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불신은 양당제의 산물
        2010년 04월 13일 0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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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기관의 신뢰도에 대해 살펴보다가 알게 된 재미있는, 혹은 뜻밖의 사실은 정부기관 중 군대의 신뢰도가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국회나 중앙정부가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신을 많이 받고 있을 때, 군과 대법원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2005년 군대의 신뢰도가 5% 가량 추락한 것은 그해 1월에 벌어진 훈련소 인분사건과 6월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고에 대한 군 발표에 대해 60%가 믿지 않는다(<한겨레> 4월 12일자). 아마도 같은 조사가 올해도 진행된다면, 군의 신뢰도 추락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 동안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정부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뿌리깊은 불신에 대한 반사이익과 이번 사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 군의 대외적 비밀주의와 대내적 보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출처: <시사저널> 2009.9.8(1037호)

    군 신뢰는 정치 불신 따른 반사 효과

    하지만 다시 뒤집어 보면 정부와 정당, 혹은 국회 등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이번 사건이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순간, 군은 요지부동의 정부기관 중 신뢰도 1위 자리를 되찾을 것이라는 점 또한 과거의 경향을 보았을 때 예측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이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1998년 미국 자유주의 진영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하버드 대학교의 케네디 정책대학원(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에서 다년간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그 제목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Why people don’t trust government)』였다(이 책은 2001년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미국인들의 정부 불신이 196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온 데 대한 원인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찰하고 있다.

    우선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공고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연구의 중요한 결과이다. 즉 경제발전이 신뢰형성에 중요하다면,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미국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신뢰도 하락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본연적 역할 중 하나인 복지증진은 신뢰와 정(正)의 관계를 갖는다. 즉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신뢰도의 상승 혹은 높은 신뢰도의 유지는 경제공황 이후 미국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던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위 책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요컨대 정치양극화, 즉 정당의 양극화가 정부의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 점이다. 이른바 ‘뉴딜공조체제’가 무너지면서 거대 양당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졌고, 이는 타협이 불가능한 정도로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정당 양극화와 정치불신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첫째, 정치불신이 심화되는 시기와 정당의 양극화 심화 기간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 둘째, 양당의 열성당원들의 이념은 점점 간극이 벌어지는 반면, 일반 국민들의 이념은 예전과 큰 변화가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당에 대한 호감도가 정부에 대한 호감도와 직접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정치(정당과 정부, 그리고 그들의 정책)세력간의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그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이것은 바로 정치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상황과 직접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으나, 민주화 이후 20년, 한국정치의 신뢰도를 생각해 볼 때,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는 있겠다싶다.

    미국 양당간의 이념적 거리가 유럽과 같은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물론 연방주의 대 반연방주의라는 건국을 둘러싸고 나름 역사적 기원을 갖는 정당이념간 차이는 존재한다), 권력구조가 미국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정치행태나 제도적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불신 원인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있다.

    정치 불신은 이념 차이 없는 양당 경쟁의 결과

    즉 한국의 거대양당의 경쟁형태가 ‘생즉사 즉사생’의 양상을 띠는 것은 바로 이념의 차이에 따른 경쟁형태가 아니라, 이념의 유사성에 기반한 경쟁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중도개념은 사실상 성립하기가 힘들다.

    미국의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새로운 제3정당보다는 양당내 중도파에서 그들의 대안을 찾아왔다. 지방선거를 겨냥해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주창한 ‘빅 텐트(big tent)’론은 1950년대까지 미국 민주당의 집권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 인종문제, 여성운동, 반문화운동을 거치면서 미국 자유주의자들에게 민주당이 아늑한 보금자리이던 시절은 한물간 옛날 얘기가 된 지 오래다. 하물며 한국의 민주당이 진보진영까지 포함하는 빅 텐트론 혹은 맏형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 해도 ‘철없는 호연지기’ 이상은 아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 혹은 좌파정당의 성장은 이러한 ‘불신의 정치’를 ‘신뢰의 정치’로 패러다임을 이동시킬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라는 데서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좋은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좋은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적 지지층뿐만 아니라, 정치를 불신하는 사람들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메신저가 되어야 진보정당의 재도약도, 재구성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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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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