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권파 '당원 중심성' 논리의 파탄?
    [취재현장] 이상규 "강기갑 비대위원장 안돼…외부 영입 가능"
        2012년 05월 11일 09: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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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입장은 분명하다. 진상조사위의 결과 보고서는 허위이며, 따라서 자신들은 과오가 없으며, 책임을 질 일도 없다. 다만, 이정희 대표 정도가 ‘자신의 실수’-공동대표단의 실수-를 이유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정도다. 따라서 비례후보 사퇴 등 이른바 후속 조치는 있을 수 없는 ‘정치적 폭력’이라고 말한다.

    당권파들의 일관된 논리와 모순

    이런 입장들을 꿰뚫고 흐르는 중요한 논리적, 원칙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당원 중심성이다. 이 논리의 구체적 현실태는 당원 총투표이다. 일반론적으로 정당이 당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권파들은 일상적 당 운영 과정에서 강조돼야 하는 당원 중심주의가 아니라 현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서 ‘당원 중심성’을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 당권파가 중심이 돼서 밀어붙였던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당원 중심성, 당내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당시 그런 모습에 대한 ‘당원’들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비당권파들의 경우 당원 중심성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현재의 국면을 극복하기 위한 태도로 상식, 국민 눈높이 등을 더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강기갑 의원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쟁명부 비례대표 진퇴 문제 결정 방식으로 “당원 총투표 50%, 국민여론조사 50%”를 제안했다.

    이상규 당선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장여진 기자)

    이에 대해 당권파들은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도 당원 중심성의 기치가 높이 휘날렸다. 강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국회 브리핑 룸에 이상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나타났다. 그는 강 의원의 제안이 “진성당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진보정당의 근간인 당원 직접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것이 당원총투표 제안의 기본 정신”이라며 거듭 ‘진성’ 당원 중심성을 강조했다. 이걸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통합진보당 당권파만 주장하는 원칙도 아니다.

    당원 중심성, 일사의 원칙 또는 동원된 무기?

    문제는 일상적인 당 운영에서 이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당원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실,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는 도피처로서 ‘당원 중심성’이라는 가치가 차출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 당선자는 짧은 기자회견에 이은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에 “10일 전국운영위에서 비대위 구성안을 결론내지 못한 것은 강기갑 의원이 비대위원장 에 추천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강 의원이) 중재안을 내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양쪽 모두가 만족할만한 중립적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당권파가 제안하고 당권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 합의가 되면 비대위 구성을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권파가 먼저 사람을 거론하면 일이 꼬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자들이 비대위원장의 외부 영입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외부에서 오든, 당내에서 오든, 당내 당권파와 비당권파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체 진보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분이 오면 좋죠.”라고 답변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당 밖에서도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이 발언대로라면 그는 지금까지 당권파가 자신들의 입장을 받쳐주고 있는 기본 토대인 ‘당원 중심성’ 논리에 결정적인 파탄 선고를 한 셈이다. 한시적 동원 논리였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들까지 ‘외부’로 돌리면서 당원 중심성을 앞세웠던 이들이 비상대책위원장에 ‘비당원 외부인사’의 영입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심각한 모순이다.

    중립적 ‘인물’보다 합의에 이르는 ‘룰’이 중요

    이 당선자의 이 같은 발언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얘기로 했는지, 외부 인사를 염두에 둔 발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안건인 비대위 위원장 선임 기준이 자신들의 기본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한편 그가 말한 ‘중립적 인물’은 현실적 존재라기보다는 일종의 관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진보당 내에서는 당권파와 비당권파를 제외한 중립지대는 거의 없다. 외부에서 인물 영입은 자신들의 논리에 결정적으로 배치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립적인 특정 ‘인물’이 아니라-이 부분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양측의 양보하기 어려운 입장이 공정하게 겨뤄지는 과정, 즉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룰’에 대한 합의가 아닐까?

    고의적인 회의 지연이라든지, 동원된 당원들의 회의 방해 따위를 승리를 위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무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합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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