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보야, 문제는 ‘탄소’가 아니야
        2010년 04월 19일 08: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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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이 점차 부각되면서 ‘탄소’라는 단어도 함께 유행어가 되고 있다. TV, 종이 신문과 인터넷 언론, 그리고 많은 잡지와 서적을 통해서 탄소경제, 탄소시장, 탄소거래, 탄소중립, 탄소유출, 탄소중립 등과 같은 용어들이 쏟아내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탄소 용어의 다양한 쓰임새

    여기서 탄소란, 이미 많이 알고 있듯이,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온실가스 중에 하나인 이산화탄소를 지칭하는 것이다. 온실가스로 분류되는 6개의 기체 중에서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대략 77%가 되며, 대부분이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태웠을 때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탄소(즉, 이산화탄소)를 기후변화와 관련된 여러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용법이 좀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탄소경제’라는 용어는 석유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에너지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는 경제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서 사용되곤 한다.

    한편 ‘탄소시장’이나 ‘탄소거래’와 같은 용어들은 기후변화를 비용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온실가스 배출권의 거래제도, 즉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설정하고 그것을 거래하는 시장을 형성하려는 일련의 노력과 관련되어 있다.

    발빠른 자본들은 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 새로운 이윤 추구의 기회를 엿보면서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두고 다시 ‘탄소경제’가 창출되느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 경우는 긍정적 어법이다.

    시작한 김에 몇가지 더 살펴보자. ‘탄소중립’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들이 기후변화라에 대응하기 위해 권유되는 개인적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기후변화, 탄소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한다고 해보자. 비행기는 운송수단 중에서 가장 단위 여행 당 에너지 사용량이 많으며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량도 대단히 높아서, 남다른 환경의식을 가진 이라면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작년에 코펜하겐에 열린 기후변화 국제회의에라도 가는 길이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런 경우에 특별히 더 배출한 온실가스 양만큼 대기 중에서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대표적인 것이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를 탄소중립이라고 하는 것이다.

    ‘탄소유출’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이는 전세계가 지구화된 상황과도 관련이 된다. 한 나라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탄소세 혹은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에너지 비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며,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품과 서비스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이런 조치가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면 국가 간의 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없겠지만,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불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자국을 떠나 기후 규제가 없는 곳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려 들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온실가스 감축에도 실패하고 일자리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탄소유출’이다.

    탄소로 시작되는 용어 해설만 해도 얼마간은 더 할 수 있을 듯싶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를 탄소로 상징화하는 것에 우려할 점은 없을까?

    체제인가? 탄소인가?

    얼마 전의 어느 회의 자리였다. 기업계의 기후변화 대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분의 발표가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심지어 조롱을 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 사람 왈 “이산화탄소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것 하나도 안 위험하다. 지금 대기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대략 350ppm 정도인데, 여러분들이 타고 온 지하철 안의 이산화탄소는 1000ppm이 넘는다.” 기후변화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폭소를 터뜨리거나 아니면 조소해야 할 일이다. 당신은 어떤가?

    우리가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코나 입으로 들이켰을 때 위험한 오염물질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이 대기 중에서 쌓여서 우주공간으로 방출해야 할 태양에너지를 품으면서 기온이 올라가는 ‘온실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의 분이 그토록 ‘창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이런 기본 상식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고, 화석연료를 대규모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기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너무 심하게 ‘오버’한 탓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해프닝을 겪으면서 정작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왜 이산화탄소, 즉 소위 온실가스 배출의 문제로 초점을 맞추느냐는 것이다.

    그럼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냐? 이렇게 반문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몇가지 쟁점은 있지만) 그러나 좀더 폭넓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다음의 두 진술을 생각해보자.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 때문이다”와 “기후변화의 원인은 대량 생산․소비 체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가지 진술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대량 생산․소비 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석유․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경제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그 결과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배출되어 기후변화가 야기되고 있다고 논리적으로 연결지을지도 모른다.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그러나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한 두 진술 중에서 첫 번째만 부각시키고 두 번째는 거론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이를 ‘탄소 환원적’ 경향이라고 이름 붙여본다면, 주로 시장주의적, 과학기술 중심주의적인 모습을 띤다. 시장주의적 모습은 앞서 언급한 탄소시장 혹은 탄소거래 분야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로 환원시킨 후에, 그 자체(정확히는 배출 권리)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화하여 비용효과적인 방법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대량생산․소비 체제는 시장 메카니즘 자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비판과 환경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시장에 대한 보다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성찰이 이루어질 공간이 사라져 버린다.

    또한 탄소 환원적 경향은 과학기술 중심주의적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CCS’라고 불리는 탄소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이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은 계속 유지하면서도 대기 중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만을 잡아낼 수 있다면, 기후변화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발전소의 굴뚝에 이산화탄소만을 잡아내서(포집) 지하 공간이나 해저 등의 격리된 공간에 모아두면(저장)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핵폐기물 마냥 지질학적 시간대에서 장기간 저장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그 양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우주 공간에 쏟아 올린다는 구상이 포함되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와 같은 구상은 범인인 ‘탄소’를 잡아서 가두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화된 논리이며, 대체 범죄가 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사회구조적 진단과 처방은 사라지도록 만든다.

    탄소 배출을 어떻게 비용효율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줄일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와 사회관계, 그리고 정치 권력의 배분과 운영이 대량 생산․소비 체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물질적 욕망을 불러일으켜 맹목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대중매체의 상업적 이미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한 귀결로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치적 소비, 관료와 기업들에 의해서 과도하게 예측되는 전력 수요와 공급시설의 과잉 등. 탄소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때는 쉽게 문제로 인식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질문하고 도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적어도 이런 시각과 균형을 잡을 때만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바보야, 문제는 ‘탄소’가 아니야. 대량생산․소비 시스템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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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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