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서울을 꿈꾸면 안 되나요?"
    2010년 05월 03일 12: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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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전, 내가 대학에 들어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조국통일’을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번뜩였고, 그들의 말투에도 비장함이 서리곤 했다. 물론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같이 놀 때 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나오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곧 1톤짜리 돌로 짓누르는 것만 같아졌다.

운동권, 그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정말 예민한 문제에 있어서는 진지하지 않곤 했다. “어차피 다 좋은 세상 만들어 잘 살아보자는 거 아니냐?”라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함께 하자고 하곤 했다. 그리고 학생회 선거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금 자기들 조직에 있는 사람들로만 학생회가 꾸려지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그들의 ‘이론적 빈약함’이 싫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 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곤 했다. 그들은 일상에 있어서도 진지하곤 했다. 그들은 이론적으로도 치열했고, 삶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며 매번 현장에 투신하겠다고 외치곤 했다.

어떤 특정한 술집, 특정한 안주. 특정한 말투, 특정한 노래. 상상된 ‘민중’의 경험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고 그것을 멋있다고 머릿속에 새기곤 했다.

두 조직은 굉장히 달랐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내가 체험했던 것이 있다. “난 좌파에요.” 혹은 “난 빨갱이에요.”라고 했을 때의 긴장된 분위기였다. 한 쪽에서는 ‘좌파’라는 말이 다른 정파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한국 사회에 있어서 부차적이야.”라면서 나를 꾸짖으며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 “진보적인 지식인~” 어쩌고 하면서 넘어갔고, 다른 한 쪽에서는 “좌파의 실천성 담보”라는 말로 책임감에 대해 말했다.

이상한 강박이 느껴졌다. 이건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는 아닐까? 좌파가 아닌 ‘진보’라는 그들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 이야기의 비장함이 말하는 좌파의 삶은 도대체 뭔가? 그 말을 했던 선배들은 집에 가서 어떤 ‘민중의 삶’을 하고 동네에서 친구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이야기를 하긴 할까?

좌파들의 레드 콤플렉스

성격이 못된 나는 일부러 습관적으로라도 ‘좌파’라는 말을, ‘빨갱이’라는 말을 누구에게든 일부러라도 하고 다녔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하고도 지겹게 놀면서 이게 ‘빨갱이 스타일’이라며 희화화도 하곤 했다. 매번 “이 동네를 빨갱이가 접수하면 말야!”라고 하면서. 그런다고 빨갱이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작년에 ‘간지 좌파’, ‘패션 좌파’ 등의 말들이 잠깐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힐난의 언어였지만 이제 디씨 좀 돌아다니거나 블로그 좀 하는 사람들에게 ‘좌파’라는 말은 별로 무거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좌파’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의 강박을 더 많이 지닌 건 이제 정치적 좌파와 진보정당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들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긴 하다. 바로 술자리다. 거기서는 현대 좌파 이론에서 ‘아이돌’로 여겨지는 랑시에르, 아감벤, 바디우, 지젝, 발리바르를 말하는 좀 젊은 축의 좌파들과 레닌과 맑스, 조금 더 나가면 알튀세르와 그람시를 이야기하는 좀 나이든 축의 좌파들이 ‘혁명’이라는 말을 1분에 한 번씩 이야기하면서 싸우기도 한다. 물론 ‘이론 오타쿠’가 아니면 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매불망 찾는 ‘민중’들과는 같이 있어도 도무지 잘 섞이질 못한다. 원래 좌파가 재미없는 인간들이라 그런가? 근데 꼭 좌파가 재미없는 것 같지도 않고, 앞의 이야기를 하자면 “난 빨갱이야”라고 외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슨 말이냐고?

대처 수상과 빨간 런던

1981년이었다. 영국에서 선거마다 노동당은 족족 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명박의 한나라당 정권 정도는 게임도 안 되게 ‘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지금 좌파들이 앉아서 매일 성서의 요절 말씀처럼 되뇌는 ‘신자유주의’라는 걸 유럽에서 처음 했던 인간이 대처니까 말이다.

‘급진 우파’라는 형용 모순이 가능했던 그녀의 시절이었다. 그 때 좌파들은 다들 우울해 하곤 했다. 세상 망할 것 같은 푸념을 딱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의 아빠들의 굳은 얼굴 표정이 말해 준다. ‘불패의 광부노조’도 아작 났다.

