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섯이 꽃등심 맛이구나
        2010년 04월 20일 10:24 오전

    Print Friendly

    작년 봄이런가 그 무렵 부터 난 한 여인을 은근히 좋아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에 관한 책을 보는데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극정성으로 우정을 나눈 여인이 있어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도대체 누구길래 당대의 재사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유희경, 이귀, 허균 등 당대의 내노라하는 뭇 남정네들과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 여인,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거문고와 함께 묻히고 나서도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누워있는 부안 매창뜸을 찾아 의미를 놓고 마음을 놓고 가게 만드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 매창공원내에 누워있는 이매창을 꽃이 활짝핀 프레임으로 들여다 보았다

    부안기생 계랑(桂娘,1573~1610), 스스로 붙인 호가 매창(梅窓)이다. ‘매화가 핀 창’이라는 뜻이니 별호마저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받쳐준다.

    꽃다운 18살 나이에 20여살 연상인 예학의 대가이자 시인인 유희경과의 애끓는 사랑은 38살 짧은 생을 살다간 그녀의 일생을 관통한 키워드가 된다. 그 사랑은 고고한 기품으로 몸과 마음의 정절을 간직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했다.

    "거문고를 끼고 시를 읊조리는데 그 재주에 놀랐고 정감어린 대화가 좋았다"고 허균은 기록했다.

    그녀가 남긴 시의 면면을 접하다 보면 400년전 그 당시에 어쩌면 이렇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들여다 봤는지 예사롭지 않다.

       
      

    취하신 님께

                                                                                   이매창

    취하신 손님이
    명주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손길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며 찢어졌군요.
    명주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게 없지만,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그게 두려워요.

    기생, 시인으로 시대를 앞서서 품었던 그녀다운 멋진 배포와 기개에 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숙한 교태는 우아함으로 나타나고 녹록하지 않은 몸과 마음도 슬몃슬몃 육간대청에 내려 놓기도 했다.

       
      ▲ 이매창의 묘소(왼쪽), 명창 이중선의 묘소(오른쪽)

    거기다가 또 한 사람의 여인이 그녀 곁에 누워있다. 명창 이중선(李中仙)의 묘다. 1920년대 실의에 빠진 겨레의 혼을 소리로 달래고 가락으로 부추기다가 몸과 마음을 한바탕 불사르고 1932년 부안읍내 어느 집 골방에서 겨우 서른을 넘긴 꽃다운 나이에 이슬처럼 사라져갔다.

    중선의 언니 이화중선(李花中仙)은 당대의 최고 명창으로 특히 춘향가의 ‘사랑가’를 잘 불러 사람들의 얼을 사로 잡을 때 중선은 애절한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으로 우리의 한을 달래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들은 요절하는가? 중선 묘소에도 두 번 절하고 320여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나란히 누워있는 두 여인을 그리워했다.

    다정도 병인양
    매창의 님그리는 절절함이
    섬섬옥수 거문고소리를 타고

    명창 이중선의 흥타령이
    그 마음을 타고 오르내리니

    2010년 어느 봄날,
    부안 매창뜸에서
    나그네 발길은 꽁꽁 묶이고 만다.

    채석강의 아름다움

    같은 형질이나 동일한 물성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서로 다른 성질이나 기운이 만나 만들어 내는 기기묘묘함이 더 강하다. 그래서 그런가 아무리 절절히 원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과 이루어진 조화로움이 한결 다이나믹하다. 바다와 육지라는 서로 다른 기운이 맞닿아 만들어 내는 해안은 어느 곳 하나 절경 아닌 곳이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이미 예사롭지 않은 데 부안 격포의 채석강은 세월과 자연이 만든 최고중의 최고였다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파도 치는 소리가 절벽에 부딪힐때 선연히 느껴지는 깊은 울림이 있다. 저 앞에서 알랑거리는 저 사람들이나 나나 위대한 자연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새삼스럽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은근히 사모하던 여인 이매창을 만나고, 명창 이중선을 보고 변산반도의 바닷가를 굽이굽이 돌아 채석강을 섭렵하고 나니 어절씨구 부안을 다 품은듯하다. 직소폭포를 비롯 이매창이 연인과 친구들과 거닐었을 곳곳을 다 보지 못했지만 안 봐도 절경임이 분명할 터…

