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지 못하는 진보는 무능하다
    노동절엔 록음악과 함께 투쟁을"
        2010년 04월 27일 07: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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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거부한 김예슬의 대자보를 보면서, 나는 2010년이 역사책에 쓰일 모습을 상상했다. 김예슬의 대자보를 둘러싼 반응들이 예상 외로 비난 일색이라 조금은 실망스러웠는데, 얼마 전 출간된 『김예슬 선언』을 읽어보니 역시 김예슬은 달랐다.

    “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류의 고시원 면벽수련형부터 ‘운동권 쇼’라는 촌스런 프로그램 작법까지 속으로 배배꼬인 사람들이 누워서 침 뱉는 말잔치를 벌이고 있는 동안 김예슬은 부모산성을 넘고, 제도 밖의 대학을 만들자며 시원한 걸음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루한 프레임 싸움을 넘어선 김예슬

    다시 생각해보니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원래 근본적이라는 뜻을 가진 래디컬(Radical)한 실천의 중요성을 깨달은 김예슬이 고루한 프레임 싸움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고루한 프레임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김예슬뿐만은 아니었다. 청년유니온이 두 번의 반려에 연대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선포했고, 거대한 기존프레임에 갇힌 한국사회를 조망한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가 1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래디컬이 있었다. 찻소리가 끊이지 않는 동교동 삼거리, ‘삽질 8년을 삶의 질 8년으로’라는 이계안의 슬로건이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정말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사막의 우울’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그 맞은 편 건물이다. 바로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철거된 두리반 건물이다.  

       
      ▲’두리반’이 있는 건물. 

    2005년쯤으로 기억된다. 홍대역 2번 출구에 롯데시네마가 입점한 스타피카소 상가 공사가 시작될 즈음, 친구들과 이제 홍대는 끝나겠구나 하는 씁쓸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십년 전만 해도 깜깜했던 홍대 앞의 골목골목에 카페와 옷가게가 하나 둘 들어서는 것을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그 때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클럽 사장이나 아티스트들은 자기 동네가 남들이 다 가는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간다는 자부심과 뚝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버티고 있던 지역이 바로 동교동 삼거리부터 상수역에 이르는 홍대라는 동네였다.

    인디, 홍대의 자식

    ‘인디’라는 이름의 독립문화는 바로 홍대라는 동네가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던 ‘홍대의 자식’이었다. 그 동네에 언젠가부터 프랜차이즈 체인이 하나 둘 입점했고, 괴물 같은 대형건물이 생기더니, 이제는 누구나 아는 수순대로 주변의 옛 건물들이 차례차례 부서지기 시작했다.

    두리반이 요충지인 것은 분명하다. 롯데시네마에서 시작한 대형건물의 행렬이 두리반이 있는 동교동 삼거리에 도착하면, 대자본이 모집한 철거군은 우향우 하여 신촌로터리까지 가는 신촌시장을 노려볼 것이다. 점령 길에 제2의 용산이 재현되지 않을 보장은 없다. 두리반을 작은 용산이라 부르며, 농성장의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유는 비극의 재현만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돈 몇 푼 더 받자는 속셈이다” 누군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뱉는 이 말은 정말 폭언이다. 자본주의도 이런 자본주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말이다.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는 대전제를 지키는 것이 자본주의 아닌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개발을 위해 개발 지구를 선정하려면 원주민의 재산을 합당하게 보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자본주의 아니신가?

    철거 이야기가 나오면 ‘낙후될 우려’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개발하지 않으면 낙후된다는 미신을 굳게 믿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낙후의 온상이다. 기존문화를 어쩔 수 없이 리셋 해야 하는 개발의 반대말은 사실 낙후가 아닌 복원이다.

    두리반이 헐리고, 신촌로터리로 철거가 이어지면 철거민의 삶과 함께 골목골목 숨은 보석을 찾아다니던 홍대의 추억은 복원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세계 유수의 예술가들이 역동성을 극찬하는 홍대의 문화를 부수고, 도대체 무엇을 개발하자고 하는 것인지.

    철거와 끈적한 모래바람

    누가 보더라도 지금 두리반을 철거하려는 개발 폭풍의 정체는 변혁의 추억을 지배하려는 끈적끈적한 모래를 품은 모래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두리반을 사막의 우물이라 이름 지은 것은 참 적절한 작명인 것 같다.

    철판 못질을 당한 두리반으로 되돌아가 농성을 시작한 두리반을 도운 것은 바로 뮤지션들이었다. 기타와 마이크밖에 없는 뮤지션들이 철거 현장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래와 시원한 무대 매너였다. 음악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 아닌가. 부서지고 쫓겨나고, 욕먹고, 울고…… 철거민의 현실은 왠지 홍대의 젊은 뮤지션과 닮아 있었다.

       
      ▲51+ 노동절 행사 홍보 동영상 중. 

