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곡된 가족 내 권력관계 산물
    By 나난
        2010년 04월 16일 1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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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 시대 여성이 선택하는 것이 ‘가정’이지만, 최근 근친 관계에 의한 성폭행 뉴스를 접하면 ‘가정’마저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다.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주디스 루이스 하먼, 삼인, 22,000원)은 어디를 가든 강간, 성추행, 성희롱 등의 위험을 의식하며 불안해하는 여성들에게 유감스럽게도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곤 하는 가정마저 안전지대가 아님을 밝힌다.

    충격적 사례들

    이 책에는 대부분 아버지(친부, 계부, 양부)가 어린 딸에게 저지르는 근친 성폭력의 사례가 나오는데, 이는 매우 충격적이다. 강간의 수준은 물론, 아버지가,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을 추행하고, 심지어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해 자위를 유도하는 등 심각한 성폭력 사례가 드러나 있다.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근친 성폭력은 그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근친 성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평생 동안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심지어 성인이 된 후에 강간을 당하는 비율도 높다고 한다.

       
      ▲책 표지 

    그리고 자라서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남자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결혼 후 그녀의 자식들이 또다시 근친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한마디로 아버지가 딸에게 행하는 잔인한 폭력의 흔적이 평생 지속될 뿐 아니라 대물림되는 것이다.

    특히 이같은 끔찍한 일을 당한 여성들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시절에, 그것도 양육의 의무가 있는 부모로부터 성적인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심한 배신감에 몸부림친다. 이들 대부분은 성인이 된 후 기억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끔찍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많은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인 자기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강간, 성폭행, 성추행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성매매를 직업으로 하거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직업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곡된 가족 내 권력관계

    아동기에 근친으로부터 당한 성폭력의 상흔은 결국 여성들의 삶 자체를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넣는다. 여성들은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기보단 거기에 스스로 함몰되는 경우가 잦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불신하고, 평생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어릴 적 성폭력에 대한 기억과 부모에 대한 원망 그리고 남성 일반에 대한 공포와 증오 속에서 보내는 것이다. 곧,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하고, 스스로의 삶을 옥죄는 셈이다. 바로 이것이 근친 성폭력이 남긴 끔찍한 결과다.

    저자는 왜 ‘아버지들이 딸을 범하는 것일까’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여기에는 우선 왜곡된 가족 내 권력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가부장인 아버지 권력이 공고하고, 어머니의 힘이 약하면 약할수록 아이들은 근친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으면, 딸에 대한 아버지의 성폭력을 인지하더라도, 아버지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근친 성폭력을 당한 많은 여성들이 역설적이지만 아버지보다 어머니에 대해서 더 큰 실망감과 분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상황이 배경이다. 특히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런 아버지들은 재범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집중적인 치료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저자는 아동에 대한 근친 성폭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가해자에게만 호의적인 사법 체계, 잘 정비되지 않은 구호, 치료 체계 등도 지적한다. 저자가 드는 사례 가운데는 아동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겨우 성폭력을 신고했는데도 아버지의 관심을 더 받으려는 행위 정도로 치부하는 사법 당국과, 근친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온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상담 치료자의 사례도 있다.

    5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저술된 이 책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학계에서 근친 성폭력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이자 고전으로 대접을 받는다. 방대한 조사 자료와 정교한 분석 그리고 냉정하면서도 치열한 논의가 돋보이는 이 책은, 미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한국의 근친 성폭력을 분석하고자 할 때 필수적인 준거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 * *

    저자 – 주디스 루이스 허먼 (Judith Lewis Herman)

    1942년 미국 출생. 근친 성 학대(Incest)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의 이해와 치료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교육에 공헌을 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케임브리지 병원 ‘폭력 피해자 프로그램(The Victims of Violence Program)’의 교육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트라우마와 회복: 폭력의 영향(Trauma and Recovery: The Aftermath of Violence)』등이 있다.

    역자 – 박은미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학사, 석사)를 졸업했다. 동 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문예사회학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은 「영국 농촌 사회의 위기와 토머스 하디(イギリス農村社會の危機とトマスハ-ディ)」이다. 저서로는 『왜 주드를 읽는가(なぜ日陰者ジュ-ドを讀むか)』(공저),

    번역서로는 『위험한 여성』,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외래교수이며, 한국 심리상담연구소 소속 현실요법(Reality Therapy) 1급 전문상담가로서 품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의사소통훈련(P.E.T.) 강사, 성격유형(MBTI)과 진로탐색(STRONG) 전문강사, 성폭력 및 양성평등 교육강사, 서울특별시 경찰기동대 명예인권상담관으로도 활동 중이다. 끊임없는?배움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에 관심이 많다.

    역자 – 김은영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세인트메리 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임상사회사업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매사추세츠 주 아동학대예방협회(Massachusetts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 가족복지서비스팀에서 수석치료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어린이재단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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