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 가치 배신, 한나라 제 무덤 파
        2010년 05월 03일 12: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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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남부지방법원의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 결정을 어기고 전교조의 명단 공개를 강행하자 법원은 계속 명단을 게재할 경우 1일 마다 3,000만원을 부담하라는 간접강제를 추가하였고, 이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반발하면서 15명의 의원이 조전혁 의원의 행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남부지방법원 판사에 대해서는 좌파 판사라고 거명했고, 조전혁 의원은 테러수준의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사실 이 사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은 거의 개그 수준이다. 선거 때 일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입장에서도 소탐대실이다.

    왜냐하면 법원의 판결은 대개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99% 이상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불복종은 장기적으로 법원 판결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해서 법의 결정을 무시해도 좋다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행태는 자신들이 떠받들고 있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다.

    2.

    조전혁 의원이 테러 수준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했는데, 1일 1억 원의 간접 강제를 부여받은 사람은 무슨 공포를 느껴야 할까. 언론보도에 의하면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과 금호타이어 노조위원장은 불법 전면파업을 할 경우 1일 1억 원의 간접강제 결정을 받았는데, 3천만 원이 테러수준의 공포라면 박유기 위원장 등은 테러가 아니라 살해 수준의 공포를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교원노조 명단

    이처럼 노동운동가들은 일상적으로 테러 수준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조전혁 의원의 엄살(?)을 보면서 체제가 보장해주는 기득권의 안락함 속에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이들이 한나라당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든 모르든 지배질서가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 모르다보니 더 가혹한 통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3.

    3천만 원 간접강제 결정을 내린 재판부를 보니 진보신당에서 제기한 이병철 탄생 100주년 KBS 열린음악회 방영금지가처분 결정을 기각한 재판부다. KBS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이 기각 결정에 대해서 필자는 할 말은 많지만 판사 개인에 대해서 ‘보수 꼴통 판사’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점잖아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후련하기야 하겠지만 개인의 성향을 문제 삼아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고, 이러한 표현은 서로에게 증오와 적대감을 증대시켜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는 이 재판장을 좌파판사라고 했다고 하니 우스운 생각이 든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좌파판사 때문이라고 하니, 좌파가 무슨 만악의 근원도 아니고,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닌가.

    좌파/우파의 구분이 정치노선과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사생활보호에 손을 들어준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무슨 좌파란 말인가. 도대체 사생활보호라는 가치를 등한시하는 우파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금시초문일 따름이다.

    4.

    한나라당 의원 말대로 전교조가 비밀단체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밀단체가 아니면 모두 구성원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회사의 임직원 명단이나 향우회 회원 명단, 심지어 한나라당 당원 명단도 몽땅 공개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여기서 사생활의 자유가 나온다. 헌법은 사생활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 그 구성원들이 명단 공개를 원하지 않으면 국가가 일방적으로 이를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교조는 명단을 공개하지 말도록 수차례 요구했으니 당연히 이를 공개하려면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고, <한겨레>에서 지적했다시피 교육 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는 교육 관련기관의 정보를 공개할 때 학생과 교직원의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말도록 했다.

    실제로 국가기관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일부 성 범죄자와 고액체납자가 거의 유일하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고액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한 일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합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범법행위 특히 시민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세금 체납자 및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성 범죄자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교조는 노동조합이다. 지금까지 국가기관에서 어떤 노동조합의 조합원 명단도 공개한 바 없다. 당연한 것이 노동조합의 명단이 공개되면 당연히 사용자가 그 사람들에 대해서 불이익을 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당원명부의 경우는 중앙선관위조차 볼 수 없으며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 사건의 경우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수차례 기각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아마 판사들이 보기에도 야당의 당원명부가 수사기관에 넘어가면 정부에서 이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자기들에게 99% 유리한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부당한 법질서에 대해서 불복종해도 좋다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파의 가치에도 충실하지 못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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