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입확대 위한 대중운동 준비해야
        2010년 04월 14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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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국가재정 연재를 마무리할 때이다. 국가재정의 기본 개념, 주요 주제, 진보적 대안재정전략 등을 다루는 작업이 다행히 종착역에 거의 다다랐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 연재글을 되돌아보며 필자가 주목했던 점들을 정리하고, 다음 마지막 글에서 국가재정의 진보적 개혁방안을 제안하겠다.

    시장만능주의에도 변치 않는 국가재정

    우선 필자가 관심을 가진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재정의 독특한 위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시장만능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특히 산업정책, 규제정책, 금융정책에서의 국가의 후퇴는 역력했다.

    그런데 국가의 역할 중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재정이었다. 이 시기 OECD 평균 수치를 보면, 조세부담률은 GDP 25% 안팎,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국민부담률은 GDP 35% 안팎, 국가재정 규모는 GDP 40%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 사진=청와대

    특히 복지지출은 국가재정의 절반에 가까운 GDP 20%를 지켜 왔다. 이는 국가재정을 둘러싼 계급적 이해관계가 오랫동안 구축되어 쉽사리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그만큼 국가재정의 역할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재정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재정의 역할도, 이에 대한 기대도 미약했다. 다행히 작년부터 국가재정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등장했다. 국가재정은 ‘돈’이 오가는 만큼 계급적 이해관계가 선명한 영역이다. 이제 진보운동도 국가재정 ‘정치’를 수행해야 한다.

    국가재정의 ‘전략’에 주목하다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에서 중요한 대목은 ‘전략’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국가재정은 개별사업들의 총합에 가까웠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국가재정에 ‘전략’ 개념이 도입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권력을 시장에 넘겨주었지만 국가재정에서만은 자신의 ‘국정전략’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제 8천여개의 정부사업들이 16개 분야별로 분류되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재정전략회의에서 ‘전략적으로’ 재정이 분야별로 배분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국가재정에 전략 개념이 도입된 것을 중요한 발전으로 평가한다. 언젠가 진보세력이 집권했을 때에도 ‘전략적 재정 배분’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전략적 재정배분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나쁜 정권에게 날선 칼은 위험한 무기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부가 만든 이 칼을 물려받은 무사는 이명박 정부이다.

    국가재정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주제들

    필자는 국가재정의 주요 주제들로 복지재정, 예비타당성조사, 민간투자사업, 국가채무, 성인지예산제, 지방재정, 조세제도 등을 다루었다. 필자의 관심이 반영된 주제 목록이지만 우리나라 국가재정에서 논의되는 대부분의 주제가 포괄됐다고 생각한다.

    복지재정은 항상 뜨거운 주제이다. 관련 수치도 여럿 존재해 필자 역시 혼란을 느꼈던 주제였다. 이에 6개 복지지출 수치를 비교정리하고, 작년 우리나라 복지재정이 약 90조원을 넘는다고 추정했다. OECD 평균에 비하면 금액으로 무려 110조원이 부족한 것이다.

    국가재정 지출체계 영역에선 예비타당성조사와 민간투자사업을 정리했다. 원래 예비타당성조사는 재정사업의 부실을 막고자 도입된 괜찮은 제도였는데, 4대강사업을 강행하려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도 지금 ‘세금 먹는 하마’로 재정을 축내고 있다. 역대 정권들이 자신의 임기 중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민간투자사업을 남발한 탓이다. 민간투자사업은 21세기형 민영화로 불릴만하다.

    후반부에 다룬 국가채무 주제는 필자가 힘들여 정리한 글이다. 앞으로 2012년까지 국가채무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등장할 것이므로 이는 한번은 공부를 해 놓아야할 주제이다. 왜 우리나라에서 국가채무 규모가 혼란스러운지를 국제기준의 차이로 설명하였고, 우리나라 실제 규모가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인지예산제는 모처럼 기분 좋은 주제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매우 강력한 제도를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약 60개국에서 성인지예산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법적인 형태로 도입된 국가는 한국, 프랑스, 필리핀 정도이다. 하지만 적용 첫해인 올해 성인지예산제는 ‘이름’뿐인 제도로 취급되었다. 이명박 정부에게 성인지예산제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지방자치 선거를 맞아 지방재정 문제도 상세히 다룬 편이다. 현재 지방재정은 절대 금액에서 ‘부족’하고 지방마다 ‘격차’를 보이는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세를 강화하자는 게 중론이나 필자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지방재정조정제도를 강조했다. 지방정부간 이해관계의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중앙정부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살펴본 주제는 ‘조세’이다. 보통 간접세 비중이 높다고 알려져 있으나 필자는 우리나라 조세의 핵심 문제점으로 ‘작은 총직접세 규모’를 꼽았다. 총직접세는 필자가 일반 직접세와 사회보험료를 합쳐 만든 용어인데, 국가재정 개혁의 기본 방향이 증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보편복지 물결을 타고 증세운동이 본격화되길 기대한다.

