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적 공허함의 완전한 종합판?
        2010년 04월 16일 05: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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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공저한 『제국』이 출간되면서 국외서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국내서도 대표적인 자율주의 전도사인 조정환이 2002년 펴낸 『지구제국』을 통해서 논쟁이 이어졌다.

    좀 냉소적으로 말하면 제국주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보는 전통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을 물고 늘어져 논문업적 쌓는 데 도움 받았고, 자율주의자들은 촛불집회를 기회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양측이 손해 본 건 없었다.

    제국과 제국주의의 대립각

    언론에서까지 관심을 보여 몇 년 전 <한겨레>에서는 제국이냐 제국주의냐에 관한 기사를 기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장일단이 있는데 바로 제국-제국주의의 대립각을 세우고, 각 측이 자기 할 말만 하고, 정작 대립각을 줄이고, 소통하기 위한 별 다른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소개하는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제임스 페트라스 등 공저)는 어느 정도의 소통에 기여가 있을까? 이 책을 만든 출판사의 대표는 다름 아닌 제국주의론에 비판적인 조정환이다.

    출간기획의 의도를 추측하면 첫째, 『제국』에 대한 제국주의론자들의 비판이 조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든가 둘째, 앞서 말했듯이 국내에서 이미 제국-제국주의 양자구도를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서구학계에서의 『제국』 비판 서적을 소개하는 게 생산적 논쟁을 위해서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특히, 그간 국내 『제국』 비판 논의는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있었지만 논쟁은 학술논문에 한정되었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 출간이 전무했다. 2007년 번역된 『제국이라는 유령』은 학술논문이기보다는 서평 수준의 글들을 짜깁기한 거라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에 출간된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제국』 논의에 관심 있는 학자나『제국』만 읽은 독자들에게는 나름의 균형추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책의 구성을 간단히 소개하면, 1장에서는 제국주의론의 입장을 견지하고서 『제국』이 깔고 있는 전제들을 꼼꼼히 비판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가장 흥미롭게 읽을 부분이다.

    제국주의적 시각의 중요성

    2~3장은 권력은 어느 곳에 있다는 『제국』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실제 존재하는 제국의 경제적 기초(가령, 다국적 기업 본사의 입지)가 제국(특히, 미국)에 몰려 있다는 통계를 통해서 반박하고, 이러한 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닦는 주체는 다름 아닌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 책 표지

    4~6장은 저자들의 관심 지역인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제국의 수탈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제국주의적 시각의 중요성을 밝혔다.

    7장은 반제국주의 정치의 계급 역학이라는 장의 제목에서 보듯이 제국주의 구도에서 여전히 계급이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제국』에서 말하는 다중(multitude)에 내포된 불명확함을 비판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8~11장까지는 유럽, 중국, 러시아 등의 분석을 통해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역학을 살피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가장 칭찬할 만한 부분은 저자들 스스로 밝히듯이 “『제국』의 수많은 불확실한 주장들을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이며 경험적인 근거가 부족한 것에 대한 학문적 검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면서 자신들은 다양한 통계자료들을 끌어들여서 이러한 『제국』의 허점들을 논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균형추 역할 이상으로 제국-제국주의 양자구도의 소모적 지점들을 허무는 데 얼마나 일조했는가를 생각하면 내가 보기에는 이 책도 『제국』에 대한 안티테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세계화 역동성 외면

    『제국』에서 네그리와 하트가 민족투쟁, 계급의 역할을 간과했듯이, 본서의 저자들은 세계화가 형성되는 다양한 역동성의 계기들을 제국주의라는 틀에 무리하게 끼우기 위해서 외면하고 있다. 저자들은 1장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트와 네그리의 책은 전 지구적 발전의 동학을 분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력의 결과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오늘날 시장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자율적인 ‘제국’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논제에 직접반대하면서 자본주의적 발달이 취하는 형태를 결정하고 그 체계를 보존하며 그것을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시키는 제국적 국가의 역할을 하트와 네그리가 심각하게 저평가하거나 무시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혁신과 과학, 그리고 기술이 자본주의 생산성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밑줄은 인용자주)

    주지하다시피 『제국』은 과학과 기술력의 혁신을 지구적 발전의 중요한 추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다소 기술결정론적 시각에 대한 비판은 이전부터 있어왔다.(대표적으로 마뉴엘 카스텔에 대한 평가)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 거리와 시간의 마찰을 극복한 다국적 기업들을 통하여 그야말로 초국가적 자본가 계급이 출몰하고 있다.

