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서, 차가운 눈치밥 먹는 간병인들
    By 나난
        2010년 04월 27일 0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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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치 밥을 얼려와 병실 냉장고에 넣어둬요. 하지만 이마저도 공간이 너무 협소해 겨우 김치와 주먹밥 정도를 넣어둘 수밖에 없어요. 앉을 수도 없는 배선실 창가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게 대부분이죠. 차갑게 식은 주먹밥을 먹으며 눈물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예요.”

    서울대병원 간병노동자 박 아무개씨는 이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내용을 기사화되면 자식들이 마음 아파한다”며 밝히길 꺼려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간병인들은 저임금에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밥 먹는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꼭 기사화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환자들을 간병하고 이들의 완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뿐만이 아니다. 미화 노동자 역시 환자들이 또 다른 병에 전염되지 않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간병 노동자는 24시간 환자 곁에 머물며 이들의 식사는 물론 목욕 등의 수발을 든다.

       
      ▲ 26일 공공노조 등이 주최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해 간병노동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사진=이정희 의원실)

    하지만 병원 내에는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를 위한 공간은 있지만 정작 미화-간병 노동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휴게공간은커녕 개인물품을 놓을 수납공간은 물론 씻을 수도, 식사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모두가 잠든 시간, 병동에 하나 뿐인 환자용 샤워실에서 쫓기듯 씻어야 하고, 식사는 배선실 창가에서 서서 해결한다.

    "사 먹으면 생활이 안된다"

    이에 공공노조와 산하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등은 26일, 서울대병원에서 미화-간병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보장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3차 캠페인을 진행했다. 특히 이날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간병노동자들과 함께 배선실에서 식사를 하며 이들의 고초를 체험했다.

    간병노동자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배선실은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등이 비치된 곳으로 환자식이 운반되는 곳이다. 점심시간이면 환자들의 식판을 가득 실은 배선차가 배선실 통로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정작 간병노동자들은 환자들이 식사를 끝낸 후에야 단시간에 점심을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배선차와 배선실 창가의 작은 틈에서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나란히 줄지어 선 채 식사를 해결한다.

    많은 사람이 ‘병원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간병노동자들의 임금은 주6일 24시간을 꼬박 일해도 일반 환자의 경우 하루 5만5,000원에서 중환자의 경우 6만5,000원에 불과하다. 삼시 세끼를 식당에서 해결할 경우 손에 쥐는 돈은 4만 원에서 5만 원 정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간병노동자는 “사먹으면 생활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의자 하나라도 있으면…"

    이날 비좁은 배선실에서 간병노동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이정희 의원은 “밥만큼은 편하게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간병노동자들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환자식에 가려져 도시락을 먹었다”며 “투명인간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청인 병원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식사 및 휴게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 책임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식사뿐만이 아니다. 옷은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 하며, 개인 물품은 병원 눈치를 보며 병실 한 켠에 숨겨놓다시피 한다.

       
      ▲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3차 캠페인에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사진=이은영 기자)
       
      ▲ 배선실 창가에서 선채로 식사를 하는 간병노동자들의 모습은 서울대병원을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사진=이은영 기자)

    간혹 마음 좋은 보호자가 ‘어디 가서 잠깐 쉬고 오라’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한 간병 노동자는 “간병인 복장으로 중환자 대기실 앞 의자 같은 곳에 누울 수도 없지 않느냐”며 “의자 하나라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특히 간병노동자들은 24시간 주6일의 고된 노동에 직업병까지 앓고 있다. 대부분의 간병노동자가 수면부족 등으로 안구 건조증과 근육통을 앓고 있다.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간병노동자들은 이처럼 저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 열악한 근로조건에 노동기본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이 해결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휴게 공간 확보만으로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브랜드 파워 1위’의 서울대병원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며 뒷짐만 지고 있는 상태. 이날 미화-간병노동자들의 식사 공간 문제가 담긴 유인물을 살펴 본 한 50대 환자 보호자는 “병원에서 휴게공간 문제를 개선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 계속 있었지만 간병인들이 창가에 서서 밥 먹는 걸 (사진을 통해) 오늘 처음 알았다”며 “다들 내 나이또래인 것 같은데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다 밥까지 서서 먹으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 환자는 “간병인은 병원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라며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 서비스하는 이들에게 식사 문제는 일신상의 문제에 그칠 수 없다. 간병인들의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은 병원에서 개선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화-간병노동자들에게 휴게공간 마련은 숙원사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병상규모확대’만을 노리고 있는 병원의 작은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말처럼, 병원이 환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간병인들을 단지 하나의 부속품이 아닌, 병원을 구성하는 주체로 인식한다면 충분히 개선 가능한 것이다.

    이정희 의원은 “병원 내 많은 병실이 있지만 간병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며 “도시락을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도, 옷을 두는 것도, 씻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간병노동자들에게 휴게공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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