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고등어의 커밍아웃
        2010년 05월 03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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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영하였지만 나는 가끔 시간이 맞으면 드라마 <살맛납니다>를 보곤 하였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어른아이 장인식(임채무 分)이다. 자수성가한 타입으로 부자지만 가부장적이다. 자신의 핏줄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들을 동원한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질 떨어지게”와 “내가 네 속셈 모를 줄 알고?”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대사라 하겠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누구 덕에 이만큼 먹고 사는 줄 아느냐” 라고 말하며 배우자마저 직접 점지해주겠다는 식의 안하무인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황당하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아버지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만 인식만큼 부자가 아니거나, 인식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일 뿐. 그래서 어쩐지 그의 행동은 몹시 과장되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현실 속 많은 아버지들 역시 드라마 속 장인식처럼 자식에 대한 소유를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화한다

    그의 주장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식이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그는 자식들이 모자람 없이 살도록 뒷바라지를 해줬고 아버지로서 부족함 없이 행동해왔다고 믿는다. 음모를 꾸미면서도 아들에게 “다 너 잘 되라고 내가 이러는 거야.” 라고 말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들에게 ‘성공한 삶’을 선물하고자 하며 그러기위해 악덕 교사를 자청한 것이다.

       
      ▲ MBC 드리마 <살맛납니다>의 한 장면

    물론 문제는 성공이나 행복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다른 데서 발생한다. 제법 전형적인 이런 갈등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익다. 많은 매체에서 가족은 그런 식으로 그려져 왔다. 이런 것을 세대차라고도 할 수 있을까. 보리 고개를 넘어온 누군가에게 수입쇠고기 촛불집회는 황당한 소란이고 대기업 노조의 파업은 배부른 소리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더 나은 삶’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만드는 것일 테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롯데 캐슬에 살고 친구가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그랜져를 보여주는 그런 삶이 누군가에겐 좇아야 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또한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와 당신-우리는 불화하고 때론 갈등한다.

    동물을 키우면서 자식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외로 내가 매우 성심성의를 보이고 있었고 어색하던 사이가 점차 가까워져 마치 하나가 되어 가는 것 같은 그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런 ‘하나’가 되어 가는 느낌이 바로 위험한 것임을 깨닫기도 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들이 꿈꾸는 대로 살아주길 바라는 욕망 역시 아마도 이러한 단일 개체(unity)에 대한 환상과 연관되는 것이라 짐작한다.

    마지노선은 ‘상식’일 것이다. 못해도 상식선의 사람을 만나 상식선의 직장을 갖고 유별나지 않은 삶을 영위하더라도 그럭저럭. 못해도 이방인은 되지 않는 선에서 살아가는 것. 잘나가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튀는 것 없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것. 물론 너는 나의 것이니 우리의 유별난 연대 의식과 합일체로서의 목표의식을 공유, 상속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전제 조건이라 거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가? 자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자식은 이미 떨어져 나간 나무 가지다. 원래 나던 뿌리나 줄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완벽한 개인(individual)이다. 그래서 때로 부모는 화가 난다.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고역이다.

    애증은 나의 힘

    나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실업자이다. 아버지는 내가 행정 고시를 치길 원하지만 나의 꿈과 달라서 나는 그것이 싫다고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잠재적인 것으로 내가 여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아마 알게 된다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관계를 보며 양 쪽은 모두 지치거나 폭력적이 된다.

    사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나와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다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에 처해있기도 하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줄 알았던 그가 어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실망을 했고, 그는 대학 4년간 조금씩이라도 늘, 장학금을 받아왔던 성실한 줄 알았던 딸이 후배(사실은 애인인 것을)와 만날 놀기만 한다는 사실에 실망을 했다. 이런 식으로 균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 생각’을 시도하였다. 드라마 속 장인식의 캐릭터는 낯설고 인위적인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좋은 삶’을 살길 원하고, 여러 의미에서의 실망을 주질 않길 바라는 그러한 욕망은 존중할 만하다. 사실은 정말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끝내, 실망시키고야 만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따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내 강아지’ 이니 자녀의 행복을 내가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지만 자명한 사실이다.

       
      

    성별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른 두 사람, 부녀. 때로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는 근친 강간이 벌어지기도 하고 딸을 때리거나 딸에게 욕을 하기도 하는 부녀. 딸이 애교가 많고 예뻐서 술 한 잔 먹고 들어온 아버지와 서슴없이 살을 부대끼기도 하는 부녀. 이 말 많고 탈 많은, 사연 많은 관계 앞에서 나는 오히려 할 말을 잃게 되는 경험을 한다.

    포기하지 않는 한 ‘평범한 여자애’같지 않는 나와 아버지는 난감해 지는 것이다. 그 평범한 부모의 욕망을 내가 채워주지 못할 것 같은 예상은 오직 내 안에서만 존재한다.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내 최종의 고민은 커밍아웃이다. 완벽하게 부모를 실망시킬 절대적인 것. 지금까지의 욕망 운운은 사실 이 이야길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자식이 “사실은 난 동성을 사랑합니다.”하며 커밍아웃한다면 어떨까? 이것이 체크남방을 입을 지 라운드 티를 입을 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숨은 더욱 깊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두서없는 이 글의 예상 독자는 어떤 가장(家長)이다. 댓글로는 이런 것이 어울리겠다. ‘섣부른 일반화가 불편하다.’ ‘나는 진보적인 아버지라 자식과 잘 지낸다.’ ‘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나는 그 아이에게 자율적인 삶의 선택권을 주었다.’ ‘ 어디 너는 하늘에서 떨어져서 세상에 태어났나?’

    모든 가정사에는 그 나름의 비극과 추억이 깃들어 있으니 이 글은 그냥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맞아 어버이들에게 바치는 자녀의 머릿속 알아보기 1편쯤이라고 해둬도 좋다. 또한 이 글은 철저히 자식의 입장에서만 작성됐다. 그러니 빈틈이 많고 갸우뚱할 만한 곳도 많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많은 가족들에게 분주한 달이다. 부모나 자녀, 군사부일체의 가치를 이어받아 스승도 한 가족처럼 챙겨야 한다. 나는 이 광경을 예상하며 딸들과 애매하고 마주 선 아버지들을 생각한다. 그러다 동성애자 딸로서 나의 ‘안전’을 고심한다.

    많은 동성애자들, 특히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가족 내에서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10대의 경우 자신들의 정체성이 드러났을 때에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때로는 쫓겨나기도 하고 스스로 가출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20대가 된들 갑자기 독립을 하지는 않는다. 조금은 더 자유롭겠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왜 굳이 아버지를 거론한 것이냐 하면 어머니보다 자식과 친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개의 아버지는 군대식 소통방식을 사용한다. 권위적이다. 그래서 레즈비언이나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들과 감수성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아버지들이 빚어내는 어떠한 분위기는 공포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레즈비언 자녀의 소원이라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가장 잘 알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모르고 아버지는 나를 잘 모르는데 중요한 그 한 가지는 미궁의 여러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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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지금은)레즈비언. 백수로 지낸지 석 달 만에 실없는 소리로 하루의 반을 채우는 무척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실업을 궁극의 놀이로 발전시킬 방법을 고심하지만 동시에 심연이 아득하다. 4월 한 달 간 세 번의 글로 근래의 사소한 단상들을 풀어볼 예정이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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