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집은 나쁜 삶을 만든다"
        2010년 05월 07일 10:13 오후

    Print Friendly

    4월 말, 홍대 까페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비혼자, 성소수자, 반려동물 동거인이 집 얘기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 주거와 부동산은 보통 거시경제, 경제정책, 계급적 욕망으로 이해되는 영역인데 언뜻 비전문가이자, 주거 정책의 단위로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왜 모였을까.

    한국사회에서 집은 가족과 동일시된다. 동일시되지 않는 집은 투기를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만일 새롭게 집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은 신혼부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집은 정말 혈연과 혼인관계와 끈끈하게 엮여있는 물질적인 무언가이다.

    젊은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보통 부모들이 “너를 위해서 얼마만큼을 저축하고 있고, 결혼하면 얼마간의 집을 마련해주겠다” 이런 말을 정말 돈이 없는 가족, 정말 줄 수 없는 부모 아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하고 싶은 게 한국 사회 가족의 분위기이다.

       
      ▲ 레즈비언 ․ 게이 ․ 비혼 ․ 반려 동물과의 삶 등 다양한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자리에 모였다 (사진=Tari)

    그러면 다른 방식의 삶들은 어떻게 주거권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을까. 레즈비언 ․ 게이 ․ 비혼 ․ 반려 동물과의 삶 등 다양한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살아오면서 집에 대해 가지게 된 경험과 생각, 자신이 생각하는 주거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들을 가감 없이 풀어놓았다.

    사회 – 나영정(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참석 – 김네(이화여대레즈비언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회원)
              정일(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
              더지(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유의선(주거권운동네트워크 활동가)
              토리(진보신당 성정치위원장)

                                                              * * *

    불안, 거부, 불안정의 집

    나영정 –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본인이나 비슷한 상황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집과 맺는 경험에 대해서 꺼내어보자.

    김네(레즈비언)  2년 정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이화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이하 변날)에서 활동을 했는데 2명의 활동가들이 변날 활동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어야 했다. 집에서 성정체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너의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으면 집에서 살 수 없다”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다.

    활동을 하는 친구는 부모님께서 예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셨는데 이젠 안 하겠거니 하고 지내다가 그 친구가 다시 여자를 만난다는 얘기를 듣고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싸이월드 등에서 증거를 모으셨다. ‘변날’ 활동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어서 활동을 그만두었다. 가족으로부터 나 자신을 거부해야 하는 경험들이 대게는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분리되는 경험들이 많다. 대체로 주거를 불안과 거부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잠깐 가출하기도 하고 집에서 나와 살기도 하고 과외로 자기가 집세 내고 자기 생활비를 내는 친구도 있지만 그런 친구는 극소수에 가깝다. 20대로서 내가 나의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는 자체가 매우 낯선 경험이며,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다시 안정된 삶을 위해 집에 들어가려면 내가 나를 거부하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성소수자 여부를 떠나서 20대가 많이 취하는 주거 형태가 고시원, 원룸, 하숙. 이런식으로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안정성이란 이름으로 주거형태를 꼽을 수 있다.

    기숙사도 1년간 살다가 다른 집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이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고, 하숙은 내가 음식을 해먹거나 하는 부분에 자유의 제약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 단절된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지금 맡고 있는 반려 동물 중 한 친구의 탁묘를 맡고 있는데 그 친구가 확실한 주거 공간이 없어서 내가 1년 정도 맡게 되었다. 이런 경험도 흔히들 느끼는 주거 불안정성의 연장인 듯하다.

    정일(게이) – 제 레즈비언 친구가 있는데 결혼해야만 집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남자랑 결혼한 레즈비언 친구가 있다. 솔직히 집 사는 게 너무 어려워서 분가를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 얘기를 들은 커밍아웃한 일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럼 오빠는 네덜란드로 가서 동성 결혼하냐”고 했다.

