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사들이 꿈꾸던 세상을 향한 노래
        2010년 04월 16일 03: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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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원 : 민문협 9집 [그날이 오면] 중에서)

    8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누린 노래들 중에는 문승현의 창작곡이 많습니다. 문승현은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으로 80년대 중반 노래모임 ‘새벽’의 중심 멤버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활동을 하면서 <기도>, <영산강>, <찬비오는 새벽>, <오월의 노래1>, <바다여 바다여>, <이 산하에>, <뒤돌아보아도>, <그날이 오면>, <사계> 등 많은 대중적인 민중가요를 발표했습니다.

    그 중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 열사의 생을 그린 노래극 [불꽃]의 삽입곡으로 극중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하기 전에 직접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노래로 창작되었습니다.

    학생운동의 문선대가 된 노래써클

    84년에 결성된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래분과 ‘새벽’의 창립으로 민중가요는 본격적으로 목적의식적인 창작과 보급의 주체를 갖게 되고, 노래운동, 문화운동이라는 성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지역에서도 교회나 문화공간을 통해 노동자나 지식인들의 소모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속에서도 민중가요가 창작되고, 또 보급되던 시기입니다. 또한 많은 민민운동단체들을 통해 지역의 문화활동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하였습니다. 각 대학마다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써클들이 결성되었으며 학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집회나 문화제 등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습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잡히는 집회에도 항상 노래써클은 문선대로 동원이 되었고, 그 횟수가 너무 잦아서 총학생회나 선배들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성원들도 꽤 많았습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노래패는 언제든 연락이 오면 무조건 문선대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래가 좋아서 들어온 동기들이나 후배들은 버티지 못하고 탈퇴를 하기도 하고, 어떤 여학우는 ‘치마도 입고 싶고, 하이힐도 신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그만두기도 했답니다. 대학의 노래써클은 학생운동의 문선대였고, 1학년 시기를 버티고 2학년에 올라가서도 써클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노동운동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던 시기였습니다.

    노래운동을 주도한 ‘새벽’

    그러다가 새벽이 결성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1년에 수차례의 기획 공연과 3~4개의 테이프 제작들이 이루어지자 문화운동에 자신의 뜻을 두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벽은 80년대 노래운동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음악 뿐 아니라 공연 방식, 유통 방식 등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냅니다.

    새벽은 그동안 구전되어 불려지던 민중가요를 엮어 공연으로 만들기도 했고, 또 주제를 가지고 극 형식을 도입한 노래공연을 만들면서 창작곡도 많이 나왔습니다. 새벽의 공연 형태와 창작곡들은 대학 노래써클들에게 항상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부분 기타 두 대나 세대로 반주를 하던 공연 형태에서 새벽은 가장 먼저 씬디사이저를 도입해 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각 대학마다 노래 공연 때 씬디사이저가 도입이 되곤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씬디사이저를 민중가요 공연 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중문화적 요소라고 해서 적잖은 치열한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80년대 이후의 장르나 양식 논쟁이 그렇듯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일종의 관행이 되었습니다.

    테이프 녹음 방식은 80년대 초 방안에 이불과 커텐으로 벽을 둘러싸고 소리가 큰 꽹가리 같은 악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음량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동시 녹음을 했던 것에서 4채널 정도의 릴 녹음기를 통해 반주와 노래를 분리해서 녹음을 하는 것으로 발전을 했고, 80년대 후반에는 정식 녹음실을 빌려 16채널이나 24채널로 각 악기와 목소리를 따로따로 녹음 할 수 있게 됩니다.

    전태일 열사의 꿈을 담다

    복제와 유통에서도 변화를 가져오는데, 음반의 복제는 레코드 회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합법으로 제작된 이 음반들의 경우 직접 복사를 해서 라벨지를 붙이고, 쟈켓을 접어 케이스에 넣는 작업을 직접 해야 했습니다.

    또 유통도 민민 단체들을 통해 직접 배포하거나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을 통해 판매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더블 데크로 하나씩 복사를 했으나 새벽은 1:5 고속 복사기를 구입해서 마스터 테이프를 걸고 한번에 5개씩 앞뒤로 복사를 하는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는 90년대 초반까지 노동가요 음반들의 제작방식에 활용되었습니다. 90년대초에 나온 노동자노래단 1, 2 집 테이프도 10만여개를 이렇게 제작해서 배포했다면 믿어지십니까?

       
      

    85년에 하반기에 만들어진 노래공연 [불꽃]은 새벽의 초기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창작된 공연이었고,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중 예수가 잡혀가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에 착안하여 만들었다는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 열사가 꿈꾸던 세상을 향한 염원을 담은 노래로 창작되었습니다.

    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고 문익환 목사께서 열사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목놓아 부르며 대신한 조사에 백뮤직으로 쓰여지면서 모든 열사들이 꿈꾸던 세상, 우리가 염원하는 세상을 향한 노래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88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수록되면서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노래이고, 또 9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나 전문단체 공연 때 항상 마지막 곡으로 선곡되었던 선택받은 노래, <그날이 오면>을 들으시면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 열사들이 꿈꿨을 세상을 다시금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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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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