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두네는 어디로 갔을까?
        2010년 05월 13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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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은 4월 24일부터 가을까지 4대강 정비사업 지역을 답사하여 글, 사진, 영상, 만화, 시 등으로 기록하는 ‘흐르는 강물처럼’을 펼친다.

    진보신당은 ‘긴 호흡’과 ‘기억’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당 내외의 문화예술 역량과 함께 4대강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수단과 매체에 기록하여 전하기로 하였다.

    <레디앙>도 ‘흐르는 강물처럼’에 후원으로 참여하며, 참가자들의 글과 영상 등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 ‘흐르는 강물처럼’ 답사팀 (사진=이상엽 작가)

    긴 여정은 4대강의 미래, 한강에서 시작되었다.

    컬러TV, 진보신당 녹색위원회, 사진동호회 ‘진상’ 회원들, 사진작가 이상엽, 노래패 꽃다지, 손호철 교수, 조희연 교수, 영화감독 변영주, 그리고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온 시민 등 30여 명이 답사길에 올랐다. 2010년 4월 24일 오전 아홉시가 넘은 시각, 일행은 국회의사당에서 출발해 도보로 여의도 고수부지로 향한다.

    강 건너 밤섬이 보이는 서강대교 아래서 녹색위원회 김현우 씨의 안내로 콘크리트가 놓인 한강시민공원을 걷기 시작한다. 여의도지구는 영화 『괴물』에서 괴물이 처음 출현해 시민들을 습격하는 장면을 찍은 장소다.

       
      ▲ 한강 콘크리트 (사진=이상엽 작가)

    『괴물』은 오염된 한강에서 기형 물고기가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이제 영화 속에서 보았던 버드나무와 잔디밭과 매점은 찾아볼 수 없다. 매점 대신 편의점이 들어섰고, 잔디밭 위엔 콘크리트가 깔렸다. 영화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강두의 가족이 살아남는다면, 한강 르네상스 개발 이후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강두네는 어디로 갔을까?

    삭막한 콘크리트길을 걷다 고개를 돌리자 강물 위로 민물가마우지 한 마리가 호젓하게 날고 있었다. 밤섬 위로 흰뺨검둥오리들이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날개를 편다. 함께 걷던 김현우 씨가 밤섬 옆 구조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 흰뺨검둥오리와 콘크리트 위에 세워진 공연무대 (사진=이상엽 작가)

    “밤섬은 1968년 폭파해서 없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다시 자연 퇴적으로 섬이 살아나서 점점 커지고 있어요. 현재는 새와 물고기들이 찾아와 알을 낳고 먹을 것을 찾는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기 보세요. 밤섬 옆에 카페를 겸한 공연무대를 만들고 있어요. 밤에 조명과 소음이 커서 생태계에 영향을 줘요. 밤섬을 피해 만들어야 하는데…….”

    600여 명의 주민이 살던 밤섬이 사라진 이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며 ‘그냥 내버려둔’ 그곳에 토사가 서서히 쌓이면서 모래톱이 생기고, 연못이 생기고, 습지가 만들어졌다. 생태계가 회복됐고 지금은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한강에 모래무지가 다시 등장한 것도 그네들의 서식처인 모래가 밤섬 등지에 쌓였기 때문이다.

       
      ▲ 한강 위를 날고 있는 철새들 (사진=이상엽 작가)

    자연을 파괴한 인간이 밤섬을 잊고 있는 동안, 자연은 스스로를 치유하며 아름다운 섬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자연 스스로의 치유를 두고 위정자들이 자신들이 한강을 살려 냈다고 자랑하는 것을 나는 몇 번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한강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공연무대 등으로 사용할 인공 섬 ‘플로팅 아일랜드’를 띄우는 이상한 ‘녹색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한때 죽음의 물이 된 시화호, 그리고 현재도 안간힘을 다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태안 앞바다 역시 인간의 관리와 보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과 바다의 삶의 자기의지가 되살려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강을 살리는 것은 강이다

    버드나무 군락이 무성한 밤섬을 바라보며 걷는 이편엔 물가를 따라 정원석을 쌓아 조성한 ‘자연형 호안’ 구간이 한동안 이어진다. 산의 골짜기에서 볼 수 있는 바윗더미가 물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서울시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 모래톱과 자갈밭 대신 ‘자연형 호안’을 한강 전역에 걸쳐 조성하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호안을 걷어내면 자연스럽게 모래가 쌓이는 지형이다. 물에 잠긴 정원석마다 짙푸른 녹조가 끼어 있다. 김현우 씨가 말한다.