    어이가 없는 것이 나는 일반인들이랑 똑같은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갔다 왔고 똑 같은 거 다 했지만 혜택은 하나도 못 받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부당하다고 느꼈다. 게이들 같은 경우 다른 일반인보다 살아남기 위한 능력과 스펙을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재산 상속과 같은 인센티브가 있었으면 외모나 능력, 스펙 등에 그렇게 많이 투자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회에서 다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절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더지(비혼) – 평상시 언니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비혼이란 단어는 좀 특수하다. 비혼이란 말과 1인 가구라는 말과 성소수자라는 말이 상황마다 표현될 수 있는 다른 위치. 다른 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니네트워크 주변 친구들 중 대학을 다니는 친구의 경우 학자금 대출이 기본적으로 있어 졸업할 때 쯤 주거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을 모으기 힘들다. 계층적으로 열악하다고 했을 때 더욱 그런 모습이 된다. 또 한 가지 모습은 집에서 독립해 나오지는 않았으나 애인 있는 집에 가서 사는 거. 월세를 나눠 내고 산다거나 엄마한테는 친한 언니라고 위장하고 엄마는 철썩 같이 믿고 “잘 부탁한다”고 한다(웃음).

       
      ▲ 좌담 참석자 (사진=Tari)

    그런데 이런 친구들 대부분 페미니스트다 보니깐 독립이나 자립이라는 게 화두가 안 될 수 없고, 갈등이 있다. 독립하긴 어렵고 독립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전략은 이게 유일하다. 어떻게 독립, 자립할 수 있는 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파트너의 집에 산다고 했을 때에도 파트너는 그 집을 부모로부터 얻은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윗 세대로부터 자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내 부모가 아니더라도 ‘부모-아이’ 간의 세대 간 문제이다. 그렇지만 주거 정책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청약 외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유의선(반려 동물) – 결혼을 하면서 집에서 독립했고 결혼을 하자마자 이 삶이 아닌 것 같아 이혼했다. 그리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1인 가구의 삶을 살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한 마리 두 마리 늘리다보니 6마리까지 늘었다가 탁묘했던 고양이는 보내고 현재 4마리이다.

    현재 35세가 넘었기 때문에 단독가구로서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으나 살아 왔던 자체가 체계적으로 의지하고 무언가에 신청하고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접근 가능한 동네의 월세로 다녔고 그러다보니 이사할 일이 많고 이사할 때 고려했던 것이 집주인이다.

    나이를 먹었는데 혼자라는 것은 ‘정상가족을 구성하지 않는 문제 있는 여성’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로 안 보이고 혼자 사는 여자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비정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게다가 반려 동물이 4 마리나 있다 보니깐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집을 내 놓게 되면 부동산에 열쇠를 맡기고 집을 보러 오게 해야 하는데 고양이가 있으니깐 집에 들어오게 하기 힘들고 집 보러 올 때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모기장 뜯어 놓고 그런 것에 대해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고. 집 수리비는 또 내가 내야 하고, 그런 문제가 계속 생기더라. 집 안에 반려 동물을 위한 전용 공간과 놀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공간을 맞추기도 어려운 그런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한 마리는 중성화 수술을 안 했는데 기르면 다세대 이런 데 살 때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 게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가 아쉽다.

    임시적인 삶, 불안정한 삶과 주거 환경

    나영정 – 전세자금 대출 기준을 보게 되면서 의문이 들었던 건 왜 하필 35세인가? 33세도 아니고… 1인 가구는 뭘 잘못 한 걸까.(웃음) 이런 생각을 했다. 정부가 정책을 짜면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고. 결혼 안한 젊은 층은 부모 집에서 살거나 임시적인 주거일뿐이라다고 전제했을 것이고. 그건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떤 인생 사이클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식의 정상적인 인생 상이 있을 것이고, 이에 맞추어서 주거 정책을 짜면 굉장히 좋은 정책을 펼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이제는 여기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1인 가구, 사적인 관계, 친밀성의 관계, 그런게 어떻게 차별 받지 않을 수 있는가로 나아가게 된 것 같다.

    애를 안 낳고 가족을 구성하지 않아도 부모로부터의 가족 관계는 거의 다 맺게 되고 부모로서의 관계가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 가족 관계를 지배한다. 나도 실제로 더지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부모님이 결혼 자금 미리 주는 식으로 전세 자금을 주셨다.

