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말하기
        2010년 04월 29일 09:15 오전

    Print Friendly

    안녕하세요, 김예슬씨. 저는 2003년에 대학에 입학해 2008년 여름에 졸업하고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 있는 (무직)청년입니다. 저의 입학년도와 졸업년도가 말해주듯이, 5년 반을 대학생으로 살아왔고, 딱 그 기간만큼 학생운동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남들처럼 일찍 군대를 다녀왔다면 지금쯤 복학생 신분으로 학교 어디선가 동기, 후배들과 예슬씨의 선언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 제 주변엔 그런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서점에서 예슬씨가 낸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책 속에 담긴 당신의 작은 외침들 하나하나에,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많이 공감하고 또 가슴 속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겨우 7,500원하는 그 책을 사들고 왔으면 좋았으련만 그 때 제 지갑엔 딸랑 5,000원 밖에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오고 말았네요. 그래도 책 속에 담긴 예슬씨의 몇 가지 의문들은 저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 그리고 그 의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마치 제 의무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겨서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91년 5월, 그리고 오늘

    저는 요즘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991년 5월』이라는 긴 제목의 책 한 권을 읽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 한 구절을 인용한 이 제목의 책은 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5월 투쟁을 당시에 대학생 신분으로 이 투쟁을 경험한 이들이 10년이 지난 후 가슴 아픈 회고 속에서 기록하며 평가한 것입니다. 제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저의 간단한 감상부터 전해야겠네요.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이 투쟁을 4.19나 광주항쟁, 87년 민주화항쟁에 대해 흔히 그러듯이 그 역사를 자랑스럽게 포장하지도, 자신들을 역사의 피해자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사에 있어 급격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당시 상황에서 자신들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실천들은 올바른 것이었는지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직선제 쟁취라는 껍데기뿐인 성과만을 얻은 채 봉합되고, 이후 벌어진 엄청난 수의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 소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분리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노태우 정권은 88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체제 갈등에 대한 봉합과 포섭 능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향상되어 있었고, 이는 이 둘의 분리와 전자에 대한 의도적인 고립, 탄압을 노골화 했습니다. 91년 5월은 어쩌면 이런 흐름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경대 열사로부터 시작된 죽음과 분신의 행렬은 13명이나 되는 노동자, 학생을 떠나보내게 했지만 노태우 정권은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정원식 총리 계란투척 사건 등을 공안사건으로 조작해내면서, 운동권을 ‘패륜아’로 낙인찍는데 성공했습니다.

    ‘노태우 정권=죽음과 폭력의 세력’, ‘노동자와 학생=피해자’라는 명쾌한 논리로 지배세력을 공격했던 운동권은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을 사주하는 어둠의 세력’이라는 말로 이 논리가 자신들에게 돌아왔을 때 어찌할 줄 몰라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때부터가 우리 사회에서 운동권이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고립되어 비주류가 되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민화’된 정권의 변화된 지배형태와 새롭게 만개한 소비문화와 한 몸이 된 시민들의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몸짓만을 보인 운동세력은 그저 앙상한 모습만으로 기억될 뿐이었습니다.

    과잉된 도덕적 엄숙주의, 폐쇄주의적 문화, 유사 ‘군대’적이라고 할만한 권위주의적인 작태, 그리고 어정쩡한 대중추수주의. 91년 이후 지금까지 어찌어찌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학생운동의 문화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모습의 집결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학생운동 속에서 2000년대의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말하기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당신이 책 속에서 했던 가슴 아픈 말 때문입니다. 당신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라고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당신의 의문을 당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송구스러운 심정’을 통해 전할 땐, 솔직히 속상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가졌던 상처와 미련들 때문에 당신이 조심스럽게 던지는 그 말 한 마디도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만큼은 냉정해지고자 합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저 스스로 ‘이걸 빼면 내 인생은 시체’라고 생각한 나의 지난 학생운동 시절에게 ‘충분히 래디컬했는지’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답하는 과정은 당신이 기존에 스스로를 진보라고 외쳤던 이들에게 실망했던 이유를, 그것을 ‘거짓 희망’이라고 말해야 했던 이유를, 당신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3, 4학년 때 저는 주로 학생회 활동을 했고, 연말엔 학생회 선거 준비 때문에 ‘학사경고’를 각오하고 수업도 내팽개치며 살았습니다. 그 때 저는 90년대 중 후반부터 선배들이 만들었던 선거 정책 자료집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면 다음날 학우들 손에 북북 뜯겨 나가던 때였으니, ‘자본주의 반대’니 ‘민중권력 쟁취’니 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거 자료집’에 가감없이 담아내는 선배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마냥 멋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대략 50페이지 안팎 되는 자료집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시퍼렇게 날이 섰던 힘있는 정치적 문장들은 점차 사라지고, 당의(糖衣) 입힌 선물상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 말입니다.

