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들, 이라크 전쟁 진실 들춰내
MB, 죽은자에 대한 명령 혹은 협박
By mywank
    2010년 04월 19일 03: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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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한참 전에 이 전쟁을 ‘구경’했다. 그 구경은 마치 컴퓨터 게임 같았다. 밤하늘을 폭죽처럼 날아가 어두운 도시에서 펑펑 터지는 포탄들의 궤적은 TV 화면으로 보기에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 영상보다 더 현실감이 없었다.

구경꾼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바그다드에서 현지 상황을 보도한 MBC 기자 이진숙의 모습이 오히려 전쟁의 아슬아슬한 위기를 더 실감나게 만드는 요소였다.

2003년 4월, 전세계에 생중계된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는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세계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미국과 영국이 승전을 선포하고 나서야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보고를 제출했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정보자체가 신빙성도 희박한 것이었던 것이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스크린에 옮겨진 이라크전쟁

201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여성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허트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감독은 수상소감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파병 군인들에게 이 상을 바치며 그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트로커>는 이라크에 파견된 폭발물 제거반 ‘EOD’를 소재로 명분없는 전쟁에 내몰린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안과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지금 한창 출품작을 고르고 있는 제63회 칸 영화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숀 펜 주연의 <페어게임>을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했다. 더그 라이만 감독의<페어게임>은 2005년 CIA요원이었던 발레리 플레임 윌슨이 당시 이라크 대사였던 자신의 남편이 뉴욕타임즈에 ‘이라크 침공을 위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비축’에 관해 허위 날조한 사실을 폭로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을 다룬다.

   
  ▲ 영화 <그린존> 포스터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허트로커>나 아직 스크린에 풀리지 않은 <페어게임>에 앞서 지금 상영되고 있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그린존> 역시 이라크 전쟁을 다룬다.

대량살상무기 대신 찾아낸 어처구니없는 진실 

대량살상무기 수색부대의 팀장인 말러(맷 데이먼)는 ‘마젤란’이라는 믿을만한 이라크 내부의 고급 정보원이 대량살상무기가 감춰진 곳이라고 찍어줬다는 장소에 부하들을 이끌고 뛰어든다.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아 누구보다 앞장서서 작전을 이끌지만 제보된 장소에 간신히 도달하고 나면 번번이 허탕이다.

처음에는 정보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라크에는 애당초 대량살상무기 따위가 없었던 거였다. 그걸 CIA도 알고, 백악관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전쟁까지 오게 된 걸까?

한 언론인이 ‘마젤란 가라사대’로 시작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를 거듭거듭 쓰면서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가 세계평화를 위협하게 된 거고, 그 언론인은 마젤란의 존재에 대해 미심쩍어하면서도 백악관과 직통으로 통하는 고위관료가 흘려준 정보를 독점보도한다는 공명심에 눈이 멀어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를 해댄 거였다.

목숨 걸고 뛰어든 전쟁에서, 보람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엄청난 무기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말러가 찾아낸 것은 결국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진실이었다. 미국이 이라크와 싸운다는 명분 아래 백악관과 CIA가 맞서고, 후세인과 반 후세인 세력이 맞서는 그 전쟁에서 놀아나는 것은 언론이고, 죽어가는 것은 군인과 민간인들이라는 진실.

이명박 대통령의 ‘명령’

<그린존>의 이야기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적당히 가공된 허구의 플롯이며 캐릭터라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워낙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모종의 음모가 뒤에 깔려있으리라는 불신이 가득한 세상이니까. 그런데 이게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 그리고 그 실제가 밝혀진들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말러의 실제 모델이 된 군인 몬티 곤잘레스는 맷 데이먼과 나이가 같은 이라크 참전 군인이다. 맷 데이먼은 <그린존>을 준비하면서 몬티 곤잘레스를 만났을 때 왜 이 영화에 도움을 주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몬티 곤잘레스의 대답은 "우리의 도덕적 권위를 되찾을 필요가 있으니까"였다.

<페어게임>의 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 윌슨이나 <그린존>의 말러가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라면 내부기밀 유출에 대한 죄를 물어 바로 군법회의에 넘어갈 일이다. 그러나 어떤 직책이나 임무도 ‘진실’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도덕적 권위’를 잃어가면서 감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실존인물들과 영화들이 경고하고 있다.

   
  ▲ 영화의 한 장면

전쟁 상황도 아닌데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침몰이라는 기막힌 참사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경고한다. “이제 여러분은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명령합니다.”라고. 산 자가 죽은 이에게 감히 ‘명령’이라는 걸 하다니!

뭐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못한 군통수권자로서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죽음 앞에서 무능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기에 앞서 대뜸 이 모든 것을 잊으라고 ‘명령’하다니!

대통령의, 군통수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줄을 아는 우리는 이 ‘명령’이 서해바다 차가운 물속에서 희생당한 승조원들이 아니라 살아남은 유가족과 우리들에게 내려진 명령임을 안다.

그래서 명령에 이어지는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끝까지 낱낱이 밝혀낼 것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경고인지를 안다.

오늘은 4.19, 총구 앞에서도 독재에 저항하던 역사를 기억하는 날이다. 이승만은 언제 자신이 하나님과 나라를 사랑한다고,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승만이 정부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이나 육군본부에도 알리지 않고 대전으로 피난을 간 때가 겨우 전쟁이 시작된 지 이틀 뒤인 6월 27일 새벽 2시였다.

진실을 밝혀야할 때

대전에 도착해서도 이승만은 ‘우리 국군이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말며 대통령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킬 것’이라는 담화를 녹음해서 27일부터 서울 중앙방송국에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그래놓고 6월 28일 새벽 2시에 군당국은 한강인도교를 사전 경고 없이 폭파했다. 이 폭격으로 한강을 건너던 피난민 수 백 명이 죽어갔다.

대통령이 말한다고 다 진실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맹세한다고 다 진정이 아닌 것을 이미 우리는 역사 속에서 몇 차례나 경험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을 찍어내며 “이 큰 충격, 이 큰 슬픔을 딛고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 이 어려움을 이겨냅시다. 이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이 장병들의 희생을 진정으로 기리고 그 뜻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라는 모습을 보일 때 소름이 돋는 걸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문제가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는 걸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야 할 때다. 드러나게 될 문제가 무엇이든 제대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수습도 가능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려는 노력도 가능하다.

이라크 전쟁에서 진실을 보았던 자들이 결국은 입을 열듯이, 천안함에도 생존자들이 있고, 유가족이 있다. 그 많은 눈과 입을 감히 ‘명령’이라는 위협 하나로 언제까지 막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걸까? 살아있을 때 불러보지 않았던 장병들의 이름을 두고 더 이상 무참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실 확인이나 증거도 없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언론들은 자꾸만 전쟁을 부추긴다. 전쟁의 본질은 <작은 연못>의 이상우 감독이 말했듯이 학살이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목숨을 잃도록 만드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맺기가 어려운 수렁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지금껏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권력을 부지하기 위해 젊은 넋들을 두고 전쟁타령을 벌이는 그들이 참으로 끔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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