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반동 정당이다”
        2010년 04월 30일 04: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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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6일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야권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는 “당신네 진보냐?”는 심상정 후보의 질문에 “진보다”라고 대답했다. 심 후보가 다시 “좌파냐?”고 묻자 김진표 후보는 “좌파다”라고 답했다. 그 고백에 조갑제 같은 이들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나는 처음에는 폭소를, 나중에는 씁쓸한 실소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대개는 ‘보수’라 자기 규정하면서도 가끔은 ‘진보’인 척 했던 것은 어느 정도 들어줄만한 얘기였다. 근대 정치에서의 ‘진보’는 한국 민주당 같은 당을 일컫는 말이 전혀 아니지만, 최근 20년 동안의 현대 정치에서 ‘진보’는 클린턴의 새 민주당과 그에 영향 받아 전통적 좌파 노선에서 일탈한 유럽의 온건 개혁파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라니…. 이것이, 민주당의 오랜 습성이 선거좌파(左派)임을 자인하거나, 유한계급을 편히 모시는 깔개(座)가 되겠다는 그 당의 강령 정신을 실토한 것이 아니라면, 매우 놀라운 역사적 발언이다.

    하루 후인 27일 민주당은 광역시의 기초의회를 없애고, G20회의에서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한다. 같은 날, 노태우와 김대중의 합작품이자 19년 동안의 여야 공모 삽질인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이 열렸다. 이것이 한국에서 가장 큰 ‘좌파’가 하고 있는 일이다.

    좌파(?) 민주당이 하고 있는 일

    앞의 토론회에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는 “야5당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같은 뿌리이니, 장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대로를 살피자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한 뿌리임이 분명하지만, 다른 정당들은 민주당 전통과는 전혀 다른 터전에서 발생하여 성장한 정당들이다.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1997년 총파업을 계기 삼고, 그 주요 간부들의 정서적 연원을 어거지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한민국과 한민당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창조한국당이나 진보신당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이래 산업화의 산물로서 발생한 것이고, 특히 진보신당은 2008년 촛불시위에 영향 받은 바 크다.

       
      ▲ 김진표, 유시민, 한명숙

    유시민이 대한민국사까지 들먹으며 야5당의 통합을 이야기한 것은 다분히 의례적인 한편 자파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한 것이다. ‘반민주=MB’에 대항하여 야권 전체가 대동단결하여야 하며 그 핵은 ‘민주 적통’인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 노선을 있지도 않은 ‘역사적 뿌리’로 에두른 것이다.

    유시민은 한나라당에서 박정희와 전두환과 군부의 그늘을 찾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오늘의 ‘민주세력’에게서 김성수와 송진우와 친일지주의 냄새를 맡는다. 한민당의 ‘민주주의’란 짝사랑하던 이승만에게서 내쳐진 이후 시기와 질투의 언어로써 생성된 것이며, 그들의 ‘민주주의’는 한독당과 조선노동당 등 여타의 야당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며 구축된 것이다.

    물론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당도 변한다. 타당에 대한 테러를 ‘민주주의’라 강변하던 한민당 세력도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만 되뇌이다 보니 스스로가 ‘민주주의자’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게다가 한민당과 자유당, 북조선노동당에 의해 말살된 진보정치세력은 어쩔 수 없이 한민당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이런 수혈에 의해 한민당-민주당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1971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을 누르고 김대중이 등장하는 사건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이탈이다. 조선공산당과 통합된 신민당 출신의 김대중은, 박정희에 맞서 ‘반공’를 내세웠던 윤보선과는 달리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걸었고, 김대중에 의해 시작된 이탈은 그 후 민주당의 새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1985년 신민당의 출현도 비슷한 사례다. 정치활동금지에 묶인 양김씨를 대신해 재야인사 출신의 정치인들이 정당 정치에 뛰어들고, 한민당-민주당의 역사에서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경향은 김근태와 노무현에게까지로 이어진다. 하지만, 1970년대에 시작된 한민당 전통으로부터의 일탈은 1990년대, 또는 노무현의 당선과 함께 마감된 듯하다.

    ‘민주주의’는 민주당만이 판단한다

    오랜 재야생활과 시민단체 활동을 거친 민주당의 최일선 한명숙 후보가 오늘날 민주당이 어떤 당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6년 당시 총리였던 한명숙은 ‘경제민생점검회의’를 주재하며 “강북 재개발을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독려하고, 오세훈 시장을 만나서는 “서울시의 규제 완화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한다. 재개발 정책에서는 오세훈의 후견인이었으나, 용산 사건 당시에는 야당이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한명숙은 오세훈을 응징하기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오세훈에게 다정다감하던 한명숙은 엉뚱하게도 자당의 경선 상대인 이계안 후보에게는 냉담하기 그지 없다. 안 하겠다던 경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한명숙은 이번에는 정책 토론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날치기 하지 말라, 토론하자”고 입이 닳도록 떠들어대던 민주당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들의 ‘민주주의’란 것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 누구나 언제나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민당의 ‘민주주의’가 단지 야당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처럼 민주당의 ‘민주주의’와 ‘진보’와 ‘좌파’는 그들이 실권했다는 이유 외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한민당의 ‘민주주의’가 역사 진보를 가로막는 반동으로 기능했던 것처럼 민주당의 ‘반MB 민주주의’ 역시 다양한 정치개혁 시도를 묵살시키고 있다.

    20~30년 가량의 일탈을 거쳤던 민주당은 지금 민한당을 거쳐 한민당의 반동적 전통으로 회귀하고 있다. 당장에는 이런 규정이 정치적 비난처럼 들리겠지만, 현대의 우리가 한민당을 관조하는 것처럼 오래지 않은 미래에 현재의 민주당이 그리고 있는 궤적을 관찰한다면 ‘반동 정당’ 아닌 다른 것으로 정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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