 20년 후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문상빈 기왕에 정당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문정현 아, 정당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진보는 영원한 소수

    문상빈 이것 하나만 묻겠습니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에만 치중해서 진보의 원칙을 져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과 그 외의 진보정당들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보여야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 상황을 바꿔 나갈 수 있을까요?

    문정현 쉽게 말하면 ‘진보는 영원한 소수’야. 무슨 얘기냐면 진보로서의 원칙,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돼서 진보의식을 갖게 되면 그 자체는 혁명이야. 혁명을 일으킬만한 그런 진보적인 생각, 이것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소수’이고, 정말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나왔다면 그 당원들도 많아질 수 없어. 그러나 열성적인 당원은 따라와요. 그것이 소수라 이거야. 그것은 굉장한 가치야. 여러 사람이 당을 만드는, 여러 사람이 한 뜻을 가지고 뭉친 소수야. 이것은 소수정당으로 정말로 앞서 나가는 사람이 되고, 미래를 열어가는 당이 돼야 되는 거죠. 그런데 계산을 너무 많이 해.

    그런 생각으로 통합진보당을 만들었고, 거기에 진보신당은 들어가지 않았고, 녹색당이나 사회당은 여기서 무시당해 버리고. “우리 한 번 뭉쳐보자” 이런 게 아니었죠. 힘 될 사람만 뭉친 거지.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다 합쳐라, 다 합쳐라.”고 했지. 그런데 그렇지 못했지. 또 진보의 가치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했는데, 그 수준도 못 됐고. 허허, 나 이거 뭐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정당인도 아닌데…”

    정치 해먹으려 운동했던 자들

    문상빈 정부와 해군에서 외부 세력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지금 강정에 와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지킴이들과 예전 80~90년대 활동가들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들을 모두 경험하고 접해보신 신부님의 느낌은 어떠신가요?

    문정현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조직체계가 분명했어요. 전대협이라든가 전노협이라든가 하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적인 형태였지. 그 조직을 더 발전시켜 질서와 힘을 가지고 영향도 주고 그래야 되는데, 그게 와장창 깨진 것이 소위 386(이제 486이라고 부른다고 그러던데)들이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해체되었다고 생각해요. 청년운동도 마찬가지고. 그건 나쁘게 얘기하면 저쪽(정권과 보수)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아. ‘정치 해먹으려고 운동했던 것들이야’ 라는 비난을 받을 빌미가 되는 거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네들, 지금 재야에 남아서 원로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정치에 들어가서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요런 수준으로 끝나는 거냐? 이렇게 되려고 정치세력화 물결에 휩싸인 것이냐? 호랑이 잡으러 정치에 들어간다고 하더니 호랑이한테 먹힌 거 아니냐?”는 것이야. 분명한 답이 안 나와요. 그러니까 (운동의) 조직 형태는 해체되고 산화해버린 거야.

    그러나 자기 취향에 맞는, 보다 나은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생각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도처에서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지. 환경에서부터 남북문제라든가 여러 형태로 새싹이 나오고 있는 거야.

    ‘외부인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저 자들이 우리를 욕되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야. 왜냐면 제주에 오는 데는 여권이 필요 없고, 해군기지는 제주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해군, 경찰은 외부 것들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해군은 외부 아닌가? 경찰은 외부 것들 아닌가? 우리를 외부인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제주도 토박이 외에는 모두가 외부 것들이야. 외부 세력이라는 말은 아주 못된 발상에서 나온 거야.

    이 쪼그만 한반도에서 반쪽도 억울한데, 동서로 나누고 하는 것을 어떤 놈들이 만들었냐고? 정치하는 놈들이 만들었잖아. 이제는 또 제주도를 떼어내 딴 동네로 만든다고? 이건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

    사랑이란 경계를 뛰어 넘는, 나라를 뛰어 넘는 것이라는 일반논리, 이것조차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갈라놓는 거지.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지. 그러니까 콧방귀를 뀌는 거지.

    문상빈 이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신부님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활동가들과 평화운동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서 싸우고 있는데, “강정주민들의 참여는 너무 적은 것 아닌가?”라는 말들이 간혹 들립니다. 문화제 때 내려온 사람들 중에도 간혹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나쁜 놈들 얘기지”

    문정현 (단호하게 질문을 자르며) 그건 나쁜 놈들의 얘기야. 내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는 6년 동안 지난한 고통 속에 살아 온 강정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온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내가 해군기지를 막아낸다? 아니죠. 여러 힘을 합치면 막아낼 수 있는 거지만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거 다 알아요.

    내가 추락사고의 부상 이후에도 집에 가서 며칠을 지내지 못하고 내려 온 이유도 강정 주민들 때문이에요. 이렇게 고통 받고 소외되고 외면당하고 비판받고 하는 강정주민들 때문에 와 있는 거야. “번창하고 으리으리한 곳이라면 여기를 왜 와?” 그럼 그런 말을 던지는 당신들은 뭐했어? 평화 비행기 타고 한 번 왔다고 그냥 할 일 다 한 것이 아니야. 그 정도 가지고 해군기지 막을 수 없어.

