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은 분단체제를 허무는 돌파구다
    2010년 05월 05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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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민주당 후보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가 다시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연대 결렬의 주범이라는 비판 여론의 소나기에서는 얼마간 비켜선 셈이다. 그러나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연대회의의 틀을 깬 뒤의 일이라 그 의미와 효과는 크게 축소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퇴임과 서거 이후, 야권에 인물과 세력이 무너졌다는 탄식이 많다. 개인 차원에서 보자면, 매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력이 쪼그라들다 보면 인물도 성장할 수가 없다. 야권연대 협상의 틀이 깨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보개혁 진영 정치인들의 앞날이 험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권 분열 낳은 진보개혁진영의 오류

지난 경험을 보면 보수세력의 집권을 저지한 데는 연합이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진보개혁진영에서는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의 의미를 심각하게 탐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을 정략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풍조도 있고, 이념과 정책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는 통합과 연합이 없으면 필패하는 구도임이 환하게 보이는데, 진보개혁세력은 대중의 상식과는 반대로 행동하곤 한다.

대중은 분열된 야권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진보개혁세력은 대중의 감수성과 유리된 판단과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진전된 인식을 보이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아직도 진보개혁진영 정치인들 대다수는 연합과 통합을 경시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민주주의와 분단체제에 대한 중대한 두가지 오판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로는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대한 오판이 있다.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기본적으로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협약’이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민주주의를 고정적으로 확립된 제도 형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임이론으로 보는 정치연합

와인개스트(B. Weingast)는 공공선택을 규율하는 제도적 진화를 게임이론을 통하여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세개의 행위자를 제시하고 있다. S는 오랜 지배기간을 통하여 물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A와 B는 새로이 등장한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1회에 한한 게임의 경우, A와 B는 서로 협력하여 규칙을 위반하는 S에 ‘도전’하기 어렵다. 어느 한편이 ‘묵인(默認)’으로 돌아설 경우 다른 한편은 엄청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된 경험을 통해 A와 B가 협력하게 되면, S의 규칙 위반을 막는 최적의 결과를 구할 수 있다.

와인개스트는 영국의 명예혁명을 이러한 협약의 일종으로 보았다. 즉 A(토리당)는 B(휘그당)와 협력하여 S(국왕)에 대항하는 제도적 틀을 갖춘 정치적 국가를 형성하였다. 협약에 기초해서 국가가 자기강제력(self enforcement)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하여 비로소 민주화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노동당·민노총·전교조 등의 진출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87년체제’를 형성한 세력연합과 협약은 안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이 후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힘의 불균형과 분단체제라는 원인

’87년체제’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힘의 균형에 기초해서 마련된 것인데, 민주화세력은 이런 균형조차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의 정치지형을 간과했다. 그래서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보수세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과도한 개혁을 약속했다가 어처구니없이 후퇴하는 등 다수 국민을 실망시켰다.

게다가 노무현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보수세력의 협약 이행을 단속할 주체세력이 스스로 분열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기득권 세력은 중도세력을 포함한 거대한 보수연합을 이루었고 ’87년체제’의 민주화 협약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두번째의 중대한 오판은 분단체제의 현실에 관한 것이다. 서구에 비해 한국 민주주의체제가 불안정한 것은 사회세력 간의 힘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단과 전쟁 속에서 대결이 구조화한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분단체제 하에서 기득권세력이 과대팽창해 있어서 그에 대항하는 연합과 협약을 매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분단체제와 기득권 세력의 구체적인 운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와인개스트의 모델을 빌려 분단체제의 세력구조를 살펴본다면, 남북한 각각에 세개 그룹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남한을 보면 첫째, 냉전체제를 선호하고 극우적 의식을 지니고 있는 S그룹이다. 둘째, 산업화를 통해 형성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으로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선호하며 중도 우파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A그룹이다. 셋째, 중산층 일부와 서민층을 포괄하며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세력으로 진보적 개혁을 지지하는 B그룹이다.

민주화 협약의 토대를 단단히 다져야

북한에도 S그룹이 압도적인 지위를 가진 가운데 부분적 시장화를 통해 A그룹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단체제 속에서 안정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S그룹은 A그룹과 공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견제·적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참고해보면,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B그룹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는 남북한에서 S그룹이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A그룹을 포섭하여 B그룹의 대표성과 이익을 자의적으로 침해하는 체제이다. 여기에서는 국가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왜곡된 국가에 의해 공적 재산이 자의적으로 침식되고 사유화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한 전략적 출발점은 민주화 협약을 유지·단속할 수 있는 세력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민주화 협약이 공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목표를 고집하고 진보적 이념과 정체성만을 앞세우는 것은 필패의 구도를 만든다. 연합과 통합으로 민주주의 협약의 공고화를 가능케 하는 진보개혁 정치력을 구성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연합’은 분단체제 허무는 돌파구

실질적 민주주의와 복지의 확장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분단체제하에서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민주화세력과 시장화세력이 연합하고 협력하여 남북한의 기득권 세력이 규칙을 강제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단속해야 한다. 이 협약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적 국가, 즉 남북연합인 것이다.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남북연합은 남한의 민주화체제를 기초로 한다. 민주주의 협약을 지지하는 힘은 진보개혁세력의 연합에서 나온다. 연합은 분단체제를 허무는 돌파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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