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천하무적 레즈비언’을 꿈꾸며
        2010년 05월 12일 04: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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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즐겁게 막을 내린 올해로 제 12회를 맞는 여성영화제는 어느 샌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즐거운 축제한마당으로 자리 잡았다. 평소에 일반 상업영화관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작품성 있는 여성영화들이 대거 상영되어, 나와 같은 ‘골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동안의 문화적 갈증과 허기를 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특히 매년 여성영화제에서는 레즈비언을 주제로 하는 극영화 및 다큐멘터리를 모아 상영하는 고정 섹션 ‘퀴어 레인보우’가 있는데, 나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레즈비언 친구들은 대부분 이 영화들의 열렬한 마니아들이다. 성소수자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피상적이고 유치한 흥미거리가 아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에서 그린 수작들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여성영화제는 우리가 먹여 살린다?

    우리들끼리 암암리에 농담 반으로 하는 말을 전격 공개한다. “여성영화제는 우리가 먹여 살린다!!”(믿거나 말거나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다. 훗). 실제로 화제작으로 소문난 퀴어 영화들은 영화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매진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매해 두지 않으면 땅을 치고 울면서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나도 이번에 욕심을 잔뜩 내어 12편의 영화를 해치웠는데, 다른 영화들보다 유난히 퀴어 영화들이 빨리 매진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성소수자들만 이 영화들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한 일반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퀴어 섹션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퀴어 영화가 상영될 때, 우리들은 담배연기 가득한 컴컴한 술자리가 아니라, 밝은 대낮에 극장에서 조우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객석을 쓱 한번 훓어 본다. 여기저기 오랜만에 얼굴 보는 우리 종족(?)들, 레즈비언 동지들이 눈에 띈다.

    얼굴을 아는 친구들에게는 손을 흔들기도 하고 얼굴은 처음 보지만 분명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이들을 보면 한번 피식 웃어 보기도 한다. 본능적으로 ‘게이다’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쓰는 ‘게이다’라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끼리 하는 은어로서, ‘레이다(탐지기)’에 영어의 Gay(동성애자)를 합성해서 비유한 말로, 성소수자들끼리 겉모습만으로도 서로가 성소수자임을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주위의 레즈비언 커플들이 서로 손 붙잡고 대거 오기 때문에, 마치 우리들끼리 극장을 전세 내어 부부동반(?) 모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고 야한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여기저기서의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즐거운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스크린으로 만난 ‘천하무적 쌍둥이 레즈비언’

    영화가 끝나면 모두들 한사코 그냥 집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극장 근처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서 술판을 벌이며 영화로 고조된 흥분들을 서로 나누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성애 중심의 숨막히는 공기가 점령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잠시라도 숨을 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올해의 ‘퀴어 레인보우’에서 우리들을 울고 웃기며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고의 화제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뉴질랜드의 여성감독 리안 풀리의 다큐멘터리 <탑트윈즈:천하무적 쌍둥이 레즈비언>이다.

       
      ▲ 다큐멘터리 <탑트윈즈>의 한 장면

    레즈비언인데다가 천하무적에 게다가 쌍둥이라니? 어째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화면에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지긋한 부치(butch:레즈비언 중 남성성의 성향이 강한 쪽을 일컷는 용어, 상대적으로 여성성이 강한 레즈비언을 펨(femme)이라고 한다)할머니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쌍으로 나와서 뉴질랜드에서 행했던 그녀들의 유쾌하고 용감했던 대 투쟁사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대책 없이 선동당하고 피가 뜨거워져 옴을 느낀다. 심장이 벌렁벌렁 하고, 당장에라도 극장 밖을 뛰쳐나가 세상을 향해 소리쳐야 할 것만 같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우리들의 존재를 인정하라!!’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 ‘탑트윈즈’, ‘쌍둥이 부치 할머니들’은 뉴질랜드 사회가 아직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법적으로 전혀 인정하지 앉고 있었고,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의 험악한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드러내고 있었던 시절부터, 그녀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용감하게 드러내며 전투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레즈비언 자매들의 막강 파워

    기타하나 들고 거리에서 극장에서 전국순회공연을 펼치며 코미디언이자, 컨트리 가수, 댄서, 요들송 가수 등 전방위 엔터테인먼트로 활동하며, 스스로 대중들 속으로 뛰어 들어 갔다. 레즈비언이라는 성정체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혐오와 적대의 대상이 될 위험이 다분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대중들에게 지지받았고 사랑받았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그녀들 특유의 코믹한 익살과 예술적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뜨거운 지지와 뉴질랜드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관한 진보적인 정치의식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문제, 즉 성소수자들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와 연대했다.

    뉴질랜드의 80년대 초반 정치적 항의 시위가 한창인 무렵, 뉴질랜드의 비핵화를 위해 익살스러운 연기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뉴질랜드 섬 원주민들인 마오리족의 토지 보상운동에도 목소리를 높였으며, 인종차별에 반대하여 시위의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성애법 개정을 둘러싼 첨예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용감하게 싸우며 결국에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들이 인정받는 뉴질랜드를 만드는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전사들 중의 ‘두 명’이 되었다.

