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 근본 뒤흔든 조선의 자유주의자?
        2010년 05월 13일 11: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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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롭게 사상을 연구하라

    허자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30년 동안 은거하며 공부를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진리를 깨달았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였다.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그는 중국으로 갔다. 수많은 선비들을 만나 얘기해 보았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탄식을 한다. “어찌된 세상인가? 내가 공부한 유학이 잘못된 것인가?”

       
      ▲ 담헌 홍대용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유교가 가진 기본적 세계관을 검토, 비판하고, 자신의 철학을 펼쳐내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인식을 넘어섰다.

    홍대용(1731년~1783년)은 학통으로 보면 이이의 6세대 제자이고, 인간과 동물의 본성에 관한 논쟁에서는 본성이 같다는 낙론계열이다. 그러나 그에게 학통이나 계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뛰어넘어 버렸다.

    그는 잠시 벼슬을 하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공부와 연구에 바쳤다. 그의 연구 범위는 광범위하여 유교 경전에서부터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구 대상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였다.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혼천의와 자명종 등 기계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는 주자를 숭상하는 학문, 즉 성리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주자를 숭상하는 것은 중국조차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숭상하는 것만 귀중하게 생각하고, 경전에 의문이 생겨 의논을 해야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바람 부는 대로 따르고, 서로 무리를 지어 생각의 허물을 덮어주기만 한다. 이렇게 하여 입에다 재갈을 물리려 한다. – <건정록후어>

    주자를 숭상하는 무리들이 그 학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따져보려 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따르기만 한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하니 입에다 재갈을 물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만 옳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사문난적’이라 낙인찍어 버리는 당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중엽부터 편파적인 논의가 나타나고, 시비가 공정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송시열 이후 나타나는 사상적 통제에 대한 비판인데, 홍대용은 주자학만을 숭상하는 것에 의해 철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에서는 주자학과 배치되는 양명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에 대해 사문난적이라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물론 홍대용이 양명학을 숭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사상을 추구해야 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고, 그들은 그들대로 선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게 나쁘단 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자유로운 사상 연구. 이것은 홍대용이 일생을 두고 추구한 학문하는 태도였다. 다양한 사상에 대한 연구,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는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유학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았다.

    하늘에서 사물을 바라보라

    홍대용은 기일원론을 철학적 토대로 하였다. 그는 <심성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理)는 기(氣)가 선하면 역시 선하고, 기가 악하면 이 역시 악하다. 이는 주재하는 바가 없고 오로지 기가 하는 바를 따를 따름이다.

    대뜸 이렇게 이와 기의 문제를 정리해버린다. 이의 보편성 여부는 따질 필요도 없다. 이는 기에 종속된 것일 뿐이다.

    기일원론은 이미 김시습, 서경덕을 거쳐 체계화되고 임성주에 이르러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철학을 발표하는 상황은 다르다. 서경덕은 노심초사 하며 죽음에 임박해서야 자신의 철학을 글로 남겼다. 임성주 역시 조심조심 우회를 해가며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러나 홍대용은 거침이 없었다. 그것은 자유로운 사상의 추구라는 신념에 따른 일이었다.

    홍대용은 기의 속성과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의 근본은 맑고 담백해서 청탁(淸濁)이 없다. 그것이 오르고 내리고 하며 서로 부딪치고 밀치기도 하고, 찌꺼기도 되고 재도 되고 가지런하지 않다. 맑은 기를 얻어서 된 것이 사람이고, 흐린 기를 얻어서 된 것이 물(物)이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맑고 순수하고 신비해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 – <답서성지론>

    인간의 마음을 비롯한 모든 것이 기로서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사람의 마음에 기의 변화나 운동에 구애받지 않는 이(理)가 본래부터 존재한다는 주장은 부정된다. 또한 본래부터 존재하는 이를 근거로 하는 도덕론 역시 부정된다. 이것은 이의 보편성, 절대성을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이기이원론, 즉 성리학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이다.

    홍대용은 세계관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그의 세계관이 집약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저술이 앞에서 인용한 <의산문답>이다. 그 서두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이 천하다. 사물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사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에서 보면 사람이나 사물이나 똑같다.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사물을 보지 않고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려 하는가.

    만물의 가치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그것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동물들은 천하디 천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물들은 남을 속일 줄 모르는 데 반해 인간은 서로 속이고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그래서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사람이 천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홍대용은 말한다. 인간이 가진 잣대로 이 세상 만물을 판단하려 하지 말라고. 하늘에서 사물을 보라고. 이를 ‘이천시물(以天視物)’이라 하는데, 하늘에서 사물을 보라는 말은 어떤 하나를 중심에 두고 사물을 보려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하나의 중심이란 생각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는 사물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것, 즉 상대적 세계관을 천명한 것이다.

    중화와 오랑캐의 구별은 없다

    홍대용은 우주에 대해 말한다. 그는 둥글게 생긴 지구가 하루 한 바퀴씩 돈다는 지전설을 주장한다. 그의 지전설은 유럽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 아닌 독창적인 것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 북경을 여행할 때, 홍대용의 지전설에 대해 유럽인도 흉내 못내는 독창적인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지전설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지구가 둥글다는 점이다. 전통적 사고방식은 땅이 네모나고,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가 둥글다고 하면 특별한 중심이 없어지게 된다. 둘째는 지구 중심주의의 폐기이다. 지구조차 우주에서 중심일 수 없는데 하물며 지구 안에 있는 한 국가가 중심일 수 있겠는가.

    결국 홍대용의 지전설은 하나의 문화적 중심을 설정하는 화이론(華夷論)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화이론은 공자가 <춘추>에서 주창한 것이었다. 공자는 중화와 오랑캐를 안과 밖으로 엄격하게 구분하고, 주나라 왕실로 상징되는 중화를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는 ‘존주양이(尊周攘夷)’를 내세웠다. 이러한 공자의 화이론은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홍대용은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부정한다.