    낯설지만 친근하고 기특한 풍경

    부안에서 변산방면으로 10km쯤 달리면 하서면 석상리 마을 한가운데에 2,200여평의 최부진 두원농장이 있다. 무농약인증 입간판을 옆으로 하고 표고농장으로 들어서려는데 웬 젊은이(?) 둘이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작업에 열중이다.

       
      ▲ 표고버섯농사중 제일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무거운 나무를 들어올려 작업대에 올려서 구멍을 뚫어야 한다.

    올해 최윤빈(중3), 최윤(중1)되는 농장주인 아들 형제다. 일요일이라 엄마하고 할머니하고 다 출동해서 아르바이트중이란다. 입을 앙다문 녀석들의 일맵시를 기특해하며 최부진 강성숙 내외와의 첫만남은 이어졌다.

    대부분 아이들은 자기 부모님의 직업이 농부라고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빠가 버섯도 생산하고 전주에서 버섯가게도 운영하는 것을 기꺼워 한다. 아빠엄마가 일이 힘에 부칠때는 일손을 도와 농장에서 하루 종일 품을 보탠다 하니 여간 기특한 친구들이 아니다. 최부진씨가 아이들 농사 또한 잘 지은듯하다.

    이렇게 두원농장 식구들이 총 출동하여 매달리고 있는일은 표고버섯이 살 집(참나무원목 종균접종)을 마련하는 일이다. 년중 제일 힘들고 고단한 일중의 하나다.

    참나무원목을 들여야 하고 구멍 뚫어서 종균을 심는다. 100평 하우스에 약 1,800여개의 참나무원목이 들어간다. 원목 하나당 구멍을 굵기에 따라 90~150개를 뚫고 하나하나 종균을 심어 넣어야 하는 일이다. 표고버섯도 농작물처럼 연작피해가 발생한다. 땅에서 재배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으로 표고를 재배하면 소출도 적고 벌레가 끓고 농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확하고 나서 1년을 그냥 묵힌다. 쉬도록 한다. 하우스도 사람과 마찬가지, 땅도 마찬가지… 쉴 때 쉬어야 한다.

    하여튼 4~5동 원목을 배치하려면 근 1만개의 참나무 원목이 소요되는 것이고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들이고 구멍 뚫고 종균을 심어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 된다. 그렇게 종균을 심어 놓으면 당해연도부터 수확 하는게 아니다. 물도 주고 온도도 맞춰주며 자식 키우듯 하루하루 보살피며 1년을 숙성(부숙)시켜야 한다. 그래야 표고가 피기 시작한다.

    버섯들은 잠자는듯 하지만 주인의 발자국 숨소리를 듣고 자라난다. 고요한 아침,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하루가 다르게 소록소록 커가는 버섯의 몸짓이 경이롭기만 하다. 언제 고생했는가 모르게 힘이 난다. 그 맛에 표고농사를 짓는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다 신기하지… 사람 다른 것 마냥 똑같이 생긴놈이 하나도 없다. 다 저마다 제 성질 가지고 자라나고 살아간다. 밤하늘 별들이 들어와 박힌 모습이다. 밝은 놈, 어두운 놈도 있고 큰놈, 작은놈, 갓 나온 녀석, 어른티가 나는 친구… 작은 우주공간이다.