    “한강의 수질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질소와 인이 많아 이렇게 녹조가 생겨요. 청계천도 마찬가지로 녹조가 생겨서 밤마다 관리하는 분들이 긁어내고 있어요. 물이 고여 있으면 녹조는 생길 수밖에 없어요.”

    서울시는 2014년까지 한강 일대에 72km의 호안을 쌓을 예정이다. 우리는 콘크리트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의 모델로 한강을 제시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공원과 한강의 모습은 4대강의 미래이다.

    녹조와 콘크리트길과 제방, 그 위로 난 도로, 하중도를 없애고 만든 아파트와 플로팅 아일랜드, 모래톱과 자갈밭을 잃어버린 강변. 해마다 물고기들을 방류해야 하는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수심 5미터의 어항이 바로 한강이다. 4대강 살리기는 전국의 강을 한강으로 만드는 일이다. 머잖아 우리는 한반도 전역에서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아닌 또 다른 한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본래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그곳에 물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강을 찾는다. 한강시민공원에는 시민들이 찾아와 휴일을 즐기고 있다. 비록 콘크리트로 뒤덮인 강변이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쉼을 찾아 한강을 찾아오고 있다. 유람선 선착장 앞에서 강물을 가로지르며 요트 몇 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 한강 물위에 떠있는 오리배들 (사진=이상엽 작가)

    마포대교 가까이 이르러 콘크리트 대신 자연스런 지형을 살린 구간이 펼쳐진다. 정확하게는 자연 지형을 흉내낸 곳이다. 그마저도 어색하게 물가 쪽으로 모래를 깔고 위쪽엔 박석을 깔았다. 이곳 역시 한강에 건설한 수중보를 허물고 콘크리트를 없애고 그냥 놔두면 모래사장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이다. 녹색위원회 간사 장세명이 휴대용 확성기를 잡고 설명한다.

    “홍수나 태풍이 있으면 모래가 이런 곳에 떠내려 오고 쌓이게 됩니다. 이 모래는 가져다 부은 것이고요. 강가에 있는 자갈이나 모래들 특성은 둥글어요. 물로 마모되고 자갈끼리 부딪히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둥글어지는데, 이 돌을 보면 모난 데다 너무 크죠? 홍수에 이런 돌이 떠내려 올 리가 없으니까 일부러 조성한 거죠.”

    설명을 듣는 도중 사람들이 술렁이며 한 곳으로 모인다. 물가에 죽은 자라 한 마리가 몸이 뒤집힌 채 널브러져 있다. 종종 물길을 달리는 요트에 치여 죽는 자라들이 있다고 한다. 답사 일행은 착잡한 심정으로 죽은 자라를 바라보았다. 일행 중 한 명이 혼잣말하듯 말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자라가 아닌 죽은 아이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한강, 서울이라는 거실에 놓인 어항

    답사팀 일행은 버스를 타고 탄천 합류부로 이동했다. 양재천이 탄천을 만나 합류하고 탄천이 다시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역한 비린내가 코를 스친다. 수십 미터 앞에 건설된 보 때문이다. 흐르는 물을 막아 세운 보 때문에 물이 고여 썩고 있기 때문이다. 탄천을 향해 몇 분만 거슬러 올라가면 맑은 물과 우거진 수풀, 물고기와 새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한강 잠실 수중보 (사진=이상엽 작가)
       
      ▲ 잠실 수중보 앞 녹조 (사진=이상엽 작가)

    잠실 수중보까지 강변길을 따라 걸어갔다. 가까이 들여다본 물속엔 녹조가 끼어 있다. 잠실 수중보에 도착하자 김현우 씨가 설명한다.

    “잠실 수중보는 높이가 3미터 정도 됩니다. 잠실과 신곡 수중보는 한강에 유람선을 띄울 목적으로 일정 유량을 유지시키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보를 만들면 강물은 정체되고 주변은 이렇게 직강화됩니다. 고여 있던 물이 보를 통해 내려오면서 여기 보시는 것처럼 오염물질이 쌓입니다.”

    악취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광나루지구 암사 생태공원에 다다라서였다. 도심에서 멀어지고 물이 깨끗한 강변에 이르자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그동안 지나온 곳과 달리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물이 맑다. 우리가 떠나온 잠실에서 불과 6~7km 이동한 강물의 모습이다.