   
  ▲지하철 출근 중인 ‘붉은 켄’ 런던시장.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영국 노동당이 런던 시의회 91석 중에 49석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1981년 5월 28일, 런던 시의회의 장, 우리 식으로는 런던 시장이 된 켄 리빙스턴은 “런던은 우리의 것”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그에게 ‘빨갱이 켄’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켄 리빙스턴은 오히려 그 말들을 더 좋아했다. 영국의 자료들을 뒤지다보면 켄이 언론들과 인터뷰하면서 “세상이 불만이면 지금 당장 당신이 데모할 시간!”이라면서 익살스레 외치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그는 ‘빨갱이 켄’을 애칭으로 받아들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었을까?

뭐든 민영화 해버리고 규제를 풀어버리던 대처 정부에서 ‘빨갱이’ 켄이 이끄는 런던 시의회는 취업훈련을 재정적으로 보조했고, 공공 탁아시설을 만들었고, 대중교통 요금을 할인했다.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도입했던 대중교통 환승할인도 사실은 런던시가 1983년 3월 시행했던 ‘티켓 하나로(Just The Ticket)’ 정책이 시초다.

급진적 상상력의 승리

또 영국 전체를 뒤흔들던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의 순간에서 ‘일자리’를 방어했다. 그리고 일자리에 대한 정책은 런던의 사기업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런던 시의회는 ‘이윤이 아닌 사회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기업에게 시의회가 만들어 낸 비영리 투자은행인 ‘런던 기업위원회’를 통해 저리의 대출을 제공했다.

집권하고 한참 신자유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던 대처 정부에게 영국의 수도 런던은 가장 적대적인 사회주의자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대처는 선거를 통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되는 일이 아니었다.

대처는 이러한 흐름이 두려워 보수당 다수의 의회에서 1986년 지방세 상한제를 도입하고, 런던과 6개 대도시 의회를 폐지해 버린다. 선거가 없어져서야 ‘좌파 치하’의 수도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처는 자신이 선거도 모르는 독재자라고 낙인 찍히는 것보다 당장의 사회주의자들의 수도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빨갱이 켄’은 심지어 영국 노동당 내에서도 주류가 아니었다. 런던이 원래 노동당이 압도적으로 집권하던 도시도 아니었다. 1977년에는 보수당이 64대 28이라는 압승을 거두기도 했던 도시다. ‘빨갱이 켄’과 함께 있던 ‘좌파’들이 다들 안 될 거라고 이야기하던 선거에 덤볐던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급진적인 상상력을 펼쳐놓았고 승리한 것이다.

이건 그냥 하나의 기적이었을까? 거기에도 이유는 있었다. 런던의 ‘빨갱이’들의 정치는 구닥다리 ‘꼰대의 정치’와 달랐다. 런던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조건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실험은 그 자체로 관료제에서 빠져나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대중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공학적 계산 말고, 빨갱이의 상상력을

“장기적인 계획, 신기술의 적용, 대중의 참여”라는 원칙을 통해 대처 정부에 개겼다. 관료들이 아니라, 지역에서의 이익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인 시민들의 공간을 열었다. 대중들은 구체적인 일상에서 자신들의 정치를 기획했고 늘 모두 함께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 동시에 반대로 이야기해보자면 ‘노동당 좌파’가 지자체를 접수하려 했었기 때문에 그런 일상의 정치가 가능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빨갱이’가 아니고 어떤 정해진 ‘정책’도 아니다. ‘정치적인 것’은 대중의 삶에서 이미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중이다.

지난 번 이야기에 보태보자면, 진상들과 찌질이, 양아치들의 그 목소리들이 펼쳐질 수 있는 정치의 장의 조건이 있다. 사실 ‘좌파 빨갱이’들의 서울을 좀 꿈꾸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되나? 동네 사회주의와, 지역 사회주의. 거기서부터 시작이 아닐까?

당장 중앙을 먹으려는 ‘공학적’ 계산 말고, ‘대중적 정서’, ‘대연합 정치’ 타령만 하지 말고 빨갱이의 ‘상상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여 달라구! 빨갱이가 누군지 똑똑히 좀 보여 달라구! 방어만 하지 말고, 딱 떠올라서 같이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라구,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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