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사장, 외부 비판에 신경 안써
    MBC 투쟁, 방송 장악 분기점될 것"
    By mywank
        2010년 04월 14일 07: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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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KBS는 노골적으로 ‘정부 편들기’, ‘재벌 모시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는 물론, 오락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를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전 회장의 ‘100주기 추모제’로 꾸미는 ‘대담함’도 보여줬다. 

    또 윤도현, 김제동 씨 등을 퇴출시킨 이병순 전 사장의 ‘업적’을 계승하려는 듯, 최근 KBS 경영진은 개그맨 김미화 씨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는 것조차 불편해하고 있다. 그야말로 KBS는 ‘상식적이거나 비판적 연예인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위기에 빠진 ‘공영방송 KBS’를 살리기 위해 지난 달 출범한 KBS 새 노조(언론노조 KBS 본부) 엄경철 위원장의 어깨는 그래서 가볍지가 않다. 

    전임자-사무실도 없는 노동조합

    지난 12일에 만난 엄 위원장은 아직 노조 전임자 신분을 인정받지 못해 매일 오전 회사 일을 하고, 오후에는 노조 업무를 보고 있다. 또 아직 변변한 노조 사무실조차 마련하지 못해, KBS 연구동 4동 503호에 있는 PD협회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었다.

    엄 위원장은 기존 노조(KBS 노동조합)와 새 노조의 차이를 ‘언론 운동’으로 꼽았다. 그는 “KBS 노조는 자기 조합원 문제에 주로 관심을 뒀던 반면, 새 노조는 언론 운동에 방점을 두고 탄생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 본부장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엄 위원장은 “KBS 노조와의 차이 때문에 갈등하고, 사측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라며, 사측이 수신료 인상을 위해 외부 회사에 의뢰해 추진하고 있는 ‘경영(조직개편) 컨설팅’ 문제에 기존 노조와 공동 대응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최근 공개된 컨설팅 중간 결과 보고서에는 뉴스 게이트키핑 강화, 구조조정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KBS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엄 위원장은 논란이 된 ‘이병철 열린음악회’ 사태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헛발질”이라고, 김미화 씨 사태에 대해서는 “사장의 머릿속에 ‘무형의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 같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그 책임을 우선 KBS 구성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구성원들의 잘못도 크다. 저항하고 싸워야 하는데, 지쳐있다는 느낌이 든다”라며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노조가 둘로 갈라지면서, 투쟁의 동력이 약화되었다. 새 노조가 투쟁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갖추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KBS 구성원들, 싸워야 하는데 지쳐있다"

    엄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에 맞서 총파업 중인 MBC 노조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지만, “연대 파업을 하기엔 아직 새 노조에 제도적인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KBS 새 노조는 지난 13일 KBS 신관 로비에 임시로 ‘천막사무실’을 꾸렸다. 단체교섭을 준비하기 위한 공간조차 내주지 않는 사측에 맞선 이들의 첫 번째 저항이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강제 철거된 천막사무실은 KBS 새 노조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 했다.

    엄경철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4시부터 약 1시간가량, KBS PD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다음은 엄 위원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 *

    – KBS에 두 개의 노조가 있다. 간부들이 만든 노조가 아니라, 입장의 차이 때문에 두 개 노조가 만들어진 건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 차이와 공통점, 상호 갈등 또는 협력 등에 대해 언급해 달라.

    엄경철 = “지난해 김인규 사장이 들어올 무렵, KBS 노조는 총파업을 가결시키지 못했고, 노조 집행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새 노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정연주 사장이 쫓겨나고 이병순 씨가 사장이 될 때부터, KBS 노조는 언론사 노조로써의 역할을 방기하고, 잘못된 길을 갔다고 본다. 노조가 둘로 분화된 데는 상당기간 쌓여온 KBS 노조에 대한 구성원들의 분노와 실망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지난달 열린 언론노조 KBS 본부 출범식에 참석한 엄경철 위원장(오른쪽)과 이내규 부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KBS 노조와 새 노조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둘 다 노조이기에,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KBS 노조는 자기 조합원 문제에 주로 관심을 뒀던 반면, 새 노조는 언론 운동에 방점을 두고 탄생되었다. 새 노조는 KBS 노조에 비해, 책임 있고 행동력 있게 언론 운동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KBS 노조와의 차이점 때문에 갈등하고, 사측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건강한 경쟁을 통해 싸움의 시너지 효과를 거뒀으면 좋겠다. KBS 노조와 연대할 사안이 있으면 연대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본다.