    그런 상황에서 그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함께 사는 이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성소수자의 권리이고 비혼자의 권리이고 반려 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라는 것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일 수 있겠다. 가족구성권이라는 단어로 운동을 시작하는 과정인 것이다.

    유의선 – 장애인 쪽 관련 활동을 해 오면서 느낀 것이 많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면 가구 단위로 인정해서 보장한다. 생계와 주거를 같이 하는 경우에 가구로 보고 여기 기준은 30세이다. 30세 미만은 부모와 따로 살아도 특별하게 취업되거나 돈을 벌지 않으면 한 가구로 보고 동일 보장 세대로 본다.

    예를 들면 20대 중반인데 어떻게든 독립해서 사는데 수입이 없으면 무조건 부모와 따로 살아도 한 가구로서 종속되고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애인은 워낙 자립이 어려우니깐 30세 이상이 되면 부모랑 같이 살아도 독립 가구로 인정해 주는 편이다. 여전히 어렵게 주거를 갖든 안 갖든 30세 미만이든 안정적 직장이나 취업이 안 되어 있으면 가족의 구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

    나쁜 집은 나쁜 삶을 만든다

    김네 – 사실 결혼할 나이인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산을 늘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는 기록을 얼마나 가지느냐의 문제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이동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옛날 기록들을 유실시킬 수밖에 없다. 돈 벌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기록들이 소장될 곳을 계속 잃게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집이란 그런 삶의 조건들로부터 많이 소외된 것이다. 주거라는 것은 한편으로 말 그대로는 환경 전체라는 생각도 든다.

    3월달 한겨레21 영구임대주택 아파트 사람들을 면접인터뷰를 봤는데 한 분은 “이 집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돈을 조금 모아서 작은 집이라도 샀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적게 벌어야 집을 유지하니 그 상황을 평생 유지하게 된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 나쁜 집은 나쁜 삶을 만든다. 빈곤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며 주거 불안정성 또한 그렇다.

    나영정 – 소속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김네님이 말하신 것처럼 계속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에 의해서 이사하고 살다가 종잣돈을 갖고 나와서 전전하다가 마포 구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결정적으로는 최근에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 하면서 지역에 대해서, 소속감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 보았다.

    지역 앞 세탁소에 가면 택배를 받아주시기도 하지만 아주머니와 같은 주민으로서의 관계를 맺기가 힘들고 나랑 같이 사는 애인 소개하기 어렵고… 동네 사람 누구에게도 내가 누구인지 밝히기 어렵고, 밝혀지면 오히려 나가야 하는 관계맺지 못하는 인생인데. 정말 정상가족을 벗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소속감을 갖고 살아가기 어려운 것 같다.

    토리 – 단절이란 걸 생각을 해 봤는데. 나는 항상 거주지에서 옮겨 갈 수밖에 없고 내 자산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해 왔다. 삶을 계획할 때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생각을 못 했다. 지역 공간에서의 활동이나 어느 병원에 오랫동안 다닌다거나 휘트니스 센터에서 오랫동안 운동을 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휘트니스 센터의 락커를 한 2년 대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좌담 참석자 (사진=Tari)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건 나의 건강이나 나의 삶 자체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의를 할 관계가 없다는 것, 그런 관계망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혈압이나 이런 거 관리 받지 못하다가 픽 쓰러져도 모르겠구나. 내가 그렇게 살아 왔다는 걸 누가 기록하겠는가. 혼자 살아간다는 거라고 그렇게 파편화된, 유리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영정 – 20대 친구들이 얘기하는 불안정함이라는 게 늘어나고 있는데, 평생 직장 개념도 없고 20대에 직장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지고.

    그런 걸 보면서 20대 청년층에 대한 대책이나 정책 방향 자체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일자리 문제 뿐 만이 아니라 거기에 따른 주거 문제 그런 것들이 다르게 생각되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자기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일기를 쓰고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기도 하고 자위나 섹스 등 성적 행위에 대해 보장받기도 하고. 어떤 통합적인 인간이 되는 것 아닌가. 나아가 공간에 대한 점유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에서는 자산의 문제와 직결되고.