    하지만 하트, 네그리의 기술에 대한 긍정을 기술결정론으로 낙인찍는 것은 과하다. 하트, 네그리는 기술발전이 단순히 자본가의 혜택일 뿐만 아니라 -‘계급’이라 부르든 ‘다중’으로 부르든- 밑으로부터 다양한 저항 또한 초국가적으로 발생하면서 자본에 맞서고 있는 지점을 통찰하고 있다.

    저자들의 경직성

    저자들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떻게 계급의식이 불분명하고, 교통과 인터넷이 발전한 오늘날을 읽는 데에는 경직되어 있다. 저자들은 『제국』의 한계와 더불어 의의도 지적하는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다(이는 하트, 네그리에게도 해당한다).

    하지만 그러한 의의는 침묵하고, 저자들은 하트, 네그리 논의를 수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율주의를 수용한 좌파 학자들을 싸잡아서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그런데 책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이름이 없다).

    저자들의 비판처럼 『제국』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넙죽 받아먹는 학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트, 네그리가 바라보는 밑으로부터의 초국가적 운동이 서구인들에 한정된 점을 비판하면서 서구 이외의 초국가적 사회운동을 조망하는 등의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즉, 나름대로 『제국』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회현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이러한 좌파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선언적으로 싸잡아 비판하면서 제국-제국주의 구도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의 시각은 기존 세계화 논의와도 연결되어 실로 ‘무지’를 보인다. 저자들은 전지구적 발전의 동학을 보는 세 가지 관점으로 첫째, 국제적 발전(근대화론), 둘째, 세계화 셋째, 제국주의로 구분하면서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발전과 세계화는 모두 ‘제국주의’라는 전혀 다른 기획과 의제에 씌워진 이데올로기적 가면”으로 일축해버렸다.(20쪽)

    발전과 세계화는 제국주의의 가면?

    이렇게 발전과 세계화 논의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뚜렷하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과연 얼마나 제국-제국주의 양자구도를 허무는 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저자들이 바라보기에 “세계화 이론가들은 제3세계 국가를 힘없고, 국가의 속성들을 결여하고 있으며 세계화의 힘에 저항할 수 없다고 묘사”(92쪽)한다.

    저자들의 선의를 십분 헤아려 볼 때 저자들은 세계화 이론가 중에서 일부를 두고서 말하는 듯싶다. 저자들이 바라보는 소위 세계화 이론가란 토마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오마에 겐이치의 『국경 없는 세계』, 『국민국가의 종말』 등으로 대표되는 과대세계화론자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과대 세계화론자들의 논의가 주류 언론, 경영학계서는 주류적 인식일지 몰라도 세계화를 연구하는 지리학, 사회학에서는 단순히 현재의 중심-주변의 구도를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역동성을 살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저자들이야 말로 세계화를 밖(제국)으로부터 주어지는 것(pre-given)으로 이해하지만, 지리학에서는 다양한 규모(scale)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과 제도, 역사 등이 우발적/필연적으로 경합하면서 구성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다규모적(multi-scale) 인식은 제국주의적 시각보다도 유연하게 대안적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식론적 틀을 제공한다. 본 서평에서는 지리학적 입장에서 사소한 문제 제기지만 다양한 분야의 시각에서 비판적 읽기가 가능하겠다.

    지적 공허함의 완전한 종합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한계는 『제국』의 안티테제로서 목적이 강한 나머지, 『제국』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의 생산적 논의를 간과하고, 세계화 이론가들을 협소하게 규정하면서 소통창구를 막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들이 『제국』에 붙인 “지적 공허함의 완전한 종합”은 실로 『제국』의 안티테제로 만족하는 제국주의론을 포함해야만 비로소 지적 공허함의 완전한 종합이 만들어 진다.

    이는 저자들이 강조하는 실천적 관점에서도 별로 영양가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각자의 진영을 탄탄하게 하기 위한 적대적 공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들이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아무래도 제국이냐 제국주의이냐는 틀 자체가 N극과 S극처럼 이상화된 잣대(idealized standard)를 제공하고, 그 사이에서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서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나침반부터 갖추어야 하는 거라면 『제국』과 함께 상극인 본서의 일독을 권하지만, 독자들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양 진영의 논리에 휘둘리기 보다는 자신의 사고로 유의미한 부분을 창조적으로 발견했으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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