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문과 권력에 관한 계보학적 탐색
        2010년 04월 24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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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문묘 종사에 대한 논쟁을 다룬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프로네시스, 13,000원)이 출간됐다. 문묘 종사란 문선왕(文宣王)이라 불리는 공자의 사당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유학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우는 선비만이 이런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인의 조상으로 문묘에 종사된 사람은 설총을 시작으로 모두 18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문묘 종사는 학문 영역의 문제를 넘어 정치 문제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반대파의 인물이 종사되는 것을 막고자 정치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김용헌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에서 지금의 인사청문회보다 격렬했던 조선조의 문묘 종사 논쟁을 인물별로 정리했다.

       
      ▲ 책 표지.

    이 책에서 주로 다룬 유학자는 정도전, 정몽주, 조광조, 이황, 조식, 이이 등 6명이다. 책 속에는 두 가지 계열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등장한다.

    하나는 위의 6인의 이야기이며, 또 하나는 이들이 훗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고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만들어간 담론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실천 속에 작동하는 권력, 그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읽어내고 있다.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에 따르면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설계한 기획자이자 역성혁명을 주도한 혁명가였고, 주자학을 통치원리로 세운 유학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간신으로 낙인찍혀 배척당했다.

    고종 2년(1865)에 공식적으로 복권됐지만, 경복궁을 설계한 공은 인정받았으나 조선왕조를 설계한 공은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조선 건국 세력과 대립했던 정몽주는 뒷날 조선 주자학의 우두머리로 등극했다. 이런 반전의 과정에 권력의 논리가 작용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또 이 책은 정도전은『맹자』의 민본주의를 자기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유교적 민본주의에서는 군주의 정통성을 천명에 두고 있으며 그 천명은 궁극적으로 백성에 의해서 확보되고 유지된다. 맹자에게 정치적 행위의 현실적 근거가 민심이라면, 이념적 근거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유교적 민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도전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끌어들여 자신의 건국이념에 맞춰 조선을 만들어갔지만 또 다른 실력자 이방원 세력으로부터 참수당한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난신적자의 지위로 떨어졌다. 반면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이방원의 철퇴에 맞아 죽었던 정몽주는 그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이 된 직후 복권돼 충신의 자리에 오른다. 이어 중종 때 문묘에 종사됨으로써 조선 주자학의 태두가 된다.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은 이렇듯 문묘에 종사되거나 종사 논쟁에 휩싸였던 ‘정도전, 정몽주, 조광조, 이황, 조식, 이이’ 등 6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문묘 종사 논쟁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들 대표적 유학자들의 첨예한 논점을 모두 담고 있는 종사 논쟁의 재구성은 ‘학문과 권력에 관한 계보학적 탐색’이라는 조선 성리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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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용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07년 9월부터 1년 동안 U.C. 버클리 한국학연구소에서 방문 학자로 연구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탈근대적 주체의 모색과 유가 사상」「조선조 유학의 기론 연구-성리학적 기론에서 실학적 기론으로의 전환」 「최한기의 낙관주의적 서구 인식과 동서 소통론」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혜강 최한기』(편저) 『조선유학의 학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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