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대본에만 맡길 일 아니다"
        2010년 05월 17일 0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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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등록이 끝났다. 그러나 선거 시작이 친구들과 나에게는 별다른 사건이 아니다. 연일 언론지면에 중계되는 진보연합, 민주연합 논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열을 올리며 이미 포화상태인 댓글란에 한 마디 보태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유행은 지루하다

    솔직히 말하면 또 과열될 채비를 하고 있는 선거판이 좀 쓸데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 여기서 쓸데없다는 말의 의미는 지난 노동절 두리반 파티에서 최고의 인기를 확인한 밴드 ‘밤섬해적단’의 노래가사에 쓰인 의미와 같다.

    한 문단 밖에 안 썼는데, 벌써 "정치에 무관심한 이놈의 XX"라며 눈썹에 힘 들어가시는 아저씨들 계실지 모르겠다. 모르는 소리, 내가 흥분하지 않는 까닭은 지지할 후보가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나 역시 저녁시간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1인 시위자들이 고맙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선거운동을 준비하는 선거본부가 걱정되며, 인터넷을 달구게 하는 다채로운 논란을 만드는 분들을 존경한다. 다만 내가 주목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곳에 있는 까닭에 이 선거판을 흔들고 있는 짜깁기 리듬에 춤을 추지 않을 뿐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란 운동과 가까이 지낸 20대를 말한다. 다양한 방향이 있었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은 주로 풀뿌리운동이나 급진운동을 좋아했다. 이제는 따옴표를 써야 할 것 같은 그 ‘20대’들이지만, 기업체 입사와 안정된 삶을 꿈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것에 충실한 젊은이들이다.

    내가 선거판을 냉소하는 이유는 내 이익에 급급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거부하는 것뿐이다. 정치를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 대세, 기회주의자 같은 단어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다.

    ‘진보스펙’이라는 말

    내가 배운 것을 한마디로 뽑으라면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된다. 지금은 쉰내 나는 단어라고 잘 쓰지 않지만 대안, 청사진, 정체성과 같은 단어를 줄기차게 고민했던 때가 우리 또래에도 있었다.

    나도 그 인연으로 농업이나 지역공동체, 대안교육 등 그 ‘20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는 단어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근본적인 부문에 젊은 세대의 문화를 접목시키는 것이 내 주된 관심이다.

    연초에 정치적 논의에 적극적인 친구들에게 지방선거 기간에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생태적인 삶, 지역공동체, 공동주거 등이 일상인 녀석들이라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며 오래전부터 시끄러웠던 이번 선거에 무슨 꿍꿍이든 꺼낼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대부분 그냥 하던 대로 활동하겠다는 대답을 해서 당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나뉜 이번 선거판을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시민단체 활동도 이력서에 쓰기 위해 다녀온다는 말이 있었다. 얼마 전에 ‘진보스펙’이라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던 적이 있다. 이러다 좌파스펙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스친다. 진보가 스펙이 된다는 말은 ‘진보’라는 단어 말고 아무것도 없는 속 빈 정체성을 맹비난하는 것이다.

    ‘래디칼’, 변혁의 최전선

    그것은 기회주의자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선거에 임하는 정당이 선거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뚜렷이 하지 못하고, 소중한 정책의 수용 없이 선거를 빤한 두 축의 라이벌 매치로 만든다면 그 비난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선거가 최전선은 아니다. 선거는 공식적인 기간일 뿐이며, 선거에 걸리는 정책은 선별된 것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채로운 일상이 없다면 선별의 폭은 훨씬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선거 기간과 관계없이 그런 다채로운 기초를 일상에서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가치의 싸움터에 놓인 최전선인 것이다.

    이런 변혁의 최전선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바로 ‘래디칼’이다. 래디칼은 화학에서 쓰이는 것처럼 강한 반응성을 지니는 것을 칭하기도 하지만 원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저한 태도를 일컫는 것이다.

    진보정치는 이러한 급진의 선별로 이루어진다. 변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기다렸던 까닭은 진보스타의 집권이 아니라 이 같은 변혁의 최전선들이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을 통해 드러나길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 기간엔 더 많은 것들이 스스로 쏟아져 나와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변혁의 최전선들이 선거 기간 동안 자기를 드러내고 가장 가까운 정당을 지지하는 릴레이 선언을 하면, 변혁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진보정당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고농축된 젊은이들의 불만

    변혁을 자기정체성으로 삼는 제도정당이 필요성이 분명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급진이 드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변혁을 요구할 수 있고, 그런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정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내 또래의 젊은 세대가 이런 움직임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합당한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변혁을 상상하는 것에 대해, 제도의 제약을 받지 않은 최초의 세대가 현재의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젊은이들이 갖은 수난을 당하며 고도로 농축시킨 불만을 생각하면 이번 선거가 이 사회에 불호령을 날릴 호기라는 생각도 든다.

    젊은이들의 선거 독려도 필요하지만 서로 잔소리하는 것보다 각자 날 선 속내를 꺼내는 것이 더 화끈하다. 그리고 그것이 젊은 세대가 또다시 이용당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후보등록이 끝난 지금까지 이번 선거판에 역동성은 하나도 없다. 방송사 토론회마저 줄줄이 무산되고 있으니 빤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언론은 지루한 말의 반복이다. 실상이 이러한데 진보정치의 책임을 선거본부에만 맡기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친구들과 크고 작은 간담회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더 북적북적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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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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