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피천의 자연을 고아 만든 조청
        2010년 05월 04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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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친환경이 고향인 울진 농가에서 수수쌀로 태어나 왕비천하늘 조청 댁으로 팔려갔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상(我想)이 센 놈은 본인이나 남에게도 이로움을 줄 수 없다고 방아에 넣어 아작을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뜨거운 찜 솥에 넣어 쪄서 엿질금이라는 중매장이를 통해 푹 삶아진 도라지와 함께 하룻밤 동침을 시켰습니다.

    몸도 마음도 하룻밤 새 녹아 버려 진액으로 변했고, 다시 가마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장작불에서 10시간이상 달여지고 또 달여져 존재감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존재감조차 없어진 내가 됐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나를 ‘수수도라지조청’이라 부르게 된 것 입니다. 이름을 지어준 아주머니는 내가 만인의 품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몸이 되어 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늘조청,
    그 조청의 이름을 짓고 잘 살도록 두손 모아 기도해준 울진 아주머니 이원복씨를 만나고 왔다. 신선들이 사는 곳, 혹은 세상에서 제일 속편한 곳을 찾으라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생각했다.

    좋은 물, 좋은 불, 좋은 바람.
    멋진 나무, 살아있는 흙, 깊은 산속, 자연으로 만든 먹을거리.
    거기에다 읽고 싶은 책으로 영혼의 허기를 달래고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의 허기를 달래는 경지, 뭐 이 정도면 신선이 노니는 곳쯤 되겠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왕비천하늘조청을 돌아 보면서 바로 그 경지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신선인지 신선이 난지 헛갈렸다.

    울진 가는길

       
      

    관동8경중의 하나인 망양정에 올랐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과 더불어 가히 사람들이 여덟가지 절경이라 이름붙일만 했다. 바다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낼수 있어 좋았다. 망양정은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져 있고 그 경치가 관동8경중에서 제일가는 곳이라 하여 조선시대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망양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농촌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누리는 큰 즐거움중의 하나, 농장 근처 문화유적이나 절경을 찾아가 잠시 내 몸을 그 품 안에 온전히 내려 놓는것이다. 허겁지겁 뒤따라 오던 내 영혼도 내 몸 옆에서 잠시 쉬어 가도록 안배하는 것이다

    바닷속에 용궁이 있다면 서해, 남해, 동해중에 아무리 봐도 동해바다 저곳에 있을게 분명하다. 맑고 깨끗하고 깊은 바다, 단순하게 그냥 바다만의 의미는 아니지 싶다. 아주 많은 바닷속 이야기가 있다.

    울진에서 포항으로 달리다 성류굴 안내 팻말을 보고 접어들면 왕피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입구 초입에 잔잔한 호수같이 시작되는 계곡이 보인다. 거의 다 왔나 싶었는데 아뿔사 여기서부터 굽이굽이 첩첩산중 한참을 돌아 오르고 내려서고 또 여러 번 반복을 해서야 겨우 마을이 보이고 왕비천 하늘조청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는 공장이고 또 들어온만큼 더 들어가야 조청을 만드는 그 사람이 사는 곳이다.

       
      

    티없이 맑은 물이 흐르고 인적 드문 산골에 달콤한 향기가 진동한다
    오지의 마을사람들과 끈끈한 정을 이어주고 오랜 ‘기다림의 미학’을 깨닫게 해주는 왕비천 하늘조청, 그 조화속으로 들어간다.

    조청25시

       
      

    새벽4시
    하루전 물에 불린 수수를 찜통에서 찐다. 찌는 동안 조청의 또 다른 재료인 도라지, 무, 조릿대 등을 4~6시간 가마솥에 넣고 푹 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몸에 이로운 영양소가 우러나오게 된다.

       
      

    오전10시
    도라지, 무우, 조릿대 등을 건져내고 우러난 물에 수수밥과 엿기름을 넣고 난 다음 8~12시간 정도를 삭히게 된다. 이때 온도조절이 아주 중요하다.

       
      

    다음날 오전 10시
    숙성이 된 조청을 짜고 난 다음 다시 가마솥에서 8시간 가까이 졸이게 된다. 화력이 좋고 불조절이 용이한 참나무로 온도조절을 하기 때문에 일일이 젓지 않아도 조청이 타지 않는다.

       
      

    조청이 다 고아져서 퍼내고 나면 무쇠 솥바닥에 조청누룽지가 눌어붙는다. 이거 긁어먹는 맛은 아무나 못 누리는 특권이다. 맛있다. 달지 않은 깊은 맛이다. 한 번 두 번 입에 물다보면 몇 번이 입에 가는지 모르겠다. 질리지 않는 은근한 단맛에 몸이 매료되는 것이다.