    기존 노조와 컨설팅 문제 공동대응 가능

    당장 KBS 노조와 협력할 수 있는 전선은 조직개편 컨설팅 문제라고 본다. 사측이 외부 회사에 의뢰한 컨설팅안이 나왔다. 전 직종에 걸쳐서 KBS를 바꾸겠다는 안이다. 이를 새 노조나 KBS 노조나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공감대로 싸움에 협력할 여지가 있다.”

    –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필요한 노조인 거 같은데, 이는 정권과 회사 차원에서는 반드시 손을 봐야 될 조직이라는 말이다. 노조에 대한 직간접적인 회사의 ‘공격’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엄경철 = “우선 제도적 탄압이 있었다. 사측이 계속 단체교섭을 거부해, 불가피하게 법원에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사측은 승소를 위해 법무법인 ‘태평양’에 거액을 지불하기도 했다. 새 노조가 승소하자, 사측은 이의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 보도본부의 간부가 조합원들에게 새 노조 탈퇴를 종용한 적이 있다. 또 새 노조 활동에 열성적인 조합원들을 지방발령 내기도 했다. 이는 새 노조를 길들이고, 새 노조에 대한 구성원들의 참여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다.”

       
      ▲KBS 본부 특보 

    김인규 사장 이후 KBS 내부 변화와 관련해 우선 보도 문제에 대해 얘기해 달라. 보도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와 그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엄경철 = “이병순 씨가 사장이 되면서, 이미 KBS 보도방향은 친정부적으로 변했다. 이후 김인규 씨가 사장이 되면서, 이것이 더욱 노골화되었다. 김인규 사장과 경영진은 외부의 비판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병순 사장 시절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축소 보도했던 것을 넘어, 이제는 노골적으로 정부 입장에 기반해,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원전수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기계적인 중립조차 지키지 못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김인규 사장의 취임이후 발언을 살펴보아도, 그동안 한번도 KBS 보도의 감시와 비판기능을 강조한 적이 없다. 지금 KBS 보도의 문제는 이런 김 사장의 잘못된 철학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보도본부 간부들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김인규, 보도의 비판 기능 강조 안해

    이와 함께 내부 구성원들의 잘못도 크다.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노조가 둘로 갈라지면서, 투쟁의 동력이 약화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KBS 노조가 그대로 존속되었다면 이 싸움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노조가 투쟁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아직 갖추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 보도뿐 아니라 각종 기획도 권력의 ‘오더’를 받은 듯한 냄새가 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최근 이병철 열린음악회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내부 평가나 분위기는 어떤가?

    엄경철 =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이 압도적이다. 찬성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인규 사장조차도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헛발질’이라고 본다.”

    – 권력이나 경영진으로부터의 이른바 ‘외압’이라는 것이 많이 늘어났나? 아니면 알아서 ‘기어주는’ 데스크들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건가? 보도국 내부 저항은 어느 수준인가?

    엄경철 = “둘 다 상존하는 것 같다. 경영진 혹은 외부의 ‘청탁성 압력’이 있고, 여기에 민감하고 반응하고 간부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 같다. 민감한 보도와 관련해 태도가 바뀌는 게 많은 것 같다. 일례로 SBS와의 분쟁 때문에, 밴쿠버 동계올림픽 보도를 최소화하기로 했는데, 한국 팀이 선전하니까 경영진의 압력 때문인지 보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김인규 취임 이후 프로그램에 대한 금전적 협찬이 다수 이뤄졌는데, 좀 더 세련된 형태의 정권과 자본의 압력이라고 본다. 적자문제 때문에 이병순 사장 시절 대대적인 제작비 삭감이 이뤄졌다. 그래서 협찬에 대한 구성원들의 도덕적인 잣대가 둔감해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어찌됐던 정부나 기업의 협찬을 받은 프로그램의 성격은 너무 뻔하지 않느냐.

    정부-재벌 프로그램 협찬 늘어나

    이에 대해 사내 구성원들이 저항하고 싸워야 하는데, 지쳐있다는 느낌이 든다. 싸우면 ‘변화’를 쟁취해야 하는데, 워낙 회사 내에 ‘친정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져 체념하는 것 같다. 제작 현장에서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는 더욱 힘들 것 같다.”

