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세력 패배가 정의다(?)"
        2010년 04월 20일 05: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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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열린 <프레시안> 주최의 야4당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 ‘6.2 경기도지사 선거, 쟁점과 전망’은 허망했다. 방송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앞 부분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는데, 나머지 한 시간여를 다 보고 나니 앞 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야4당끼리의 토론회고, <프레시안>이나 <라디오21> 같은 매체를 통해 중계된다 할지라도 공직후보끼리의 토론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토론이 이날의 ‘6.2 경기도지사 선거, 쟁점과 전망’이었다.

       
      ▲야 4당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 (사진=프레시안/최형락)

    무릇 공직선거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왜 어려운지, 이명박 정권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경기도지사로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이 토론에서 오간 이야기라고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통합을 하라고 했느니, 민주당에 들어가라고 했느니 마느니 따위뿐이었다.

    ‘과거사 해석자’ 자처하다

    민주당 김진표 후보는 전임 대통령들의 ‘유훈’을 빌려 공세를 펼쳤고,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는 그저 ‘덕담’일 뿐이었다고 방어했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와 90년대를 전투적으로 주도했던 자유주의 정당들은 스스로를 ‘과거사 해석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의 강령인 ‘민족통일’을, 이북 체제의 유훈통치를 따름으로써 남한 사회에서 선행 실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안동섭 후보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가 이처럼 퇴행적인 정치토론을 극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안동섭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거의 유일한 구체 정책이었던 지역의 공단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단 합치고, 나중에 차이를 따지자”는 논지를 초지일관 펼치며 스스로의 교환가치를 하락시켰다.

    “민주당이 민생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MB 정부 정책의 뿌리는 참여정부에 있다. 뿌리부터 바꿔야 서민들이 살 수 있다. MB에게 정권을 내준 것이 분열 때문이냐? 아니다. 합친다고 다 되는 거 아니다. 질이 문제다”라는 심상정 후보의 발언은 이날 토론의 제목인 ‘전망’에 부합하는 깊이 있는 식견이었다. 하지만, 야권연대의 압박에 조건부 수긍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는 그의 주장을 힘없게 만들었다.

    김진표 후보는 법인세 인하, 분양원가 공개, 의료시장 민영화 등을 묻는 심상정의 질문에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는 투로 당당하게 답변했다. 부총리를 지냈던 고위관료의 소신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민주당 전체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김진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반성’과 ‘성찰’을 되뇌이는데, 막상 잘못을 지적하면 언제나 “아뇨. 그건 잘한 겁니다”라고 답하곤 한다. 잘못한 거 없는데도 반성하고 성찰하는 셈이다. 한민당으로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의 정당답게 유교적 예의에 충실한 것 같다.

    창당 브로커 또는 약장수

    언제나 그렇듯이 유시민이 단연 압권이었다. 유시민 후보는 “역사가 오래된 야당은 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민주당에게 조언했는데, 자신이 그 당들에 몸담았던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죠. 민주당은 정치하는 사람들 이익단체 느낌이고, 진보정당은 자기 이념을 위해 일하는 느낌입니다.” 유시민은, 좋게 봐주면 창당 브로커고 조금 나쁘게 봐주면 미이라 가루 파는 만병통치 약장수 같은 느낌이다.

    유시민의 장기는 역시 표변이다. “노무현처럼 일하겠습니다”라던 그는 김진표 후보가 노무현의 유훈대로 민주당에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유훈을 해석하면서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유훈 정당이 아니다”라고 능수능란한 말솜씨를 뽐냈다.

    물론 그가 말만 바꾸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정당사에 명멸했던 근래의 정당 중 태반에 적을 두었던 그는 오늘 정책도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련해 “진보정당 의견을 받겠다”고 말했는데, 2002년 12월 민주노동당에 애걸복걸하다 노무현 당선 직후 “별 도움되지 않았다”고 했던 것처럼, 몇 달 후 다시 “알고 보니 좋은 정책 아니더라”고 말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시민 후보는 “민주당의 막강한 조직과 진보정당의 좋은 정책, 그리고 국민참여당의 좋은 인물이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묘책을 설파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서는 이런 혼성모방이 훌륭한 기법일 수도 있지만, 한국 정치에서 우리는 김영삼과 김종필과 이인제와 손학규라는 반면교사를 익히 봐왔다. 유시민이 야권연합 후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천박한 정치에는 천박한 정신이 제 격이다.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인이 이기는 것을 목표 삼는 건 당연하지만, 제가 왜 나왔는지, 이긴 후에는 뭐 할 건지를 모른다면 나오지 않느니만 못하다. 지금 민주당과 그 언저리 정당들끼리의 야권연대는 ‘MB심판’이니 따위를 내세우지만, 뭘 하겠다는 정치의 알맹이가 빠진 3류 정치공학일 뿐이다.

    야4당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그들이 지난 대선에 참패하고 이명박에게 정권을 넘겨줬던 이유를 낱낱이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에도 져야 함을, 그것이 외려 정의임을 다시금 확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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