    그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 번이라도 더 와야지. 지금까지 이 투쟁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건 그래도 강정 주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야. 나는 대추리에서 경험했어요(신부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주민들이 주저앉으면 다른 활동가들은 있을 근거가 없는 거야. 주민들이 그래도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의 발판이 있는 거야.

    한번 생각해 보슈. 이 집 주인도 부회장이야. 금년 농사 60% 소출밖에 못해. 그 원인이 마을회장이 감옥에 들어가서 마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하우스 문 열고 닫아야 하는데 잘 안되어 실농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 그 실농에 대해 그네들이 이 사람한테 돈 한 푼 보태준 거야? 아니잖아.

    (오두희 선생님이 살짝 문을 열고나오며 “신부님, 인터뷰하는 게 아니고 싸우시는 것 같아요.”라며 웃으면서 말한다)

    아니 열나잖아. 그러면 저희들은 주민들에게 싸우라고 주문을 했어? 아니잖아. 나는 여기에서 강정마을 회장 얼굴 보고 살아. 그 사람 감옥에 갔을 때 나도 감옥에 가는 거야. 왜냐면 강동균 마을회장의 얼굴은 마을주민들의 얼굴이야.

    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동정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주민들이 침체돼 있을 때 우리들이 더 와서 힘차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집회에) 주민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는 싸움을 하지 말자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지.

    그런데 아니 무슨 인터뷰를 한 시간이 아니고 이렇게 오래하는 거지?

    마을 사람들 내부 갈등 풀려는 움직임 다행

    문상빈 질문 딱 두 가지만 더 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마을 노인회에서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 입장에 있는 주민들 모두를 모아서 단합대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알기론 찬성하는 분들도 초대했는데 많이 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에게도 물어보니 “공동체 복원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해군기지가 백지화되어도 이 (깊게 패인 갈등) 문제를 풀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것이 필요할까요?

    문정현 그게(깊어진 갈등을 풀어보려는 시도) 좀 빨리 온 것이 다행이에요. 아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4.3을 보세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잖아요.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잖아요. 저주하는 마음, 두려움, 공포 속에 침묵으로 있었지만 그래도 긴 세월이 지나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섞이잖아요.

    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집안 사이에 혼사가 이루어졌다 이거야. 그러면 거기에서 나온 거는 가해자의 피도 있고 피해자의 피도 있는 거야. 이럴 경우에는 가르마 타기(양쪽을 갈라지게 하는 것)가 힘들어지는 거야. 하지만 상처와 트라우마는 계속 되는 것이죠.

    강정의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은 누가 만들었어? 해군이 만들었어. 조카가 작은아버지 목을 따버리겠다는, 그런 험악한 말을 하는 상황들, 내용상으로는 4.3이야. 아직은 피가 섞이지 않은 거지. 이런 상황에서 장본인들끼리 화해의 제스처가 나온다면, 장려해야 되는 거지.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야. 종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소망이야!

    이런 것들이 어떻게 마음대로 인위적으로 되나요? 마음이 움직여야 되는 것이고, 그렇지만 또 만났다가 더 척을 질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는 것이고. 이런 화해가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 서로가 외로울 때, 서로가 위로를 받기 위해서라도. 제발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 빨라서 다행인 거고.

    평화의 섬을 위해 투쟁

    문상빈 이 와중에 자발적으로 이런 모임을 가졌다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문정현 사실 나는 이렇게 싸우면서 찬성하는 사람들 막 욕하는데, 사실 나는 찬성하는 사람들 만날 경우가 거의 없지. 내가 여기 강정의 음식점을 자주 가지 않지만, 가끔 가서 그 사람들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내가 지금 이렇게 됐지만(찬성하지만) 그래도 강정마을 주민인데, 나도 반대하는 사람들과 척을 질 일이 없지’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 있어. 양쪽 다 그 전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 있는 거지.

    문상빈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모임이 된 것이고, 그런 마음들이 확인이 됐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는 말씀이죠?

    문정현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거야말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 수 없는 거니까. 성악설, 성선설로 나뉘지만 인간 사회에는 착한 마음이 더 있지요. 다른 마음이 형성이 되는 이런 긴 시간, 그러기에 여기에 해군기지를 만들면 안 되는 거야.

    4.3과 같은 아픈 과거도 있는데, 거기에다가 군사기지를 세운다는 건 안 되지. 때를 만나서 ‘평화의 섬’ 선포로 기회를 얻었는데. 해군기지를 만드는 것과 평화의 섬이라는 것은 정 반대의 일이거든. 우리 교리적으로도 그래. 그래서 그런 오류를 막아낸다면, 이 자체가 평화의 섬을 이루는 활동이 되는 거지.

    문상빈 긴 시간 정말 힘드신데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 * *

    * 이 인터뷰는 통합진보당 제주당원인 문상빈씨가 지난 달 28일 제주도 강정에서 진행하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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