    얼굴 표정이 바뀐 답사팀 일행은 곳곳에 흩어져 오랜만에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밟고 서서 갈대숲과 버드나무, 모래톱과 강 풍경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강변 가까운 곳에 자리한 하중도에 몇 그루 나무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암사 생태복원지역은 적은 예산으로도 원래의 자연경관을 회복시켰다. 인위적인 건설을 최소화할 때 자연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물새가 노니는 강과 강변의 풍경은 깨우쳐 주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 시민들의 식민지 백성’

    답사팀 일행은 서울을 벗어나 한국 유기농업의 메카로 알려진 ‘팔당유기농단지’로 향했다. 경치가 빼어나 드라마 「겨울연가」, 「첫사랑」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팔당 지역에 들어서자 도로변 곳곳에 걸린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 홍보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 강을 따라 논둑길을 걷고 있는 답사팀 (사진=이상엽 작가)

    일행은 양수리 입구에서 내려 두물머리 마을을 향해 20여 분가량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엔 주말을 맞이해 여행을 온 연인과 가족들이 길을 걷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하이힐과 구두를 신고 있다. 자연을 찾아온 도시인들의 신발에 맞춘 듯 산책로는 흙길이 아닌 시멘트길이다.

    이 지역 사람들이 ‘두머리’라고도 부르는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우리말 이름으로, 이름 그대로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이다. 남한강은 대덕산에서 발원해 394.25km를 달려 이곳에 다다르고,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해 325.5km를 달려 이곳에 다다른다.

    두 강은 이곳에서 제 이름에서 ‘남’과 ‘북’을 떼고 하나가 되어 ‘한강’이 된다. 한강은 김포를 거쳐 서해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각각 다른 곳에서 흘러온 물은 낯선 물을 만나 새 생명을 잉태한다.

    강 건너 천진암은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이고, 조안면 능내리에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김영훈 대표는 팔당 지역을 “동양과 서양의 실학과 천주학이 태동해서 만나고, 두 강이 만나고, 농민들과 물오리 떼와 철새들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의 터전”이라고 소개한다.

       
      ▲ 팔당유기농단지 내 딸기밭 (사진=이상엽 작가)

    두 물이 만나는 이곳에서 잉태된 또 하나의 결실은 유기농업이다. 팔당유기농단지는 국내 최대 친환경 유기농단지이자 유기농업의 발상지이다. 유기농지는 양평군 조안면에 15만 평, 두물머리 지역에 3만 평가량 조성되어 있다. 두 지역에서 유기농을 하는 농민은 100여 가구에 이른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수도권 친환경 농산물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기농단지로 알려지기까지 이 지역 농민들의 삶은 시련이 그치지 않았다.

    수몰민들이 일군 유기농지

    팔당 지역은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농경지와 가옥이 수몰되었고, 대규모 수몰민이 발생했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 일부가 남아 하천부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마저 그린벨트며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갖은 규제가 뒤따랐고 농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두물머리에 도착해서 만난 방춘배 사무국장이 강을 향한 농민들의 애환을 들려준다.

       
      ▲ 사진=이상엽 작가

    “여기 분들은 기본적으로 규제에 대한 한 같은 게 있어요. 방 한 칸을 늘리거나 처마를 늘리면 감시원들이 다음 날 와서 그걸 부숴버려요. 개집 하나 제대로 못 짓고 살았어요. 지금까지도 그러니까요. 규제 때문에 강에 대한 설움이 있는 거예요. 예전엔 제초제를 강에 붓는 농민도 있었대요. 술만 먹으면 입버릇처럼 강을 원망의 대상으로 보고 산 거예요. 각종 규제가 일곱 개나 되요. 여기는 농업 외의 경제 활동은 거의 다 불법이에요.”

    농민들 사이에 ‘우리는 서울 시민들의 식민지 백성’라거나 ‘물은 썩어야 한다’, ‘강이 빨리 오염돼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생존의 길을 개척했다.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고 강도 살리는 길이었다. 유기농업이다.

    팔당지역 유기농업의 태동은 1978년 정농회 회원 정상묵, 정상일 형제 부부에 의해 두물머리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웃이며 형제인 소비자에게 농약 친 농산물을 판다는 것은 간접살인’이라는 생각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자연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유기농업의 실천과 철학은 1995년 12월 유기농업운동본부 설립으로 이어진다. 방춘배 사무국장은 말을 잇는다.

