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에게 옻 진액을 먹이시겠다고요?"
        2010년 04월 13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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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누가 옻 진액을 먹으면 어떠냐고 물어오셨네요. 남편이 손발이 차서 먹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남편이란 분은 술을 자주 드시고 얼굴이 붉고 당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뇨가 있다는 건 위속에 열이 뭉쳐있다는 뜻입니다.

    옻의 성질

    이러쿵 저러쿵 말씀드린 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옻 진액 파는 데가 왜 그리 많습니까? 먹는 방법도 다양해서 소주에 타먹고, 장어구이에 소스와 섞어 발라먹고, 그냥 먹기도 하고… 헌데 판매 사이트마다 하는 말이 발효시킨거라 안전하다, 독을 제거해 걱정없다는 겁니다. ㅋ

    옻은 한약재명으론 건칠이라 하는데 그 성질이 맹렬합니다. 저희 또래는 대개 어릴 때 옻독 때문에 한두 번은 고생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서 열꽃이 피고 가려워 죽을 지경인데 속으로 들어가면 굉장하겠죠? 자칫 죽을 수도 있는 게 옻독입니다. 그래서 농약 대신 쓰기도 합니다.

    이걸 약으로 쓴다면 어떤 사람, 어떤 증세에 쓰일까요? 성질이 맹렬하니 우선 음습한 것을 좋아하는 회충을 몰아냅니다. 차갑게 굳은 어혈을 풀어냅니다. 자궁 찬 여자들에 잘 생기는 근종, 각종 덩어리들을 녹여냅니다.

       
      ▲ 잘개 쪼갠 옻나무

    근데 반드시 잘게 부숴서 연기나도록 볶아서 써야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위장을 상합니다. 옻에 민감한 사람은 이렇게 해도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심각할 수도 있고요. 발효시킨 거요? 발효를 시키면 강한 성질이 좀 무뎌지기도 하고 위장에 부담이 덜하고, 또 좀 더 속으로 들어가 작용하겠습니다만 여전히 만만한 약은 아닙니다.

    우리 몸에 작용하는 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속불과 겉불입니다. 아궁이 속 재를 뒤지면 밤새 꺼지지 않고 열을 품고 있는 뻘건 숯덩이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걸 속불이라 보시면 됩니다. 밑불이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겉불은 신문지나 마른 낙엽에 질러놓은 불처럼 거세게 타오르지만 밑천이 없어 금새 사그러드는 그런 불입니다.

    장어구이와 옻

    옻은 어디에 가까울까요? 성질로 보면 겉불에 가깝습니다. 허나 워낙 맹렬하여 밑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령 속이 차서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이 옻을 먹으면 설사가 멈춥니다. 이건 속불의 작용이죠. 그러나 발산하려는 성질 때문에 피부에 열꽃이 피어서 가렵게 됩니다. 이건 겉불의 작용입니다.

    그러면 얼굴에 열이 오르는 사람, 얼굴이 붉은 사람이 옻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성질 급한 사람, 피부를 긁으면 벌겋게 올라오는 사람은요? 소주에 옻을 타먹으면 또 어떻게 될까요? 짐작이 되십니까?

    장어구이에 발라먹는 거, 이건 참 기발합니다. 장어란 놈이 참 음습하거든요.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음습한 독을 맹렬한 독으로 조화시키는 거죠. 돼지고기에 고추 마늘을 같이 먹는거나, 치즈 파스타에 핫소스 뿌려먹는 거랑 비슷한 발상입니다.

    옻하면 떠오르는게 옻닭인데요. 이건 누가 먹으면 좋을까요? 닭의 눈과 붉은 벼슬, 날카로운 부리, 날렵한 발놀림들을 보면 그 성질이 짐작이 될겁니다. 거기다 맹렬한 옻이라니… 몸이 차고 무겁고 처지는 사람이 먹으면 보약이 될 수 있겠지만, 성마르고 파닥거리는 사람이 먹으면 아마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길겁니다.

    어디에 뭐가 좋다더라는 소문들이 전파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닙니다. 우연히 하나 귀에 걸리면 썰물처럼 쏴아 몰려들다가 다시 무엇 무엇을 많이 먹는다더라는 소식이 들리면 그쪽으로 쏴아 몰려갑니다. 세상에 약 안 되는게 없다지만 독 아닌 것도 없습니다. 소문이나 유행에 혹하지 않고 내게 맞는 것을 분별해내는 지혜, 그것이 내 몸을 지키는 가장 좋은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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