    더지 – 35세 미만 단독세대에게 전세자금 등을 대출하지 않는 문제도 정부와 은행간의 입장조율이 아닐까 하는데. 35세 기준은 은행 입장에서는 취업이나 이런 게 지연되고 있고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한 것 같고, 단독세대주 불가기준은 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

    사실 1인 가구라고 했을 때 우리 엄마도 1인 가구이다. 그런데 엄마는 어쨌든 가족을 관장하는 사람이고 사위가 오거나 가족이 모이는 것에 대비해서 큰 거실 있는 집에서 사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젊은 1인 가구 같은 경우 나도 엄마 초대할 수 있고 식구를 초대할 수 있는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인 가구는 임시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라서.

    1인 가구 주거 정책, 기준과 정책 자체가 없다.

    유의선 – 지금 주택 정책이라는 게 임대아파트 정책과 장기 전세이다. 다가구 매입해서 장기 전세로 하는 정도인데. 수급권자와 장애인 위주이고 세대주가 많을수록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임대는 청약을 통해서 하는 것이지만 다 우선순위에 따라서 배분을 한다. 다가구 전세 매입 중에서 특이하게 1인 가구 용이 300호 정도 있다. 홈리스 운동 하시는 분들이 계속 문제제기를 하면서 고시원이나 등등을 매입해서 좀 더 리노베이션 해서 적절한 주거 공간으로 해서 주거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하고 있다.

    쉬프트는 보통 가격의 80% 수준이어서 2억대이다. 사실상 싸다고 하는데 절대 불가능하다. 3억 씩 하는데 80%일 뿐이니까. 1인 가구에 대한 주거 정책은 민간에서 고가로 공급되는 것 밖에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원래 경제 활동 인구에서 1인 가구를 세기 시작한 게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적인 접근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나영정 –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이 사실상 없다. 최근에 또 고민이 드는 것은….진보정당. 진보신당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고 하고, 얼마나 지을 건지 어떻게 지을 건지 건설사를 제어할 수 있을까, 공공 방식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다면 그 주택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되는가? 주택이 1년에 10만 호가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했을 때 실제 진보진영에서도 주거 공급 우선순위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받아들이거나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못한 측면이 있다.

    진보적인 시장이 나타나서 싼 주택을 공급했다고 해도 1인 가구나 비혼, 성소수자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여전히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앞으로 주거권 운동 진영에서든 진보 진영에서든 고민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적극적으로 나도 제기해 나가야 될 과정인 것 같다. 주택 정책에 대해서 다른 분이 더 하실 얘기가 있으면 이어나갔으면 한다.

    정일 – 동성커플의 경우 시민연대계약의 일종인 주거연대계약을 고민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방, 중앙정부 차원에서 투표를 하기보다 지방정부, 지방법원의 사법부에서 이런 법안이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지자체에서 그 지시를 받고 입법을 시키는 방식이 많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워낙 강하고 지자체가 자리가 안 잡혀서 어려울 수는 있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같다.

    또 다른 가능성이 없을까? 만약 나의 동거인과 같이 1인 가구 이상의 면적을 허락받거나 대출을 더 받거나 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계에 대한 어떤 식으로든지 공증이 필수적이다. 단지 같은 세대원으로 들어가서 인정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입법자의 측면에서 보면 남용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꺼려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동성이든 이성이든 커플관계라는 공증은 필수불가결한 것 같다. 이걸 동성애자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다양한 대안가족을 위한 장치로 주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혼인과 혈연을 제외한 관계를 지자체 차원에서 공증하고 주거, 보험 등의 권리를 묶어주는 제도를 지자체 차원에서도 도입이 가능할 것 같다.

