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리섬의 단양쑥부쟁이들
        2010년 05월 13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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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 다 괜은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서 청계천 복개한다는 소문을 들은 이들은 턱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맑은 개울 청계천은 수차례의 복개공사를 통해 물길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지나 복원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다시 시멘트로 멋들어지게 치장을 한 세계 최대 시멘트 수족관이 돼버렸다. 예기치 않게 발견된 더 많이 묻혀 있을 문화유적들도 치적 한 개를 추가하겠다는 MB의 욕심보다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0년, MB는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치적을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다. 이번엔 맑은 개울 하나 정도는 성에 차지 않아 4대강을 시멘트 수족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착착 진행 중이다.

    4대강 사업의 미래는 여의도 주변을 20여 분만 걸어도 짐작할 수 있다. 한강르네상스의 산물인 불규칙한 시멘트 계단은 그나마 ‘데이트하다 잘못하면 헛디뎌 발 삐겠다’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여유라도 있다.

       
      ▲ 한강 르네상스의 산물, 콘크리트 계단 (사진=오은진)

    하지만 그렇게 툴툴 대며 20여 분 걷다 마주치는 형광색 푸른 반구가 주는 흉물스러움에는 입을 다물게 된다. 이구동성으로 ‘저것은 무엇에 쓰는 건물인고?’ 알아보니 47억을 들여 완공했다는 야외공연장 ‘플로팅 스테이지’란다. 그마저 부실 공사로 현재는 유치되는 공연이 없어 플로팅 스테이지 카페로 운영된단다. 데이트하기 좋은 화사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그 안에는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자전거 엘리베이터, 물고기 길

    플로팅 스테이지 근처에 만들어진 자전거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드나들기 위험한 위치에 설치되어 이용자가 거의 없단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오세훈 시장의 취향이 엿보인다. 물고기들이 안전하게 건너라며 친절하게 ‘물고기 길’까지 만들어 놓은 잠실보에서 실소를 금치 못하고 팔당유기농단지에 있는 두물머리로 향한다.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는 한국 최고의 유기농단지이며 2012년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했다고 자랑하는 곳인데 정작 이곳에서 수십 년 유기농 농사를 해온 농민들은 4대강 사업에 의해 쫓겨나야 할 판이다. 농민들을 쫒아낸 그 자리에는 친환경 휴식공간과 레저시설이 들어선다고 한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자전거 길을 만든단다. 친환경적으로…

    앙상한 가지들로 세워진 나무 십자가가 있는 두물머리 끝자락에서 농민들과 신부님들이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제발 이곳의 생명이 더 이상 짓밟히지 않기를… 더 이상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기를…

    여주로 향하는 여정이 답답하다. 여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여주 신륵사 주변은 많은 상업시설이 들어섰음에도 수도권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신륵사 맞은편 강을 보는 순간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준설공사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시멘트블록이 일자로 늘어서서 제방을 이루고 있다. 저편의 강둑도 원래는 바위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을 텐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신륵사 너머로 보이는 공사현장 (사진=오은진)

    본격적으로 준설공사를 시작한다는 보도를 접한 게 몇 달 전인데, 두 달간 불철주야 24시간 공사한 진척사항은 거의 2년간 공사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진척되어 있었다. 아마 저들이 저렇게 성급하게 공사를 하는 것은 4대강 사업을 ‘기정사실화’하여 우리를 포기하게 하고자 함일 것이다.

    굽이굽이 여강길

    굽이굽이 여강길을 걷는다. 멀리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까지 갈 필요를 못 느낄 정도로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소박한 산길이다. 발밑으로 보이는 여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도시의 삶에서 켜켜이 쌓인 독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한걸음 한걸음 여강길을 걷다 보면 단양쑥부쟁이 군락이 있는 도리섬이 나온다.

    도리섬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른다. MB는 도리섬에 있는 단양쑥부쟁이 군락도 통째로 옮겨서 새로운 군락을 조성하고 생태 습지를 만들겠단다. 단양쑥부쟁이가 왜 도리섬에서만 서식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게다. 새로운 곳으로 옮기면 ‘인간들아, 좋은 새 집으로 이사시켜 줘서 고맙다 잘 살아보마’ 라며 쑥쑥 자라 새로운 군락을 이룰 거라고 믿는 건가?

    4대강 사업이 완성되면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행사와 이벤트가 활성화되어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데 어떤 근거일까? 구불구불한 물길을 정비하여 곧은 시멘트 제방을 쌓고 인공적인 녹지벨트를 만들고 모터로 가는 뗏목 몇 대 띄우면 관광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거라고 정말 믿고 있는 건가?

    도대체 왜 하는 거지?

    홍수 대비책으로 96%의 국가 하천 정비가 완료됐다고 자랑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와 홍수 예방을 위해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준설공사와 20여개의 보 설치로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겠다는데 고인 물이 썩는다는 기본 상식은 어디에 내동댕이친 것일까?

       
      ▲ 강천보 공사현장 (사진=오은진)

    한술 더 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혹시 이번 4대강 사업은 사람들이 곡괭이랑 삽으로 준설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설계한 기중기를 사용해서 시멘트 제방을 쌓는 건가?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은 꽤 되겠다만 그것도 고작 2년짜리 일자리이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건가? 임기를 마쳤으니 상관없다는 건가?

    답사가 지속될수록 커지는 분노와 더불어 궁금증은 배가 된다.

    “MB! 대답 좀 하시오.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으면 좋은 피부를 만들어준다는 석고팩을 24시간 해보시오.(시멘트 팩을 권하고 싶은 것을 많이 양보한 것입니다.) 그 후에도 시멘트제방으로 둘러싸인 강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설득 당하겠소.”

    1박2일간의 한강답사 마지막 코스인 부처울 습지 모래톱에 앉아 길게 나있는 꼬마물떼새의 발자국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폭신폭신한 모래밭. 발걸음을 뗄 때마다 파삭파삭 거리는 갈대줄기들. 지난 가을에는 굼실굼실 너울거리며 사람들을 만났겠지…

       
      ▲ 부처울습지 모래톱 꼬마물떼새의 발자국 (사진=오은진)

       
      ▲ 남한강에서 발견한 물새알 (사진=오은진)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이고 상태라 해서,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 라고 명명되어진 자연의 조용하고도 격렬한 흔적들이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바닥을 헤집으며 요란하게 그 흔적들을 지운다. 영원히…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기필코 막아내겠어.’ 라는 다짐은 너무 늦어버린 걸까? 혹시 습관처럼 분노하고 제풀에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번 주말에는 4대강 유역으로 나들이를 떠나시길 권한다. 4대강 사업 저지라는 목적이 없어도 좋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시라.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할지는 강변에 선 순간 자연이 저절로 알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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