    등록금 인하, 매점과 식당 개선, 강의평가제 개선… 그러던 것이 몇 해 전부터 ‘시험기간 간식 배포’ 같은 걸로 바뀌기 시작했고, 선본의 정치적 입장은 자료집 맨 뒤에 ‘정세’라는 코너를 따로 두어 성명서 같은 글을 집어넣는 걸로 대체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 자료집 안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는 것과 식당 밥 개선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료집을 맨날 끼고 살았던 저는 4학년때 정책국장을 맡아 치른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려진 ○○○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자’(○○○은 학교이름)는 멋들어진 총기조를 뽑아놓고는(그래서 선본이름이 ‘Zoom In’이었습니다) ‘셔틀버스 무료화’라는 강력한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거는 코메디를 연출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대로 지적 교조성과 조야한 대중성의 우스운 조합입니다. 스스로는 이를 ‘대중운동’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대중운동’을 참칭하여 우리의 이념적 건강함마저 갉아먹는 짓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저의 이야기이지만, ‘이념의 고수’와 ‘대중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200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이들 모두의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들어줄 이 없겠지만, 혹여나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누군가가 증언해야 한다면, 저의 이런 이야기도 한 꼭지 정도로는 들어갈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서 평가해 봤을 때, 2000년대 학생운동은 90년대로부터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소중한 자산인 학생운동

    그래서 저는 ‘스스로 진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당신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대중지향성이라는 말을 마치 ‘대중이 선호하는 것에 맞게’라는 식으로, 마케팅 이론에나 나올 법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이 때문에 훼손된 우리의 진보성을 정서적 폐쇄성과 비장함으로 상쇄시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당신의 선언과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반응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장 래디컬한 것이 가장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당신도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모두가 다 그런 래디컬한 ‘대학 거부’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개인의 결단 차원이 아니라 대학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하는 ‘운동’의 차원에서라면 더욱이 말입니다. 그래서 남겨진 자들, ‘대학 거부’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다른 대학’을 꿈꾸는 남겨진 제2, 제3의 김예슬들에겐 당신의 선택이 또 다른 책임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대학 거부’는 사실상 ‘대학 포기’와 다르지 않기에 당신의 선택에 마냥 박수만 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대학을 거부하고 노동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예전 대학과 학생운동의 모습을 생각할 때, 당신의 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오히려 현재 학생운동 위기의 결과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르면 머릿속이 한 층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당신께 바랍니다. 당신이 떠나온 대학이란 공간을 여전히 기억해 달라고. 여전히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학생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야만 하는 전쟁터 같은 대학을 기억해 달라고 말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움을 통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평생학습사회에서, 저 또한 쉼 없이 대학을 생각할 것입니다.

    솔직히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한번도 대학에 ‘래디컬’하게 맞서본 적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나의 삶 속에서도 나를 끊임없이 ‘길러 낼’ 이 엄청난 국가-학교-자본의 불결한 동맹에 제대로 맞서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당신도 (물론 그러시겠지만) ‘나눔 농사터에 세워질 진정한 삶의 대학’을 만들어 가시면서 함께 고민을 키워갔으면 합니다.

    지금 저는 후회와 반성 속에서 저의 지난 학생시절을 돌아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의 삶의 기반은 학생운동의 경험입니다. 또한 여전히 대학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싸워나가고 있는 저의 후배들은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소중한 ‘씨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경험을, 미우나 고우나 저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렵니다. 물론 나의 이 소중한 자산이 왜 당신께 진정성있게도, 래디컬하게도 보이지 못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지요. 그 고민 속에서 언제나 당신과 나의 생각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약한 한 청년의 자기고백과 반성의 글을 이렇게 마칠까 합니다. 언제나 힘내시길 바랍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