    그녀들은 가장 대중적인 CF, 인기 TV시리즈 등에 출연하면서 뉴질랜드의 소위 유명스타가 되었는데, 공중파에 등장한 공인된 레즈비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뉴질랜드 사회의 진보적 정치의식이 얼마나 확산되어 있는가를 전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한평생을 ‘천하무적’으로 달려온 용감한 레즈비언 자매들의 파워는 막강했다.

    왜 다시 여기서 ‘타자와의 연대’인가

    우리들은 한껏 고무되었다. 그리고 음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죽을 때까지 우리들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기에, 우리들이 너무 젊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들 영화가 끝나고 우르르 몰려가 밤새도록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흥분해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다큐멘터리 <탑트윈즈>의 한 장면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정말로 중요한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타자와의 연대’라는 다소 뻔해 보이는 화두였다. 왜, 다시, 여기서, ‘타자와의 연대’인가.

    이쯤에서 나는 내가 새빨간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던 20대 초반의 나를 떠올린다. ‘남성’의 타자화된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내 존재의 이름에 눈떴을 때, 나는 다른 타자들의 아픔 에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감수성’을 지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사회의 99%를 차지하는 ‘이성애자’의 타자로서의 ‘동성애자(성소수자)’라는 이름을 내 존재의 일부분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사회 무수한 타자들의 이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때로는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서 갖가지 형태로 멸시 받고 있었고 그에 저항하고 있었다. 바로 내 자신처럼.

    소수자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

    영화의 주인공들. ‘탑트윈즈’는 자신들이 레즈비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에서의 타자들이 처한 허약한 현실에 공감했고, 그 아픔을 자기 일처럼 분노했으며 함께 싸웠나갈 수 있었다. 그런 다양한 사회적 투쟁의 연대 속에서 그녀들의 레즈비언이라는 공인되지 못했던 성정체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들이 만들어간 필연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처한 사회적 소수자, 약자로서의 현실은 이 사회의 또 다른 약자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의 무지와 편견의 시선 속에서 우리가 남몰래 흘렸던 눈물은 이 사회에서 다른 누군가가 흘릴 눈물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그 눈물의 함의에 대해 알아차리게 만든다. 그럴 때 우리들의 타자성은 유약하고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라 힘이 된다. 약한 존재들을 깨부수려는 강자들에게 돌맹이라도 집어들 수 있는 저항과 변혁의 힘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믿음으로, 여기까지 달려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배우가 되기를 바랐을 때, 나는 나의 연기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투쟁의 도구가 되기를 감히 꿈꾸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로서, 연기로서 ‘여성노동자 차별을 철폐하라!’를 외쳤고 호주제 폐지를 위한 수많은 공연과 어린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형극 공연까지. 마초들의 여성비하적인 발언들을 꾸짖는 무당 퍼포먼스와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성소수자들에게 바치는 드랙쇼를 공연하기도 했다.

    나도 그녀들처럼, 나의 예술적 재능이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사용되기를,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함께 행동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으로 달려왔다.

    천하무적 타자들의 연대

    하지만 페미니스트라서, 레즈비언이라서, 늘 당당하고 행복하기만 했었냐고 그 누가 묻는다면, 오히려 대답은 그 정반대일 것이다. 얼마 전에도 어버이날 같이 살고 있는 옆지기와 함께 집에 가지 못했다. 아마도 나의 부모님께서는 내 삶의 동반자를 인정하기가 매우 힘드실 것이다. 아니, 아마 정신적 충격에 까무라치실지도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매우 절망적이고 괴로우냐면 또한 그렇지도 않다. 아니, 나에게는 절망할 시간조차 없는 것 같다.

       
      ▲ 오노 요코를 연기 중인 레드걸

    AIDS 감염인을 지지하며 드랙공연도 해야 하고,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할머니들의 항의 현장에도 가야하고, MBC 파업과 4대강 반대 사업에도 지지를 보내야 한다. 6월 2일, 운명의 지방자치선거, 약자들의 삶에 철퇴를 가하는 현 정권을 심판하는 운동에도 관심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모두다, 정말로, 내 삶에 절실하고 급박한 문제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어둠속에 숨어 살고 있다. 우리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취급을 받는다. 그런 우리들이 당당하게 밝은 운동장에 나와 발언하고, 그리고 타자들과 함께 춤출 때, ‘레즈비언’, ‘성소수자’라는 함의는 이제 ‘신의 섭리를 배반한 변태들’이라는 역사의 오랜 멍에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타자성이 바로 우리와 다른 이들의 권리 실현을 위한 힘이라는 대명제 속에 자리 잡는다.

    소위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우리와 지구 반대편의 어느 섬나라는 꿈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 사회의 ‘천하무적 타자들’이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페미니스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의 천하무적 레즈비언들’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다. 타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왜냐구? 너와 나, 우리들의 눈물이 바로 우리들의 힘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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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레드걸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연기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이자 몽상가. ‘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다’가 신조인 팔색조의 천상배우. 언제나 “예술의 정치화”를 화두로 연기 및 극작, 퍼포먼스, 연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 페미니스트 창작집단 <붉은 여신들>대표 http://cafe.naver.com/redgoddess
    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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