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북한 소행 단정, 외교 발목 붙잡나
        2010년 05월 04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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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일 중국을 전격 방문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출렁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우리 정부가 천안함 침몰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문 소식이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불과 사흘 만에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방중한 이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 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천안함 문제 공조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던 청와대의 입장이 머쓱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너무 일찍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스스로 외교적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겉으로는 "외교적 결례는 아니다"라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김정일 후진타오 금명 정상회담>
    국민일보 <천안함 국제공조 흔들기? 중 태도 애매…정부 부담>
    동아일보 <‘북-중 천안함 거래’ 우려>
    서울신문 <북·중 정상 ‘천안함’ 논의할 듯>
    세계일보 <오늘 후 주석 만나 ‘천안함’ 논의할 듯>
    조선일보 <애매한 중…’천안함 국제공조’ 흔들리나>
    중앙일보 <김정일은 ‘천안함 고립’에 위기감 느꼈다>
    한겨레 <김정일 전격 방중…6자·경협 논의할 듯
    한국일보 <김정일-후진타오 천안함 논의할 듯>

    김정일 위원장, 중국 깜짝 방문 왜?

    경향신문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남북은 물론 중국, 미국까지 얽힌 복잡한 외교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의 개입을 전제로 강경대응을 표방해온 한국정부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경향신문 5월4일자 1면

    당초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난달 초로 거론됐으나 3월 말 천안함 사고가 터지고 북한 개입설이 제기되면서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이 사고 원인이 규명되기 전에 김 위원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외교적 부담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허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성사된 것은 정치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예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북한은 중국 측의 방중 허가를 얻음으로써 천안함 사고와 무관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효과가 있고, 중국도 북한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이번 방중은 천안함 사고로 수세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 개입설에 대해 적극 해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중국이 중립적 입장에서 침묵만 지켜도 북측에는 불리할 게 없다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중국의 경제지원 등에 대한 답례로 중국이 원하는 ‘6자 회담 재개’라는 선물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6자 회담 재개를 바라고 있다.

    북, 천안함 연루 부인-6자회담 복귀 선언할지 촉각

    한겨레도 김 위원장의 방중에 쏠린 국제 사회의 관심을 전환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천안함 침몰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국면이 자꾸 북쪽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 자체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슈전환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 5월4일자 3면

    특히, 전문가들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큰 틀에서 보면 김 위원장의 방중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져온 ‘북핵 6자회담 복원’ 과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다이빙궈 국무위원, 10월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고위 인사의 방북이 잇따랐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올 2월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방북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중 등이 이어진 바 있다. 북한과 6자회담 관련국들은 이런 조율과정을 거쳐 ‘북-미 추가접촉→6자 예비회담→6자회담 재개’라는 중국 쪽의 3단계 방식에 동의한 바 있다.

    문제는 이렇게 사태가 흘러갔을 경우 사고원인 조사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북한을 지목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6자 회담과 천안함 두 사안을 연계시켜 온 외교적 스탠스와 배치되고, 특히 중국의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활발하게 펼친다면 미국도 계속 한국편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아진다"고 전망했다.

    실제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달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천안함 사고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6자 회담 재개 노력이 중단되는가"라는 질문에 "반드시 직접 연계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도 "사고원인에 대한 명확한 증거없이 미국도 연계를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칫 한국만 강경론을 고집하다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신문, ‘천안함’ 한-미-중 공조체계 전략 차질 우려

    보수신문들도 일단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면서도 북-중 정상회담이 천안함 국제공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우리 정부 안에서도 ‘천안함 사건 해결의 국제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김정일이 천안함 물타기와 경제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방중했을 것"이라며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힐 경우 한·미·중 간에 입장 차가 생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4면 <북, ‘천안함 물타기’ 경제지원’ 두 마리 토끼 노린 듯>).

       
      ▲ 조선일보 5월4일자 1면

    현재 북핵 6자회담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결과가 나올 때까지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천안함 결과가 먼저’라고 말하고 있는 미국도 6자회담에는 내심 구미가 당기는 분위기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천안함과 핵은 별개라는 논리로 한국과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다. 또, 김 위원장은 중국 측에 3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정을 해치지 않겠다는 언급을 하면서 ‘평화공세’를 펼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는 이런 이유로 "천안함 이후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을 설득하려던 우리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전망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1면 <애매한 중¨’천안함 국제공조’ 흔들리나> 기사에서도 "김 위원장이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후 주석에게 전하고, 중국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천안함 원인 규명에 따라 6자 회담 재개 여부를 비롯한 대북 정책 기조를 결정한다는 한미 공조원칙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과 섣부른 약속을 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6자회담 의장국으로 회담 재개에 책임을 지고 있는 중국이 천안함 사건으로 만들어진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6자회담의 틀에 넣어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3면 <북, 경제-천안함-후계문제 얽혀 "더 못미룬다" 판단한 듯>).

    한·중 정상회담 띄우던 청와대, 김 위원장 방중에 심기 불편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허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은 3면 <한·중 정상회담 띄우던 청 / "중국 이해 안 간다" 머쓱> 기사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천안함 사태 와중에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문을 받아들인 데 대해 실망이고 우려스럽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 경향신문 5월4일자 3면

    정부여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천안함 사고의 북한 관련설은 날조’라는 북한의 입장을 선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6자 회담 복귀 카드 등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달 30일 열렸던 한중 정상회담이 더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당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고 대응을 위한 중국의 관심과 협력을 요청했고, 후 주석은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의 뜻을 표시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에 대해 "후 주석이 한국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평가했다"며 "오늘 정상회담은 양국 간 공식협의의 첫 단추"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중국은 한국의 강경대응 기조에도 불구하고 사흘 뒤에 김 위원장의 방문을 허가함으로써, 한-중 간 공동스탠스를 자랑하던 청와대는 머쓱해졌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를 보면 정부여당의 외교전략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도 든다. 중국의 외교적 입장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베이징 정법대의 한 교수는 조선일보에 "중국은 북한의 핵 문제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경제난 등으로 붕괴 위기에 처하는 것도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장융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양국(북중)관계가 한층 더 강화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북한의 경제발전 등이 탄력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해 6자회담과 천안함을 연계하려던 우리 정부의 입장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

    한겨레 "천안함 참사 원인규명과 핵문제 등 한반도 국제현안 논의는 별개"

    한겨레는 사설 <김정일 방중, 6자회담 재개 디딤돌 돼야>에서 아직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천안함 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겨레는 "회담에서 (천안함 문제가) 거론되더라도 북한은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중국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일 듯하다"며 "사실 북한의 개입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중국이 먼저 이 문제를 꺼낼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천안함 참사가 핵문제 등 한반도 관련 국제현안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도 사설 <한반도 평화 위해 중국이 적극적 역할 해야>에서 정부에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경향신문은 "정부와 여당은 천안함 사고 원인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칫 우리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며 "김 위원장이 이미 중국에 도착한 만큼 북중 정상회담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취할 자세"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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