    하늘이 낳고 땅이 길러낸 것 중에 혈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무리 중에 뛰어난 사람이 한 지역을 다스리니 모두 똑같이 군왕이다. 문을 튼튼하게 하고 구덩이를 깊이 파서 영토를 지키니 모두 똑같은 나라이다. ……

    각기 자신의 부모를 모시고, 각기 자신의 군왕을 받들며, 각기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 각기 자신들의 풍습을 지키는 것은 중화와 오랑캐가 마찬가지이다. – <의산문답>

    중화와 오랑캐가 똑같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주나라가 쇠약해졌으므로 오나라와 초나라가 중국을 침략하고 도적들이 끊이지 않았다. <춘추>는 주나라 책이니 안과 밖을 그런 식으로 구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만약 공자가 바다를 건너 오랑캐 땅에 살았다면 중국의 문화로 오랑캐를 변화시키고 주나라의 도를 중국 밖에서 일으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분명 중국이 아니라 중국 밖의 오랑캐를 ‘안’으로 삼아 <춘추>를 썼을 것이다. – <의산문답>

    공자가 주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주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춘추>를 쓴 것이고, 만약 그가 오랑캐 땅에 살았다면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춘추>를 썼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화이론에 대한 명확한 부정이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것에 대해 "사람들이 자초한 일이고 하늘이 내린 필연적인 시대의 형세"라고 말한다. 즉, 명나라의 멸망은 명나라 내부의 문제로 일어난 일이고, 따라서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얘기이다.

    당대의 학자들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등장을 중화가 오랑캐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라 평가하였다. 이것은 사실적 판단이 아니라 화이론에 입각한 도덕적 판단이었다. 홍대용은 화이론적 역사관을 극복하고 역사에 대한 사실적 평가를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놀고먹는 양반을 처벌하라

    홍대용은 신분적 질서에 대해서도 칼날을 들이댄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는 본래 명분을 중하게 여긴다. 양반 무리들은 궁핍하여 굶주리더라도 팔짱끼고 앉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설령 천한 일이라도 힘써 하는 자가 있더라도 모두가 나무라며 노예 보듯이 한다. 그래서 노는 백성이 많아지고 일하는 자가 줄어든다. 어찌 재물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으며, 백성이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임하경륜>

    양반이 일은 하지 않고 놀고먹으려 하는 것을 개탄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마땅히 법을 엄격히 세워 신분에 관계없이 놀면서 먹는 자에게 벌을 내리고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재능과 학식이 있다면 농부나 장사치의 자식이라도 관청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재능과 학식이 없다면 양반의 자식이 하인이 되더라도 한스러울 것이 없다. – <임하경륜>

    인간 사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재능과 학식에 따라 자신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뜻이 높고 자질이 좋은 자는 조정에서 쓰도록 하고 자질이 부족한 자는 들에서 일하게 한다. 생각이 빠르고 손놀림이 좋은 자는 노동자가 되고, 계산에 밝고 재물을 좋아하는 자는 장사치가 되고, 꾀가 많고 용맹한 자는 무사가 된다. 소경은 점쟁이로, 궁형을 당한 자는 문지기가 되게 하고,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앉은뱅이까지도 일자리를 갖도록 한다. – <임하경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처한 위치에 맞게 일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얘기이다. 이것은 조선 시대 신분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

    근대적인 각성

    그러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늘에서 보면 인간과 동물이 다를 수 없다. 홍대용의 주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백성에게 베풀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동물로부터 본받지 않은 것이 없다. 임금과 신하의 예절은 벌에게서 따왔고, 병법은 개미에게서 따왔고, 예절의 제도는 박쥐에게서 따왔고, 그물을 설치하는 것은 거미에게서 따왔다. 그래서 성인들은 만물을 인간의 스승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 <의산문답>

    동물로부터 인간이 배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물이 인간의 스승이라고까지 말한다. 인간 중심주의의 폐기이다.

    인간과 동물의 본성에 관한 논쟁이 수대를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현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홍대용에 이르러 세계관의 근본적 변혁이 일어났다. 그는 인간의 잣대로 동물을 평가하지 말라는 임성주의 주장을 일반화하여 ‘이천시물’, 즉 하늘에서 사물을 보라는 세계관을 제창하였다.

    홍대용의 철학은 특정한 중심을 전제하는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이요 부정이다. 성리학에서 주장되는 인간 중심주의와 중화주의 그리고 신분제적 질서 등이 그가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홍대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지가 변하니 사람과 사물이 번성하고, 사람과 사물이 번성하니 물(物)과 아(我)가 형성되고, 물과 아가 형성되니 안과 밖이 구분된다. – <의산문답>

    안과 밖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천지는 전체, 즉 ‘하나’를 의미한다. 이 ‘하나’에서 사람과 사물, 물과 아, 안과 밖이라는 ‘둘’이 생겨난다. 이것은 기의 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하나’에서 ‘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에서 생겨난 ‘둘’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안과 밖의 관계를 가진다고 말한 점이다. 위와 아래로 서열을 정하지 않은 것은 중심과 주변으로 구별하고자 하는 시각에 대한 부정이다. 또한 안과 밖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바뀌어 질 수 있다. ‘안’이었던 것이 ‘밖’이 될 수 있고, ‘밖’이었던 것이 ‘안’이 될 수 있다. 즉, 홍대용은 사람과 사물, 물과 아, 안과 밖이 서로 대등하고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가히 세계관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기도 하였다.

    홍대용의 철학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신분제적 질서의 동요가 확연해지고 있는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근대적인 각성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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