    “그 당시 정보과 형사들이 정씨 형제 집으로 출근할 정도로 유기농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당시 정부 정책에 반하니까 빨갱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그때는 증산 정책이 우선이라 화학 비료나 농약을 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밭에 있는 작물을 밟아서 막 파헤쳐버리는 시기였으니까요. 그런 수모와 손가락질을 당하며 유기농업을 개척했어요.”

       
      ▲ 두물머리 대책위 천막에 붙여진 메세지들 (사진=이상엽 작가)

    유기농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때는 1995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해에 농민들과 서울시, 농협이 ‘팔당 상수원 유기농업 육성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초기엔 판로가 확보되지 않아 수확한 채소를 버리는 일도 있었다. 유기농업을 권장한 정부에서 판로 마련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트럭에 배추를 싣고 서울 시청을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팔당생명살림’은 상수원 보호구역의 제약과 한계를 극복하면서 일군 농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 유기농대회를 유치하게 되었다.

    “4대강 싸움은 바로 가치관의 싸움입니다”

    유기농업에 뜻이 있는 젊은 귀농인들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했다. 유영훈 대표가 ‘친환경 유기농민’이라고 소개한 서규섭 씨는 10여 년 전 귀농해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사주에 ‘흙과 함께 살 팔자’로 나온다는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흙이 그리웠다. 그런 그에게 두물머리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두 딸아이인 ‘가을’이와 ‘하늘’이를 얻었다. 주민들은 두물머리를 원주민과 이주민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만들었지만 지금 공동체는 4대강 사업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유기농업을 권장하고 지원을 해온 정부는 이제 와서 농민들을 수질 오염의 주범으로 몰고, 이 지역 일대를 수용해 제방을 쌓고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위락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농민들은 작년 5월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11개월째 싸우고 있다. 그동안 두 차례 공권력을 동원한 감정평가가 있었다. 이때 수도권 소비자들인 생협 조합원들이 찾아와 함께 싸웠다. 오랫동안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등을 통한 도농공동체를 만들어온 노력이 불러온 연대였다.

       
      ▲ 두물머리 대책위 천막 (사진=이상엽 작가)

    두물머리 유기농지 끝자락 두 물이 정확히 만나는 곳에 농민 최요왕 씨가 만들어 세운 나무 십자가가 서 있다. 십자가는 고난을 극복한 팔당지역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하다. 국가의 폭력은 두물머리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농민들은 수십 년에 걸친 땀과 눈물로 이를 극복하고 생명의 먹거리를 만드는 살림의 땅으로 만들었다. 답사 일행을 맞은 유영훈 대표는 십자가 아래 서서 호소한다.

    “머잖아 또 공권력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우리 농민들이 맨몸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업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몸으로 막아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반생명적인 개발과 성장의 가치관에 기반한 4대강 사업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곳입니다. 4대강 싸움은 바로 가치관의 싸움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 생각하는 계기로서 팔당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책위 유영훈 대표 (사진=이상엽 작가)

    친환경 유기농민 서규섭 씨가 발언을 이어받는다.

    “정당한 이유가 있고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양보하겠는데 우리를 쫓아내고 이 자리에 얼토당토않게 공원, 체육시설, 자전거길을 만든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질과 공익의 이유로 나가달라는데, 진정 무엇이 공익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기농을 하면서 하천농지를 활용하는 게 수질에도 긍정적이고, 고유한 유기농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일이 훨씬 더 공익적이라는 게 저희들의 주장입니다.”

    강이냐, ‘리버사이드’냐

    현재 두물머리 강변 천막 안에서는 천주교 신부와 신도들이 매일 생명평화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유영훈 대표는 우리들이 떠날 무렵, 농민들의 애환을 들어달라고, 그리고 기록해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한다.

    “종교계에서는 이제 4대강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막바지로 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저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저항할 겁니다.”

    팔당 지역은 두 물이 만나고 있다. 토건국가의 개발논리와 유기농 생명의 철학과 삶이 합수되는 이곳, 이 싸움은 이제 어느 강으로 흘러갈까?

    일행은 논길을 걸어 두물머리 산책로를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길가에 어느 건설회사의 아파트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당신의 잠자고 있는 1억, 한강을 소유하세요’

    서울 한강에서 팔당으로 이동할 때 차창 밖으로 본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와 모텔, 카페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대부분 ‘리버사이드 모텔’ 등 강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답사팀 일행은 두물머리 입구로 돌아와 다시 버스를 타고 여주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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