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를 인터뷰해본 적 있나요?"
    [메모 리딩의 힘-0] 아이와 함께 엄마, 아빠도 즐거운 책읽기
        2012년 05월 12일 1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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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도서관장이 꿈인 필자는 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보의 저변을 넓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유아교육’이라는 키워드로 그 가능성을 모색한다. 필자는 이번 ‘메모 리딩의 힘’ 시리즈에서 “독서를 통한 자녀의 지도”를 통해 창의력 있는 아이, 미래의 시민이 될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 * *

    30년 동안 본 엄마, 처음 본 엄마

    전엔 몰랐는데 아이가 말할 때 그냥 듣기만 했거든요. 메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아이와 대화할 때 종이에 아이와의 대화 내용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큰 아이가 보더니 갑자기 급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자신의 생각을 엄마가 적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 태어나서 처음이니까요. 아이 이야기를 메모하며 듣는 건^^ – 메모 리딩 참여 부모

    난생 처음 하는 일은 환희와 놀라움이 있습니다. 아이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의 감정을 떠올려보세요.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엄마, 아빠를 똑바로 부르던 때의 순간들. 지금은 어떤가요? 아이의 새로움이 느껴지나요? 아이는 엄마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있나요? 아주 익숙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고, 익숙한 선택을 편안하게 느끼면서 서로 무감각해지지는 않았나요? 사랑도 교육도 일도 정치도.

    한 4년 전에 아기를 갓 낳은 다음에 난생 처음 엄마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어로서 엄마를 인터뷰이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엄마도 언론에 인터뷰한 것은 아들이 처음이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모 인터넷매체에 게재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읽고 감동했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인터뷰한 글도 글이지만, 인터뷰 과정도 놀라웠습니다. 뭔가 기록을 해야겠다고 수첩과 볼펜을 들었을 때 제 자세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자세와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이 느낌을 재현하고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아이를 인터뷰하는 엄마들

    일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해서 동양고전과 인문고전, 심리학 쪽을 오래 읽은 나에게 한 유아 교육업체 대표님이 저의 아이디어를 유아 교육 쪽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들의 육아 커뮤니티인 네이버 도치맘 카페의 운영자와 출판사인 <김영사> 부모2.0의 담당자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하는 강력한 독서 프로그램 메모 리딩”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30명의 엄마들이 참여를 해주셨고,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동안 매주 한 단계씩 6단계의 프로그램과 1:1 첨삭을 소화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습니다. 『책 먹는 여우』, 『책 읽어주는 로봇』, 『책으로 집을 지은 악어』가 기본 교재였는데, 선택한 책을 6단계 동안 반복해서 봐야 하는 무척 특이한 방식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의무사항이라는 명분으로 엄마들에게 무척 무리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첫째, 사골을 우려내듯 한 권을 가지고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이야기 나눌 것. 둘째, 철저히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화할 것. 한마디로 아이를 상전처럼 모시라고 요구했습니다.

    셋째, 조금이라도 아이를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하고 아이가 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아이보다 책을 더 여러 번 읽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넷째,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민원이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위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못하면 1:1 첨삭에서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따끔하게 싫은 소리도 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엄마들은 요구사항의 취지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누구보다 열렬히 아이의 인터뷰어가 되었고, 아이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냈고, 단계가 어렵거나 흥미가 부족하면 보완할 수 있는 놀이나 맛보기 프로그램을 가미해 더욱 빛을 내주었습니다. 한 참여 엄마는 “이렇게 글을 옮겨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지나쳤을 아이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답을 알고 있어요

    처음엔 상당히 비협조적이었어요^^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동생들이 생기면서 오직 큰 아들만을 위해 엄마가 책을 읽어주며 대화한 적이 거의 없고 자기 혼자 책을 읽고 독후록 작성하고 마무리해 왔기 때문에 같이 하니까 조금 귀찮아 하더라구요. – 메모 리딩 체험 부모

    ‘엄마와 아이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방법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을 뿐 환기를 시켜주자 프로그램 매니저보다 더 놀라운 발견을 보여줘서 저는 배우는 자세로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하루에도 여러 권 읽는데 독서력과 사고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엄마들이 가장 행복해한 것은 바로 ‘가족’을 재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혼자 책 읽고 문제지 풀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거나 맞벌이를 하고, 아버지는 야근, 외근, 출장에 지쳐 누워 있거나 TV를 보고 있는 가운데 ‘메모 리딩’이라는 미션이 온가족에게 모일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생활이 바뀌니까 처음에는 불평과 투정이 많았습니다.

    필자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존중을 받으면서 점점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논리력과 사고력, 비판 능력을 아이의 육아에 쓸 수 있어서 존재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었고, 아빠와 아이가 ‘장난질’하고 티격태격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눈에 행복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메모 리딩이 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메모 리딩 독서 프로그램은 답을 찾아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가족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자극하고 환기를 할 뿐입니다. 아이는 독서의 내용을 다듬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익히고, 부모님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갑니다.

    부모님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을 묻기도 하고 아이의 생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떤 점에 특기가 있고, 어떤 점은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돌아온 셈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믿고, 칭찬을 해주세요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글로 연재해서 알리고 싶은 이유는 엄마와 아빠, 아이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서로의 힘을 의지하며’ 직접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감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은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함께 해줄 수 없으니까 미안해서 책을 사주고 학원에 보내고, 아이는 이게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길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서 주눅이 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쌓여갑니다. 집안일은 엄마를, 회사 일은 아빠를, 학교 일과 학원 일은 아이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가족을 이산가족처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얼굴 맞대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부족한 것인지.

    칭찬이 열쇠였습니다. 칭찬 위주로 첨삭을 하고 칭찬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자 부모님들은 점쟁이보듯 신기해하며 지적받은 부분을 반영하며 프로그램의 취지를 따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반영이 잘 된 점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영은 잘 안 되었지만 시도가 좋았던 점도 크게 칭찬했고, 잘하는 엄마보다 부족한 엄마가 나아졌을 때 크게 칭찬을 해줬습니다. 칭찬은 엄마도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는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칭찬 바이러스를 옮겼습니다. 노트 전체가 칭찬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실제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행복한 기록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필자소개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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