       
      ▲ 하늘조청은 바다, 땅, 산, 불의 기운이 모아 고아진 보약이다

    오후6시
    이틀간의 기나긴 과정을 거치게 되면 비로소 달콤쌉쌀한 조청이 완료된다. 전통재래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많은 양의 조청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맛은 아련한 기억속에 자리한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셨던 조청의 맛을 느낄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원복씨의 친정은 강원도 정선이다. 정선에서 어릴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조청 맛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부산에서 불화(佛畵)를 그리면서 20년을 살았다. 생계수단이기도 했고 창작활동이기도 했다. 불교의 이념을 담아내는 불화를 그린다는 것은 ‘혼자’를 의미했다.

    밤을 새우며 혼자 그리고, 생각하기도 혼자 해야 하고 우주와 자연을 대하기도 혼자 하는 일이다. 그러던중 그림을 그리러 왕피천 이곳에 들렸다가 너무나 맘에 들어 눌러 살기로 작정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머니의 조청을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그때 마침 폐교된 초등학교가 교육청 공개입찰로 나왔길래 제일 비싼 응찰가격을 써내서 낙찰 받았다. 내가 살집이기에 당연히 선택해야 했으므로 최고가를 써낸 것이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흘렀다.

    이 동네는 얼마나 골짜기가 깊은지 6.25때도 전쟁이 났는지도 모르고 지낼 정도였다. 전쟁이 한참일때 사람들이 이곳으로 하나 둘 피난을 오고 나서야 소식을 들었을 정도라고 하니 영화 ‘동막골’ 버전의 다른 모습이다.

    이곳 사람들은 마음먹은 만큼만 지어먹고 산다. 크게 욕심내지 않고 딱 자기 먹고 살만큼 농사짓고 풍요로운 자연속에서 마음이 부자로 산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이원복씨의 조청맛을 눈여겨 보던 울진군 농업기술센터의 권고로 조청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불화 그리기는 손을 놓은 상태다.

       
      

    참나무

    이원복씨와의 대화에서 참나무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다. 지난번 표고버섯이야기에서도 참나무의 물성과 성질에 대하여 느낌이 하나 가득 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참나무가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한다.

    참나무는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성질이 있다. 자신을 태우거나 썪혀서 다른 것의 근본이 된다. 썩어가며 표고버섯을 잉태했고 조청의 무쇠솥 아궁이에서는 스스로를 태워가며 자기 역할을 다한다. 조청은 무쇠솥 아궁이를 운영할 때 장작불보다 숯불로 온도 조절을 하는게 중요한데 다른 나무들은 2시간 이상을 숯으로 가져가기 어렵다.

    또 나무 타는 냄새는 나되 나무자체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는 음식을 조리하는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보통 나무는 음식에 나무 맛이 배기 마련이다.

    참나무재로 머리를 감으면 비듬도 안 생기고 잿물로는 항아리를 닦는등 환경친화적인 물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한방의 대표적 처방중의 하나인 경옥고를 고을때는 땔감으로 뽕나무 뿌리만 쓴다. 그래야 제대로 약 성분이 기운을 타고 흘러 다닌다. 조청을 고을때 참나무를 쓰는 이유도 같다.

    ‘타닥타닥’ ‘타다닥타닥’
    제 한몸 희생해가며 타고 있는 참나무를 보고 있으면 근심과 시름이 한 순간에 물러가고 잠시나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도라지, 조청, 조릿대

       
      ▲ 해안가 야산에서 조릿대를 채취하는 이원복씨

    도라지수수조청는 바다의 기운과 땅의 에너지와 산의 정기들이 다 모여서 만들어진다. 무와 도라지는 왕피천 마을분들에게 농사를 권해서 짓고 조릿대는 해안가 야산에서 얻는다.

    도라지 1~2년생을 쓰면 맛이 아리고 약성이 불충분해서 하늘조청은 5년근 이상 도라지를 40%이상 반드시 사용한다. 그래야 맛이 순화되고 약성이 활성화된다. 수수는 대부분 현미의 개념으로 쓴다. 박피만 살짝 한다는 의미다, 수수하면 생각나는 붉은 빛깔, 그 붉은색 내는 성분이 항암작용에도 좋다고 한다. 아기의 돌,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수수팥떡을 내세운 것을 보면 수수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한가지 아주 신기한 일은 수수조청을 그렇게 이틀 동안을 녹이고 졸이고 다른 놈들과 섞여서 나오는 진액인데도 먹어보면 웬지 꺼끌꺼끌하다는 느낌이 든다. 만져보면 액상인데 입속에서 느끼는 조화속이다.