       
      ▲사진=손기영 기자 

    윤도현, 김제동 씨에 이어, 최근 사측에서 김미화 씨까지 문제 삼고 있다. 실제로 KBS에 연예인들의 성향을 기록해 출연 여부를 가늠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엄경철 = “사장 등 경영진의 머릿속에 ‘무형의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 같다. KBS 프로그램을 보는 경영진의 천박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KBS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좌나 우 모두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연예인들에 대한 ‘퇴출’은 이성적인 문제제기가 아니라, 친정부적인 정치성향의 입각한 경영진의 ‘생리적인 거부감’ 같다.”

    –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일 사측과의 첫 번째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다. 이번 단체교섭의 주요 의제와 중점을 두는 사안은? 협상 전망을 밝혀 달라.

    엄경철 = “이번 단체교섭의 주요 의제는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다. 새 노조에 가입한 PD, 기자들에 대해 부당한 인사발령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겠다. 새 노조 조합원들이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안정적인 근무여건이 필요하다.

    이 밖에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의 임금이나 복지문제에도 중점을 둘 것이고, 공영방송의 철학이 구현될 수 있도록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도 요구하겠다.

    "KBS, 단체교섭 의도적으로 회피"

    며칠 전 1차 회의를 했는데, 사측은 단체교섭을 회피하고 질질 끌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회의 일정, 분과구성 등과 관련해서 우리의 안과 180도 다른 안을 제시했다. 가급적 회의 일정과 분과를 줄이려는 속셈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단체교섭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쟁점도 많이 발생할 것 같다. 순조롭게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강제적인 조정, 파업까지 가는 상황도 발생될 수 있다.”

    – 최근 MBC 노조가 황희만 씨 인사를 강행한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MBC 사태’를 어떻게 보나. 덧붙여 MBC 노조와의 연대파업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엄경철 = “김재철 사장이 들어왔을 때 MBC 노조가 ‘사장 퇴진’으로 가지 않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앞잡이 황희만, 윤혁 씨의 인사 문제로 물러섰다. 이때만 해도 ‘MBC 노조가 일탈했다’, ‘MBC 노조의 싸움이 변절됐다’는 식의 평가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13일 KBS 신관 로비에 마련된 KBS 본부의 천막사무실 (사진=KBS 본부) 

    그래서 당시 노조에 비우호적인 일부 여론을, 김재철 사장이 과신한 것 같다. 또 일부러 싸움을 붙이기 위해 악수를 뒀다고 본다. 하지만 이후 MBC 노조 조합원들은 단일한 대오로 파업에 임했다. MBC 사태는 MB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MBC 노조의 싸움에 따라, SBS, KBS 등의 싸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 노조는 MBC 노조의 파업을 적극 지지하지만, 연대 파업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다. 현재로써는 새 노조가 파업을 하기에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MBC 지키기 촛불문화제에 적극 참여하고,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연대 활동에 나서겠다.”

    – 최근 전국 아파트 입주자들로 구성된 ‘전국아파트연합회’가 KBS 수신료 인상 반대운동에 돌입하는 등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 이유를 밝혀 달라.

    엄경철 = “수신료 인상은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공영방송은 수신료로만 운영돼, 건강한 프로그램으로 보답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공영방송은 수신료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맞지만, ‘너희들이 돈 가치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라는 지적에 KBS는 제대로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수신료 인상 전에 공정성 문제 개선 필요

    KBS 보도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수신료를 인상하면, 시청자들의 수신료 거부운동에 직면할 것이다. 먼저 보도 혹은 제작 프로그램에 대한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KBS 계약직지부와의 연대 계획을 밝혀 달라.

    엄경철 =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조합원들의 새 노조 가입을 검토해본 적이 있다. 또 이들의 새 노조 가입 문제에 대해, 언론노조 간부들과도 상의를 해봤다. 취지는 전적으로 공감했지만, ‘아직은 이르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우선 새 노조가 제도적인 틀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며칠 전에야 첫 단체교섭이 시작됐을 정도로 새 노조에는 회사와 싸울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아직 마련되어있지 않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 현재로써는 없는 셈이다.

    추후 새 노조의 틀이 잡히면, 비정규직 가입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지원금을 모금해 KBS계약직지부에 전달한 적이 있었다. 현재로써는 간접적 연대와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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