    19년차 이제야 표고 농사의 맥을 알겠다

    1989년 원래 변산이 고향이던 최부진씨는 농사짓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다가 도회지로 나갈 결심을 한다. 자그마한 키에 야물고 단단해 보이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아버지가 어느날 포도주를 한잔 따라주시며 "둘째 너는 나하고 같이 살꺼로 봤는데…"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거리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내 다시 돌아올테니 조금만 참으이소" 그렇게 인사를 하고 구미로 가서 도회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딱 2년만에, 우연의 일치지만 2년전 떠난 그날에 다시 변산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991년부터 표고농사를 시작했다. 부안에 시설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몇 안될때였다. 농사로 돈도 제법 벌자 사업욕심이 났고 바로 사기꾼들이 붙었다. 홀라당 다 털어먹고 1996년경에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최부진씨는 첫인상이 야물기 그지없다. 작달막한 몸집이지만 탱글탱글, 단단하기 그지없다. 2,000평되는 하우스도 파이프구조 세우는 것만 사람을 샀고 비닐도 혼자 씌우고 냉장창고도 스스로 알아서 지었다. 어느 해에는 17,000여개의 통나무를 11톤 차로 매일 2대씩 받아서 혼자 다 처리했다. 시골에서는 만능재주꾼이 되지 않으면 안 돌아간다. 필자의 어림짐작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야기 나누는 중에도 “드릴 날을 갈아주세요” “이것좀 해주세요…” 일꾼들의 주문이 그치질 않는다.

    참나무 원목을 구하는 일도 노하우가 묻어난다. 보통 18년~22년 나이를 먹은 참나무를 선택하고 양지와 음지의 중간지대에서 자라난 친구들을 선호한다. 원목을 구할 무렵 정식 허가받은 벌목현장으로 달려가 나이테를 보고 자라난 지형을 보고 나무를 선택한다. 그러고 보면 참나무와 그니도 인연은 인연이다.

    무농약으로 농사 짓는다는 것

       
      ▲ 두원농장 최부진 강성숙내외, 부안에서 4H활동 선후배로 만나 1995년 결혼했다.

    2002년도에 부안군에서 두 번째로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참나무에 깍지벌레가 침입하고 때로는 민달팽이가 애써 길러놓은 버섯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침 일찍 달팽이가 좋아하는 상치를 바닥에 깔아놓으면 달팽이들이 올타구나 올라앉는다. 그럼 그 놈들을 걷어내면 된다.

    10년이 넘으면 그 분야 나름의 대가가 된다는데 19년을 표고와 씨름하고도 이제야 감이 잡히고 농사짓는 맛을 알겠다는 고백에서 겸손과 내공이 동시에 묻어난다.

    매일아침 출근하면 밤사이의 표고이야기와 어제와 다른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면 마냥 신기하다. 어떤 녀석은 정말 자태가 아름다워 따기가 아까운 경우도 많다. 그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해인가는 저녁 먹고 아내와 같이 버섯을 따러 들어갔는데 어찌나 많이 달렸는지 새벽이 와도 헤어나지를 못했다. 아내가 안보이길래 찾아보니 하우스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든 모습이 보였다. 고생고생 세상에…

    "안선생님! 오늘 작업하는 것 보셨지요? 저거 하나하나에 일년 내내 몸과 마음이 가 있어서 저 아이들을 떠날 수가 없어요. 사람 사는 꼴도 정신 없구요. 보면 깎아달라는 이야기 못하시겠지요? ^^ 난 절대 싼값에는 안 팝니다."

    버섯(菌)

       
      ▲ 우리집 식탁메뉴중 자주 즐기는 버섯구이

    버섯은 포자번식을 한다. 바람에 의해 날리다가 습기와 온도가 맞는 조건에서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있는 실모양의 덩어리로 변하는데 이게 균사체(菌絲體)다. 이 그물에서 버섯의 자실체(子實體)가 자라는데 이게 우리가 버섯으로 알고 따먹는 보이는 부분이다.

