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십만 학살의 과거를 딛고
        2010년 04월 15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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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 군부는 ‘인도네시아 공산당’(PKI) 당원과 동조자에 대한 대 학살을 시작했다. 1966년 3월까지 오십만 명 넘게 살해되었다. 학살 이후 PKI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되었고, 모든 역사 교과서에서 PKI는 완전히 사라졌다.

    30여 년이 지난 1996년 PKI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는 ‘민중민주당’(PRD)의 깃발이 솟아 올랐다.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반자본주의와 반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며 민중의 계급적 이익과 함께하는 정당이다.

       
      ▲ 민중민주당 정치위원회(KPRM–PRD) 대변인 젤리 아리엔

    호주 ‘혁명 사회주의당’(RSP)의 초청으로 민중민주당 정치위원회(KPRM–PRD) 대변인 젤리 아리엔은 (Zely Ariane) 지금 전국 순회 강연회를 하고 있다. 아리엔은 1999년 PRD 학생운동 조직에서 활동했고, 2001년 PRD에 가입했다. 시드니 강연은 4월 8일 RSP 본부에서 열렸다.

    나스-아-콤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민족 지도자 ‘수카르노’(Sukarno, 1901~1970)는 1945년부터 1967년까지 22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의 통치 철학은 인도네시아어로 ‘나스-아-콤’ (Nas-A-Kom)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주의 (Nasionalisme), 종교 (Agama), 공산주의 (Komunisme)를 뜻하는 합성어다.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목적으로 수카르노는 군부(민족주의), 회교(종교), 공산주의 세력 (PKI) 모두를 각료로 임명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포용했다. 1960년대 PKI는 광범위한 기층 대중들의 지지, 300만 당원 (중국, 쏘련에 이어 세번째), 20% 득표율,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무시못할 정치세력이었다.

    1965년 10월 1일 쿠데타 시도에 연루됐던 6명의 군 장성들이 암살되었다. 군부 실세 수하르토는 그 쿠테타 시도의 목표가 "PKI의 정권 장악과 인도네시아 공산화"라는 사실 무근의 흑색 선전을 퍼부어대며 회교 세력의 방관/협조 속에 PKI를 대대적으로 공격했고 대 학살로 마침표를 찍었다.

    신 체제 (New Order)

    ‘학살의 공적’으로 1967년 대통령에 취임해 1998년까지 30년 넘도록 독재 정치를 휘둘렀던 ‘수하르토’ (Suharto, 1921~2008년)는 한국의 박정희와 닮은 꼴이다.

    일본의 인도네시아 점령 시기에는 일본이 조직한 보안 부대원으로 활동했고, ‘신 체제’ (New Order) 라는 군사 독재 정치로 대중들의 정치 참여를 폭력적으로 억눌렀다. 냉전 시기 진보 운동을 말살하는 강력한 반공 정책 덕분에 서방 세계로부터 전폭적인 경제 지원을 받아 ‘산업화’의 기반을 다졌다.

    1980년대 수하르토의 철권 정치에 맞서 투쟁하며 성장해온 민중/학생운동세력이 1996년 PRD를 창당했다. ‘국가 전복 음모죄’로 여성 노동 운동가 Dita Sari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구속되었다. 1998년 ‘아시아 경제 위기’로 촉발된 대중들의 거센 저항으로 수하르토의 신 체제는 무너졌고 PRD 지도자들은 석방되었다.

    PRD 창당

    보수 집권 세력의 부정 부패와 족벌정치 근절, 1965년 대학살 진상조사, 친 민중 정책 등을 주장하는 PRD의 조직 대중 기반은 도시빈민연합(SRMI), 전국농민연합 (STN), 전국노동자투쟁전선 (FNPBI), 전국민주학생동맹 (LMND) 등이다.

    2007년 PRD는 2009년 의회 선거의 대응 방식 차이로 분열이 시작되었다. 다수파는 7월에 ‘전국 해방 투쟁’을(PAPERNAS), 소수파는 11월에 ‘민중 민주 정치 위원회’를 (KPRM–PRD) 각각 결성했다. .

    인도네시아의 까다로운 정당 등록법으로 독자적인 선거 참여가 불가능 해지자 PAPERNAS 지도자들은 부르죠아 정당인 ‘스타 개혁당’(PBR), ‘민주 일신당’(PDP)과 선거 연대를 모색했다.

    회교법을 절대 지지하는 PBR은 보수적인 지주 계급에 기반한 회교 정당이다. PDP는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민주 투쟁당’ (PDI-P)에서 분열되었고, 메가와티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IMF 충견이자 백만장자인 수카디의 지도하에 있었던 정당이다.

    대안 정당을 향한 새로운 시작

    PAPERNAS는 PBR, PDP 당은 반 신자유주의. 반 군사주의, 반 부정 부패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선거 연대를 밀어 붙이고, KPRM–PRD는 의회주의, 기회주의인 우경화 노선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선거 불참을 주장했다.

    PAPERNAS 대표 지도자 Dita Sari가 2009년 선거 때 PRD 탈당, 지배 세력의 보수 정당인 ‘Golkar’ 당 지지 선언은 인도네시아와 해외 진보 진영에 큰 충격이었지만 소수파의 ‘우경화 노선’ 비판이 정당했음을 선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2010년 3월 PRD는 제 7차 총회에서 새 정치 노선을 결의했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5대 정치 이념(민족주의, 국제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종교)를 지지하는 ‘사회 대중 정당’으로 재출발 할 것임을 선언했다.

    KPRM–PRD는 ‘변혁적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목표로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대 다수인 도시 빈민,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의 80%), 농민, 여성, 학생, 사회 운동가 등과의 긴밀한 결합, 맑스주의에 기반한 조직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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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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