    뮤지션들은 철거 현장이 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소외되지 않도록 자신의 음악과 유쾌한 대화로 훌륭하게 두리반을 복원했다. 용역들이 자기 스타일로 부숴놓은 흉측한 외관과 달리 두리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고, 위화감이 없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철거민과 뮤지션들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뮤지션들은 적극적으로 동료 뮤지션에게 두리반을 소개하고 공연을 부탁했다. 공연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두리반이야말로 음악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홍대의 지하 클럽을 가득 메우는 록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에너지 넘치는 록페스티벌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초기 글래스톤베리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2006)』나 전설적인 『우드스탁, 평화와 음악으로 채운 3일(Woodstock, 3 days of peace and music)』을 간직하고 있는 페스티벌 팬이라면, 공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음악으로 공유하는 감동을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변혁 그리고 록의 정신

    황량한 잔디밭을 메운 음악과 멋진 사람들이 만드는 유쾌함 속에서 록의 정신인 변혁의 에너지를 함께 공유하고 실현시키고 싶은 바람은 록뮤지션과 록음악 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내몰렸기에 소망이 더 절실해진 것일까? 5월 1일, 120주년이 되는 노동절을 앞두고 뮤지션들은 이 무한재생 에너지를 두리반에서 발전(發電)시키기로 했다. 발전방식은 철거현장을 페스티벌의 무대로 바꾸는 것, 이름은 <뉴타운 칼챠 파튀 51+>이다.

    기획팀은 두리반과 GS건설의 <정당한 재협상을 요구한다>는 심플한 메시지로 섭외에 돌입했다. 51개 팀이 순식간에 섭외됐고, 기획팀은 스테이지를 세 곳으로 나누어 타임테이블을 짰다. 티저영상이 업데이트 되고, 예매게시판에 글이 늘어났다.

       
      ▲51+ 홈페이지. 

    이 모든 소식이 트위터를 타고 재빠르게 전달되었다.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하고, 트위터로 소식을 들으면서 점점 빨라진 내 가슴이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우드스탁의 낭만도 낭만이고, 재협상도 재협상인데, 이 정도가 되면 벌어지는 판 자체가 이미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법적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잠시 후, 그런 걱정은 고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리반 바로 뒤에는 동교동 파출소가 있다.

    파출소 바로 앞에서 용역들에게 사람이 들려나왔는데 법적 문제를 운운하고 있다니. 법이 외면한 농성장에서는 법의 다리를 잡는 대신, 더 유쾌하고 더 자신 있게 새로운 법의 행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사실 경찰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용역이다. 시내 한 복판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철거를 감행한 용역의 싸가지로 볼 때, 5월 1일이 되기 전에 철거에 돌입할 수도 있다. 두리반 옆 건물이 며칠 전 철거되었고, 두리반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목격된다고 한다.

    두리반과 뉴욕의 스톤월

    <51+> 행사의 기획자이자 참여뮤지션인 단편선은 이러한 우려를 담은 「<51+>를 준비하며, 철거 용역들과 GS건설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글을 음악웹진 ‘보다’에 기고하기도 했다. 단편선은 이 글에서 만약 <51+> 행사를 사전 방해할 경우, 우리가 가진 ‘다른 힘’으로 곱게 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쯤 되니 잠깐이나마 긴장했던 내 자신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래디컬하다는 것은 ‘이 자료로 볼 때’라든지 ‘저 정황으로 보거니와’ 같은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아주 근본적인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문득 2010년의 두리반이 1969년 뉴욕의 스톤월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정체성이 곧 죄가 되었던 까닭에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던 뉴욕의 동성애자들은 1969년 6월 28일 스톤월 인(Stonewall Inn)이라는 술집에 불심검문을 나온 경찰에 저항했고, 이 저항은 나흘 동안의 소요로 이어졌다.

    이후 스톤월은 동성애 차별반대운동과 기타 급진운동의 성지가 되었고, 스톤월의 저항이 일어난 지 9년 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밝힌 하비 밀크가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하비 밀크는 동성애자 유권자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말고, 커밍아웃하여 당당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두리반은 2010년을 수놓고 있는 다른 움직임과 함께 급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신호는 앞으로 사회와 정치에 일대 변혁을 예고할 것이다. 두리반의 5월을 지켜 보는 사람들은 앞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는 귀중한 사례를 얻게 될 것이다.

    진보세력의 역할

       
      ▲행사 포스터 

    두리반 농성에는 각 진보양당과 마포구 일대의 여러 단체가 연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진보를 지지하는 까닭은 한국사회의 잃어버린 급진성을 되찾아 실현하기 위해서다.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급진적인 움직임을 발견하여 지속적인 연대로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진보세력과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하지만 기획팀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며칠 전 <51+>팀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당장 RT 하라. 그리고 예매하라. 철거현장에서 60팀의 밴드가 공연한다. 입장료는 5100원, 판은 우리가 벌렸다. 기름은 당신들이 부어라. 무능한 진보란 놀지 못하는 진보다. 나는 그날 노회찬이 올거라 믿는다 party51.com”

    노회찬 대표가 오건 안 오건 2010년 5월 1일, 두리반은 역사에 남을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아직 예매를 못하셨다고? www.party5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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