    버섯이 살기 위해서는 갖가지 유기물질이 필요한데 풀이 많은 곳에서 자라고 병들거나 죽은 나무가 버섯의 주식이 된다. 그러니 버섯은 ‘숲의 청소부’역할을 한다. 풀의 잔여물이나 잔가지 등을 먹어치우므로 ‘천연 부엽토’의 생성과정을 도와 숲을 비옥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버섯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용,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왔는데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버섯을 ‘신의 음식(food of the gods)’이라 했고 동양에서는 영지버섯을 불로장생의 영약이라고 생각했다.

    <동의보감>에서는 표고를 ‘입맛을 좋게 하고 구토와 설사를 멎게한다’고 했고 미국FDA에서는 표고버섯을 10대 항암식품으로 권장하고 있다. 표고는 생표고도 맛이 좋고 용도가 다양하지만 일단 말려두었다가 물에 잘 불려서 조리하면 맛과 향이 쫄깃하며 감촉이 좋아 색다른 질감을 맛볼 수 있다.

       
      ▲ 표고버섯 꽃등심

    표고를 백화고 흑화고로 구분을 하는데 백화고를 상등품으로 친다. 최부진씨는 아주 잘생긴 거북이등처럼 쩍 갈라져 하얀 속살이 보이는 친구들을 보면 아까워서 그냥 놔둔다. 먹기가 아까워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보기와는 딴판이다.

    고생하며 자란 사람들이 진국이고, 크게 성취하는 경우가 많다. 완도의 지주식김처럼 밀물썰물 온갖 방해와 다투며 어렵게 자란 녀석들이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것과 같다. 표고가 필 무렵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가물어서 습이 부족해버리면 표고는 고생시작이다. 습(濕)은 없고 바람만 분다. 표고는 커져야겠는데 조건이 안따라준다. 방법이 없으니 등짝을 갈라치는 것이다. 그러니 찢어지지…

    그런 백화고는 식감도 좋고 보기도 좋고 맛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쫄깃거리는 향기는 고품격 그 자체다. 그런 녀석들을 최부진씨는 ‘꽃등심’이라 부른다.

       
      ▲ 참나무원목의 굵기와 길이에따라 90~150개 정도의 구멍을 꿇는다.

       
      ▲ 밀기울,톱밥,균사체,효소가 들어있다. 참나무구멍에 하나씩 넣는다. 종균을 심은후 1년의 숙성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주고 온도 맞춰주고…

       
      ▲ 나무는 부식이 되어가고 그만큼 세월은 익어간다. 밤하늘의 별처럼 표고가 핀다. 천차만별 우주쇼다. 하얀속살은 우리의 입맛을 돋군다.

    꾸는 꿈은 무엇인가?

    최부진씨의 꿈은 대형 버섯전문 생산유통시스템을 병합 운영하는 것이다. "버섯 하면 아! 그 사람 최부진! 그니 것이 최고야" 소리를 듣고 싶다. 농민이 살아남는 길은 생산과 판매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고 진화 하는 중이다.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라며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요즘은 ‘드럼’에 빠져 지낸다. 드럼의 타악적 성격이 갖는 리듬에 흠뻑 빠져 지낸다.

    일하랴 배우랴 사람들 만나랴
    생산부터 유통까지,
    버섯에서 드럼까지,
    매장에서 인터넷쇼핑몰까지…

    당차고 야무진 사람을 만났고 표고버섯의 풍미를 입안 가득 즐겼다. 한 사람의 집념이 가져오는 변화는 여러 측면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표고버섯을 따보든, 따보지 않든, 즐겨 먹거나 안먹거나 우리는 언제나 그 존재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경이로운 자연의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표고버섯 또한 그 나름의 오묘한 삶의 원리에 기반하여 생명을 꾸려간다. 그러면서 보는 즐거움을 주고, 독특한 향기를 주고 고유한 맛을 우리에게 내어준다.

    사람들은
    송도삼절로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를 꼽고
    부안삼절로 유희경, 이매창, 직소폭포를 꼽는다.
    고향보따리에서는 이매창, 채석강, 최부진표고 이 셋을 ‘신(新) 부안삼절’로 이름 짓는다.

    농업은 역사고 문화이며, 자연이고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