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색 드러낸 민노, 본색 없는 진보신당
        2010년 05월 04일 0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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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불붙었던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 논쟁이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혼돈스러움의 정점을 향해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연합론의 실체

    정치적 언어라는 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도구이기도 하고, 또 그에 따른 정치적 입장 변화도 가능하지만, 정당에게는,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와 원칙이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국면에서 보여지고 있는 진보정당들의 ‘연합론’은 표 계산과 자리 싸움의 다른 표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선거 시기 정당이 당선을 위해 자리 싸움을 하고 표 계산을 하는 것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밖으로 얘기하는 언술 수준의 정치와 실제 실천하는 것과의 괴리가 심각한 수준이거나, 언술 그 자체에서 모순이 발생된다면 장기적으로 진보정치세력의 신뢰 타격을 가져와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다.   

    틈만 나면 진보정당 대통합을 강조하고, 지방선거 전에 통합 합의문을 작성해야 한다면서 진보신당을 압박하던 ‘통합의 열혈 주자’ 민주노동당은, 최근 들어 ‘진보통합’을 거론하며 내미는 진보신당의 손을 “반MB 연대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다”며 내팽개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정당 통합 촉구를 ‘정치적 공세’라고 규정하며, 선거연대를 통한 선 신뢰구축을 강조하던 진보신당은 최근 부쩍 진보 진영의 대단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진보정당 통합을 약속하는 이른바 민주노총 서약서에 사인을 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중앙선대위 출범식 모습.(사진=레디앙) 

    민주당 눈치보는 민노당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민주노동당은 몇 차례 대의원대회를 통해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펼쳐왔지만, 당 방침이 사실상 ‘민주대연합’으로 굳어진 뒤, 진보진영의 선거연합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당 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공동선거유세를 다니자”고 말하고 있고,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반MB연합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를 “한나라당 2중대”라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0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들어왔던 비판을 스스로 진보정치 내부를 향해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북한을 비판하면 ‘미제 스파이’로 몰아부쳤던 논리구조와 같다는 조소까지 나오고 있다.

    충남, 서울, 강원 등 ‘진보연합’을 논의하던 각 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전제로 내걸고 참여를 거부하거나, 혹은 민주당 눈치를 보며 합류를 미루고 있다. ‘4+4’를 통해 경기 하남시와 서울 성동구 등을 손에 쥘 듯했던 민주노동당으로서 유력 광역단체장이 없는 당의 약점을 수도권 최초의 기초단체장 배출이라는 과실로 메우는 것이 최우선이다. 

    반MB연합이든 진보대연합이든 그것은 각 당의 전략이나 전술의 문제이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은 또 하나의 당론으로 ‘진보정치 대통합’을 기반으로 한 진보연합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선거연대 방침의 모순 속에 민주노동당은 말로는 ‘진보정치 대통합’을 강조해왔지만 현실 속에서 택한 것은 늘 ‘반MB 연합’이다.

    차라리 ‘쿨하게’ 반MB연합으로 전환을 선언하고 진보정당 간 후보단일화는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최근 “진보대연합이 반MB연합의 전초 단계”라는 일련의 주장도 논리적 추론일 따름이지, 실천적으로는 그마저 부정된다. 서울의 경우가 이를 말해준다. 민주노동당의 본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진보연합은 그냥 해본 소리거나, 민주노총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정치적 제스처이고, 반MB-민주’당’ 연합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실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에 임하는 ‘본 모습’처럼 보인다. 선거 이후 진보연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혼란 겪는 진보신당 지역 조직

    진보신당은 어떤가? 지난해 대의원대회에서 ‘반MB 대안연대’, 즉 진보대연합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상황과 조건’이라는 전제로 민주당이 포함된 범야권 선거연합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으로 ‘대안연대’를 이끌어낸다는 명분으로 ‘5+4 협상’에 합류했지만 초기에 빠져나왔으며, 탈퇴의 결정적인 이유는 ‘대안’에 대한 이견보다는 ‘광역단체장 후보조정’에 대한 이해관계의 불일치였다. 대안은 사라지고, 자리만 문제가 된 모양새가 됐다.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출범식 장면.(사진=레디앙) 

    민주노동당이 ‘진보연합’은 레토릭 수준으로, 본색이 드러났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반MB연대를 중심에 두고 비교적 일관성 있게 선거 전술을 짜들어갔다면, 진보신당의 경우 ‘본색’이 실종돼버렸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진보신당의 지역 조직은 혼란을 겪고 있다. 부산에서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연대가 진행되고 있지만 협상단 대표가 합의한 합의문을 당 선대위가 부결시켰고, 후보가 직접 호소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만장일치로 합의문을 통과시키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으나, 중앙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울산에서는 야4당이 모여 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진보신당이 일방적으로 논의 테이블 잠정보류를 선언했다. 결국 복귀하면서 진보신당은 경선이 아닌 정치적 협상을 통한 단일화, 즉 울산시장과 북구청장 등의 빅딜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MB 대안연대라는 당의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2012년 앞둔 주도권 경쟁 이해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의 대통합과 관련된 진보신당의 방침도 모호하다. 중장기적 당의 발전전략에 대해 단 한 번의 당내 토론도 없었던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통합 압박에 “지방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를 쌓은 이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진보신당은 최근, 지난 3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 대단결 방향을 논의하고 지방선거 연대와 협력방안”을 논의키로 한 수준을 넘는 내용이 담긴, 민주노총 제안의 ‘통합서약서’를 쓰기로 해, 노동조합의 선거 지원을 받기 위해서, 그 동안의 방침을 바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노총에서 이번 통합서약서가 ‘노회찬-강기갑 대표회담 수준’이라고 확인해줘 쓰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서약서에는 엄연히 ‘당 통합’이란 구체적인 목표가 명기돼 있다. 당의 통합은 민주노동당 7만 당원과 진보신당 2만 당원이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물론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지방선거 이후 2012년 대선과 총선 이전 진보통합 정당의 건설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미일관한 논리나 그럴듯한 가치와 정책보다는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득표와 당선 등의 성과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진보양당이 자신의 논리나 가치, 원칙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언술과 실천의 괴리, 당위와 현실의 거리가 너무 크고, 눈 앞의 득표와 당선이라는 목표에 너무 집착해서 가치와 정책의 연대가 부차적으로 떨어진다면, 진보양당의 불신과 대립만 키워주는 선거 과정이 진행된다면 이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길게 봐서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생각이다. 

    본색 드러난 민주노동당, 본색 없는 진보신당이라는 비아냥이 두 당의 지도부나 주요 당직자 및 활동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해석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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