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거나, 생각하거나, 분노하거나"
        2010년 05월 10일 12:4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오행을 불러왔습니다만 얘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우선

    첫째,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 요소로 이뤄진 논리 구조이며
    둘째, 프랙탈(fractal)처럼 전혀 다른 영역들에도 적용되는 기본 구조이고
    셋째, 서로 다른 영역이라도 같은 요소끼리는 계통적으로 연결된다

    는 정도로 소개를 드립니다. 이걸 기본으로 오행과 정서의 관계, 정서들 상호간의 관계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행과 정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슬픔은 폐를 상하게 하는데 그걸 치료하는 정서는 기쁨(喜)입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사실은 오행의 상극(相克) 원칙에 따라 정해진 엄밀한 조합입니다. 슬픔(憂)은 오행에서 금(金)으로 분류됩니다. 금을 상쇄하려면 화극금(火克金)의 원칙에 따라 화(火)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거기에 해당되는게 기쁨이라는 겁니다. 이걸 ‘우상폐자이희승지(憂傷肺者以喜勝之)’라 표현합니다.

    지난 번에 슬픔에 잠겨 식음을 전폐한 처자가 광대패의 장난을 보고 한바탕 웃고난 뒤 화색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해드렸잖아요. 한국의 고전소설이나 판소리에서는 극한 슬픔의 순간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삶 속에서도 우리의 모습은 그랬습니다.

    옛날 상갓집 풍경을 한번 떠올려보시죠. 슬픔에 지친 상주 앞에서 술 마시며 희희덕거리고, 노름하면서 싸움질하고, 시끌벅적 희죽희죽 그렇게 서로의 슬픔과 한을 녹여냈던 겁니다. 혹시 이윤택의 연극 <오구>를 기억하시나요? 거기에 상갓집의 이런 모습들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문화는 단순히 우리 민족이 놀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이겨내는 지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나온 것입니다.

    갈수록 엄숙해지기만 하는 요즘의 상가에선 지혜는 보이지 않고 어떤 강제나 억압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저승사자의 유니폼 같은 검은 상복들이 쫙 깔려 있는 곳에서 우스개 소리 한마디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지 않습디까? 저는 일전에 어느 상가에서 고스톱 한판 돌리자고 했다가 후배들에게 망신만 당했답니다. ㅠ.ㅠ

       
      ▲ 현재 종영된 KBS 개그콘서트 코너 중 ‘분장실의 강선생님’ 중에서

    이야기인즉 천안함 유족들은 <개그 콘서트>를 보는게 좋겠습니다. 한바탕 웃기도 하고, 화사한 꽃을 곁에 두기도 하고, 밝고 붉은 계통의 옷도 입어보고, 그렇게 화(火)의 에너지를 빌어 슬픔을 이겨내면 좋겠다는 겁니다. 돌 맞을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영결식에선 좀 빠르고 가벼운 음악을 틀었으면 했습니다.

    슬픔엔 ‘개콘’이 좋습니다

    가수 김C가 천안함 사태로 예능 프로들이 결방된 것을 비판한 일이 있습니다. 예능 프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김C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뜻은 좋지만 슬픔을 이겨내는 장치까지 슬픔으로 도배할려는건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짓입니다.

    더구나 이런 짓거리가 자칫 다른 의도와 결합되어 있다면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최근엔 힘있는 사람들이 개그맨의 대사 한마디까지 시비하면서 웃음을 통제하려 들더군요. 하긴 그 자체가 개도 웃을 일이라 따로 ‘개콘’을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무조건 웃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以思解之)도 있습니다. 이건 오행의 역학 관계 중 상생(相生)의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토(土)의 기능인 사유작용(思)은 슬픔(金)을 풀어내게 합니다(生). 이것을 토생금(土生金)이라 표현합니다. 아마 유족 대변인 하신 분은 그 역할 덕에 슬픔을 좀 더 차분하게 볼 수 있었을거라 짐작합니다.

    원래 슬픔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속으로 무너지는 슬픔은 ‘우(憂)’라 하고, 원통해서 못살겠다고 외치는 슬픔은 ‘비(悲)’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은 ‘우’입니다. 비는 터져 나오는 것이라 겉으로는 화(火)와 비슷한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수극화(水克火)의 상극이론에 따라 수(水)의 정서인 공포심을 심어주면 비통함이 상쇄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목생화(木生火)의 상생이론에 따라 목(木)의 정서인 분노로 비통함을 해소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비상심포자이공승지이노해지(悲傷心包者以恐勝之以怒解之)’라 표현합니다.

    분노로 비통함을 다스리다

    유족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는 좀 그렇고, 대신 분노를 터트려 비통함을 풀게하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가령 장관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는 것도 응어리를 푸는 좋은 치료가 됩니다. 지난번에 왕을 화내게 해서 핏덩이를 토해내고 나니 비통함에서 벗어나더라는 이야기를 했던거 기억나십니까?

    물론 가장 좋은 치료는 이런 참담한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힘을 쥔 세상,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 득세한 나라에선 또 무슨 참담한 사고가 독한 싹을 키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일이 터질 때마다 죄없는 생목숨이 먼저 죽어나갑니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 온 국민이 병이 나게 생겼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근심(憂)이 비통함(悲)으로 바뀌고, 종국에는 거대한 분노로 터져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