    욕심같아서는, 국방비, 콘크리트 사업, 대기업 친화적 경제예산 등 주요 재정지출분야도 다루었으면 좋았겠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공부 과제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3중의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국가재정

    그러면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 국가재정은 지출구조에서 과도한 국방비와 콘크리트 예산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상시적인 지출구조개혁 운동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국가재정이 너무 작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규모는 2009년 GDP 33.8%로 OECD 평균 44.8%에 비해 11%포인트가 작다. 금액으로 따지면 110조원이 작다. 우연히도 복지재정 부족액과 일치하는 금액이다. 결국, 우리나라 국가재정은 국가재정의 규모, 총직접세 수입 비중, 복지지출이 작은 3중의 부족을 겪고 있다.

    어떻게 이 3중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 재정적자가 심각하니 지출을 더 줄여야한다는 게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주류 세력의 목소리다.

    이명박 정부는 매년 재정수지를 개선해 2013~2014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보다 낮게 설정해 나갈 예정이다. 세계적 금융위기도 진정되고 있어 재정지출을 엄격히 관리하면 무난히 이룰 수 있다고 장담한다.

    물론 재정지출을 엄격히 통제하면 재정수지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을 빌미로 복지지출이 동결되거나 삭감되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점이다. 재정건전성이 이명박 정부에게 부담이지만, 진보운동에게도 중요한 도전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진보운동은 무엇을 해야할까? 이명박 정부의 ‘지출 통제’ 프레임을 직접세를 확대하는 ‘세입 확충’ 프레임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증세가 진보운동의 기본방향이라면, 지금부터 세입확대를 위한 대중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5월에 열릴 이명박정부의 ‘국가재정전략회의’

    결국 전략이다. 정부도 ‘재정전략’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듯, 진보운동도 미래 국정운영 주체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대안재정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달 5월에는 이명박 정부가 2010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가진다. 대통령과 부처장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년, 그리고 향후 5년간 전략적 재정배분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면 이후 정부의 예산편성 과정에는 부처별로 내부 지출을 일부 조정하는 미시적 일만 남는다.

    이러한 국가재정 편성체계에 맞추어 진보운동의 대응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재정 이슈는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시점을 전후해서야 떠올랐고, 진보운동 역시 정기국회에 맞추어 재정 관련 활동을 벌였다. 올해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직까지 진보운동에서 대안재정전략 논의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부자감세 철회, 4대강사업 중단, 복지지출 확대 등 부문별 요구만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하며, 누구보다도 당사자격인 진보정당들이 앞장서야 한다.

    진보운동의 대안재정전략이라면?

    우선 포괄적 수준에서라도 대안재정전략에 담을 내용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안과 유사하게 정부총지출 규모, 분야별 재정 배분, 전략적 핵심사업, 재원조달 방안 등이 포함될 것이다. 워낙 우리나라 국가재정 상태가 열악한 까닭에, 전략적 달성 목표를 현행 OECD 평균 수준으로 설정해도, 정당성이나 진보성에서 큰 문제는 없을 듯 하다. 물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별 로드맵도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만들어보면 이럴 수 있다. <표>를 보면 2009년 OECD 평균 국가재정 규모는 GDP 45%수준이다. 하지만 2009년 금융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2008년까지 OECD 평균 약 41%를 국가재정 규모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 GDP 7%의 국가재정의 확대이다. 이는 직접세와 사회보험료를 합친 총직접세율 17.5%를 OECD 평균 24.6%까지 높이면 가능한 일이다.

    16개 지출 분야별 재정배분은 어떻게 할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모든 국정영역에 대한 나름의 방안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분야만 보면, OECD 평균인 GDP 20%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보다 110조원이 더 필요하다. 이 중 70조원은 총직접세 확대로 나머지 40조원은 지출구조개혁으로 충당될 수 있을 것이다.

    대안재정전략에는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핵심사업이 포함된다. 재정목표는 수치일 뿐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업이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영역에선 무상보육, 전국민실업급여, 공공서비스 일자리 100만개 등이, 경제영역에선 중소기업, 생태농업, 지속가능에너지, 사회적 기업 등 풀뿌리경제 육성이 설정될 수 있다.

    나아가 진보적 입장에서 대안재정전략의 목표가 사회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수치로 제시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가계운영비 중 사회임금 비중을 제시할 수도 있고(우리나라 8%, OECD 평균 32%), 기본소득 지지자라면 기본소득 금액을 명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안재정전략 마련은 미래 사회비전을 구체화하는 일

    대안재정전략의 내용들은 각 항목마다 진보운동 내부에서 토론이 필요한 것들이다. 이를 위해선 각 항목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적 근거와 방안도 준비되어야 한다. 결국 대안재정전략을 마련하는 일은 진보운동이 미래 사회 비전을 구체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는 5월, 완성물은 아니더라도 진보운동의 대안재정전략을 보고 싶다. (다음 글에서 ‘국가재정의 진보적 개혁방안’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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