    자연 선순환

       
      ▲ 부산물 발효퇴비장 & 무쇠솥 가마 굴뚝

    왕피천의 바람과 참나무는 에너지로 타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찌고 졸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잘 발효시켜 미생물발효퇴비를 만든다. 도라지밭이나 무밭에 밑거름으로 쓰니 버릴게 하나 없다. 자연의 순환고리 안에서 사람도 작물도 모양만 변할 뿐 비우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비워가면서 조청을 만드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마을 주민들에게는 수수 무우등 원료작물을 재배하게 하여 소득보전에도 도움을 주고 받는다. 왕피천 산골인심이 조청속으로 저절로 녹아 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세속에 찌든 계약 관계에서 나오는 조급함, 얍삽함, 안타까움, 서러움… 그런 느낌들은 들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당기고 마음 가는 대로 손이 가고 손가는 대로 마음이 따라간다.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왕피천 사람들은 산다.

    앞으로의 꿈

    전통방식으로 시간과 농촌의 기운과 정성으로 만드는 조청 만들기는 사업적 개념으로 크게 키우고 말고 하는 컨셉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바라는게 있다면 우리의 어린아이들이 다 이런 조청을 먹고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꿈을 피력한다. 하늘조청은 발효식품으로 위장, 대장에 좋고 항생제로 몸의 면역력이 저하된 경우 몸의 기를 북돋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조청공장을 리모델링할 생각이다. 공장은 물이 얼마나 좋은지 이끼도 안끼고 약수 이상 간다. 리모델링을 해서 체험공간을 넓히고 도시가족들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서 아주 낮은 가격으로 가정에서도 손쉽게 쓸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조청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영양제 조청

    조청은 두뇌건강에 좋은 필수음식이며 아이들의 학습시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다. 벌꿀은 제한된 꽃으로만 밀원을 조성한다면 조청은 흙속에 있는 영양소를 고스란히 받아낸 뿌리와 줄기, 잎과 열매, 꽃에서 얻어낸 종합영양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조청은 우리고유의 음식을 장만할 때 좋은 토속적인 풍미와 맛을 살릴 수 있다. 한과나 약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자를 만들때 쨈 대용이나 각종 요리시 양념으로 사용하면 좋다.

    조청은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으므로 각종 영양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우리의 안전한 먹거리다. 조선왕실에서는 왕세자가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조청을 먹었으며 과거 보는 선비들의 짐보따리에는 조청단지가 필수품이었다.

    가마솥 3개에서 나오는 조청의 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1박2일의 ‘짧지만 긴 기다림’끝에는 언제나 짜릿한 달콤함이 있다. 그니가 짧은 시간안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는 현대식 기계들도 많이 있지만 이런 재래방식을 고집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릴적 어머니가 강원도 정선에서 해주셨던 그 조청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어머니의 옛 손맛을 따라 갈 수는 없지만 저처럼 그 맛이 그리운 분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지금이 내게 가장 큰 보람이다.”

    차 한잔의 여유

       
      

    집 바로 아래가(학교운동장 아래)왕피천 천연계곡으로 장관을 이룬다. 봄물이 살짝 오른 나뭇잎과 물빛이 나그네 마음을 사정없이 잡아 흔든다.
    “이런 데서 차를 마시면 오염을 마시는거 같아요 ^^. 주변이 워낙 깨끗하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 받다가 50대에 막 들어선 내가 "지나보니 나이 50은 죽어도 안 오는줄 알았습니다." 했다. "나이 50은 자기가 뛰어 넘는 것입니다" 바로 받는다.

    무릎을 탁치며 “맞네요, 정말 그렇군요.”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깊은 자연속에 묻혀 사니 내가 나이를 먹었는지 나이가 나를 먹는지 구분이 안되고 잊어먹고 살게 된다. 1957년생, 개념 있는 그녀의 상황풀이는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작년에 친정어머니가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막내야 막내야!” 막내딸 이원복씨를 영혼에 품으시고는 하늘로 가셨다. 엄마의 뜻을 막내가 이어 받는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손맛을 놓치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조청에는 어머니의 ‘얼’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그 고백이 안병권고향보따리에서 하늘조청 이야기를 다루고 소개하는 이유이고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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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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