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나지 않은 삼성반도체 죽음의 행렬
    By 나난
        2010년 05월 13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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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1일 고 박지연(23) 씨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삼성에서 일하다 암에 걸렸다”는 피해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모두 45명이 피해 상황을 제보해 왔으며, 이 중 18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산업재해 승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7명의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모두 불승인 받았다. 하지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은 유명화(29) 씨 등 5명은 “직업성 암의 업무 관련성이 명백하다”며 13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생리 할 때마다 수혈받아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유 씨는 지난 2000년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기 전에 입사해 23개월만에 재생불량성빈혈로 퇴직했다. 현재 조혈모세포 이식은 맞는 골수를 찾지 못해 시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혈소판이 낮아 혈관이 수시로 터져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테스트 공정 MBTI에서 근무한 그는 반올림를 통한 증언에서 "고온 테스트를 마치고 기계 챔버의 뚜껑이 열릴 때 뜨거운 증기 속에 반도체 칩의 역겨운 냄새가 났고, 칩을 만지고 얼굴을 만지면 피부 발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은 유명화(29)씨의 동생 유명화(27) 씨가 삼성의 산재인정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렸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유 씨의 아버지 유영종(59) 씨는 “어린 나이에 입사해 부푼 꿈을 갖고 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코피가 난다’는 연락이 왔고 얼마 되지 않아 눈 혈관이 터져 병원에 갔더니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며 “심장에 구멍을 뚫어 혈관에 약물치료를 시도했지만 완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명화 씨는 현재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할 때마다 혈소판과 혈액을 수혈받아야 하며, 난소가 터져 혈관의 피가 뱃속으로 빠져 나가는 일도 몇 차례 겪었다. 유영종 씨는 “여동생과 남동생 등 골수 기증자 4명을 다 검사했지만 맞지 않아 수술도 못하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딸을 대학 보내지 못하고 직장을 가게 한 게 제일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병들면 내다버리는 또 하나의 가족

    그는 “제가 조금만 부유했다면 딸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며 “삼성전자에서는 1명도 아닌 40명이 넘는 분들이 병을 앓고 있거나 목숨을 잃었음에도 나몰라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피해자 유명화 씨의 동생 유명화 씨.(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유 씨의 동생 유명숙(27) 씨는 “평소 언니와 통화를 하면 ‘작업 현장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 주변에서 기형아를 낳고, 생리불순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언니는 이제 소녀로도, 여자로도 살아가지 못한다. 이미 9년 동안 맞은 피로 몸에 피 찌꺼기가 쌓여 가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삼성은 늘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며 삼성을 향해 “당신의 예전 가족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안 아프면 가족이고 아프면 바로 내다버리는 게 가족이냐”고 반문하며 “더 늦으면 삼성은 모든 가족을 잃게 될 것”이라며 삼성의 산재인정 촉구 등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유 씨 외에도 고 박지연 씨의 사망 이후 많은 백혈병, 림프종, 유방암, 난소암 등 수많은 암 피해 노동자가 반올림에 제보를 해 오고 있다. 반올림은 13일 서울 영등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삼성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 및 집단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주의하라 정도의 교육 뿐이었다"

    나경순(35)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지난 1998년 림프종(임파선암)에 걸렸다. 다행히 그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고 완치했지만 그와 함께 1라인에서 일하던 동료 한 명은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그에 따르면 작업자가 직접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작업을 했음에도 ‘물질이 튀지 않게 주의하라’는 정도의 교육만 받았을 뿐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나 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한 신송희(32) 씨는 입사한지 6여년만에 몸이 아파 지난 2005년 퇴사했다. 그는 입사 후 3년이 지났을 때 갑자기 가슴 통증을 느꼈다. 어깨와 뒷겨드랑이 부위가 지속적으로 아팠으나 따로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난 2009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암 제거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근무현장에서는 역겨운 냄새로 인해 자주 구역질이 났으며, 구토 증상으로 입 안 가득 토사물이 올라오는 가하면 라인 내에서도 토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문제는 구토를 하는 사람이 본인은 물론 동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아니라 존중과 생존이 필요"

    또 지난 2003년에는 가스누출사고가 발생했지만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아 작업현장에서 뒤늦게 빠져나오가스에 노출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얇은 천 재질의 방진복과 천마스크,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있었을 뿐 별다른 보호구를 착용하지는 않았다.

       
      ▲ 반올림이 13일 서울 영등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이처럼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암 등을 얻었다는 피해 제보가 증가하고 있으나 삼성과 근로복지공단 등은 여전히 이들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7명의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백혈병은 산업 재해로 볼 수 없다”며 모두 산재 불승인을 받았다.

    이에 이날 유명화 씨 등 5명이 “보호구 착용도 없이 일을 하면서 노출된 화학물질 및 금속 흄 등 유해 위험요인에 의해 직업병을 얻었다”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집단 산재를 신청했다.

    반올림은 “지금 투병 중이거나 투병 끝에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보상”이라며 “이들의 고통에 대한 삼성의 진정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이 사회와 삼성이 이들을 산업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유일한 길이며 최소한의 예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3월 31일 고 박지연 씨가 사망한 후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며 기흥공장 일부 라인을 언론에 공개하는 가하면 자사 트위터 계정(@samsungtomorrw)을 통해 박 씨의 사인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반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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