    유의선 – 공공주택정책에 우선순위라는 것이 꼭 필요한가를 질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집은 많은데 저렴한 공공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장애인 쪽은 우선할당을 요구하고 있다. 1인 주거에 대한 기준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면 아까 얘기 나왔던 ‘누구에게 우선해서 줄 것이냐’에서 항상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당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이를 네 명 둔 여성이 “다자녀 가구 지원이 없다. 다문화 가정에 뺐기고 있다”고 한다. 주택 공급에서 어쨌든 다자녀 가구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면 1인가구를 위한 별도의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성소수자 관련해서는 지금 말씀하신 게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거에서는 35세미만 전세자금대출 기준이나, 혼인과 혈연이 아니라고 해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항하는 것부터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영정 – 주거뿐만 아니라 어떤 식의 파트너쉽을 인정하는 문제인데, 그게 되면 최소한 주거, 보험 같은 것이 따라올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조세정책에서 소위 정상가족을 벗어난 이들이 어떤 차별을 받는가를 조사하는데, 연말정산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참 사소한 설명으로 비추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주거는 우리가 오늘도 굉장히 넓은 의미에서 말했듯이, 단순히 전세 몇 평에 사느냐를 넘어서 생활양식의 문제와 긴밀한 것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래서 우리가 국가가 우리 파트너를 인정하냐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공식적인 단위로 우리가 인식된다는 것, 거기서부터 주거가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이다.

    물론 법적인 지위가 전무하기 때문에 주거를 요구하는 게 무리다는 얘기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최근에 폴란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폴란드 게이 커플이 전셋집에 살다가 사별을 했는데 파트너가 쫒겨날 위기에서 소송을 걸었다.

    폴란드 법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유럽인권법원에서 이 사안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인정의 측면에서 결국 승소를 했다.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만 있어도 이렇게 싸워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전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자들의 소외감, 유령 같은 존재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더지 – 파트너십도 있고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이런 것도 있는데 그래서 싱글은 이성애자도, 노인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도 지금 사회에서는 혼자 살 가능성이나 선택권이 있다. 이주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 좌담 참석자 (사진=Tari)

    일이나 다른 상황에 따라서. 1인 가구에 대한 어떤 지위를 갖는 게 너무 중요하다. 보통 1인가구, 고시생들은 떠날 사람이라고 인식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면 누군가는 또 들어온다. 그래서 1인 가구 정책자체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의선 – 주거빈곤층은 사실 불안정하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자기 생계와 연결되기 때문에 도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해야 하는데 뉴타운, 개발정책이 그렇지 않다는 것. 작은 주택들이 사라지고 재개발하면서 주변의 작은 주택 값이 오르고, 여파가 엄청나다.

    그래서 지금의 주거정책이 빈곤층이나 적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있는 것이 가장 문제이다. 오히려 1인 주거의 문제는 너무 홈리스 정책으로만 접근이 되고 제한적으로만 되고 있다. 쪽방이라도 주자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정책이 시행이 되고 있는데, 단순히 1인 주거는 2인 주거의 반쪽짜리면 된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의무는 다했는데 권리는 없다는 것이 꽂힌다. 다양한 가구들이 늘어나는데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건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정상가족을 요구하는 측면이기 때문에. 정말 발언함으로써 운동이 시작된다고 본다. 어쨌든 발언되지 않으면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바로 정책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계속 제기하는 것 필요. 

    정일 – 진보신당의 어드밴티지가 여기있다고 본다. 이런 것이 진보신당의 색깔이 되었으면 한다.

    유의선 – 진보신당에도 이 부분이 정말 필요하다. 당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호에 기대려고 한다. 주변에서도 “진보신당은 성소수자 얘기만 안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들어오고. 그런 얘기가 반복되면 후보들도 뒤로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문제도 주거권으로 너무 뭉뚱그리지만 말고 성소수자들의 존재들을 계속 드러내는 것과 함께 갔으면 한다.

    나영정 – 오늘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좋다. 주거권을 건드리면서 설레임도 생긴다. 소수자들은 어떤 권리를 얘기할 때 항상 특수하다는 눈길을 받는데 우리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의 하나인 주거권과 우리의 권리를 연결해서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파장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오늘 좌담을 통해서 주거권에 대해서 다양한 경험을 붙여보려고 했다. 사람들도 우리의 권리에 대해 피와 살이 붙어있는 모양새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바래본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