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性스런 자유를 달라"
    2010년 04월 12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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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를 몹시 싫어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꽤 예전부터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인데 한때는 싫어하다 못해 같은 장소에 있기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나의 지나온 시간 중 일부에는 아이를 ‘무서워’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출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집착하게 될까 걱정되기도 했고, 왠지 자식을 낳으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난 아직 엄마가 될 자격은 없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왜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부여받기 위해서 더없는 애정과 완벽한 가사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한 것은 2월의 일이다. 저 출산 문제가 정부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저 출산만 생각하면 등에 불을 지고 있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뜨겁게 떠오른 낙태 논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지금 내가 나의 파트너와 맺는 관계에서 임신을 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고 그러니 낙태를 경험할 일도 없었다. 낙태에 대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가 낙태를 했다고 나에게 ‘커밍아웃’했던 어느 날 저녁의 풍경밖에 없었다. 나는 레즈비언 친구들과도 단 한번 낙태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자주 말하던 ‘레즈비언의 삶’의 이야기에 낙태는 외부의 것이었다.

그곳이 나를 오라 하네.

봇물 쏟아지듯 낙태 관련 포럼과 세미나가 열렸다. 나도 몇 군데를 참가했다. 나의 파트너와 언제나 동행하였다. 우리는 왜 우리가 그곳에 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 여자들의 낙태이야기’를 들었다. 나 또한 낙태 시술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 그 이야기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라!’라는 말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레즈비언들이 섹스를 할 때 오르가즘을 더 잘 느끼는 이유가 임신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성애자 친구들의 낙태에 대한 이야길 들으면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의 두려움이 ‘거세’된 나의 동성애 관계가 썩 괜찮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뿌리를 알 수 없는 묘한 꿈을 꾸고 나서였다. 어느 날 꿈에 내 애인이 임신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남자와 자서 임신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배를 만지고 배꼽을 봤다. 꿈속의 나는 확대된 배와 배꼽을 깊은 하수구를 보듯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 꿈은 마치 실제처럼 느껴졌고 나는 다음 날 애인의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낙태포럼에 참가했다.

낙태와 출산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붙어 있지만 다른 것들이다. 이 둘은 임신을 확인 하고 눈앞의 안개가 사라지면 선명하게 보이는 두 갈래 길이다. 왼발을 내딛을 지 오른발을 내딛을지의 차이가 있을 뿐 둘 사이의 공백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얇고 좁게 벌어진 공간은 너무나 촘촘하게, 온갖 스토리들이 밀도를 채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택의 과정은 하나의 개념이나 특정한 사례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은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레즈비언인 나의 아주 사적인 낙태에 대한 관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랑은 출산을 싣고, 이기심은 낙태를 싣고?

사실 낙태를 말하면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성의 육체에 대한 통제의 이야기다. 통제의 주체는 국가(남성/아버지/남편)나 사회(관습/인식/이미지)다. 그리고 통제의 대상은 여성의 육체(body, 성적자기결정권)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낙태가 이슈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덮어놓고 낳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던 정부의 저 출산 정책 덕분이었다.

한반도가 옥수수 알갱이 같은 아이들로 가득 찬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젖꼭지를 문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니. 모자보건법을 통해 낙태의 숨통을 터준 정부에 의해서 낙태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낙태를 문의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사정이었다.

하지만 너무 허리띠를 졸아 맸던 것인지 이제는 출산율이 낮아져 골칫거리가 되었고 정부는 여러 가지 출산 장려 정책을 제시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김밥 옆구리 터지듯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조치가 발생한 것이다. 탁상에 마주 앉게 된 것은 생명권과 선택권이다. 출산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말하며 낙태를 살인이라고 지명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확고하다. 그것은 환청이었을까. “네 인생 살려고 애를 안 낳는단 말이야? 이 이기적인 여자들아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 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밑그림을 그릴 수 없도록 들고 있던 연필을 부러뜨리는 배경음을 동반했다. 다른 ‘무엇’의 이익과 소용을 위하여 출산할 것과 출산하지 않을 것이 각각 어머니라는 환상과 함께 여성의 육체에 부과된 것이다. 한때 다산은 못 배운 사람들의 무지한 방만함이었지만 지금은 아름답고 훈훈한 미담이 되었다.

나에게 性스런 자유를 달라

레즈비언인 나와 낙태 담론 사이를 잇는 결정적인 단어는 ‘성적자기결정권’ 이었다. 이 단어가 포괄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상상해 보자. 단순히 모텔에 누워 그 혹은 그녀와 오늘 밤 섹스를 할까말까를 결정하는 것에서 더 긴 꼬리가 만들어진다. 나는 어떤 성적 존재(성정체성이라는 말은 뭔가 부족하다)인가. 성적 주체로서의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나에게 가능한 성적 가능성들은 무엇인가. 성과 관련된 결정들을 나의 의지 하에서 정할 수 있는가. 다양한 성적 물음들을 나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가. 등등.

다양한 개념과 의미들이 혼재 돼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마치 두꺼운 마분지처럼 빳빳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시작하는 것은 처음으로 생리대를 사러 슈퍼에 가서 당당하게 계산을 마친 것처럼 편하고 자유롭기도 하다. 동성애를 억압하는 방식은 순결해야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서 성적자기결정권을 강탈해 나가던 것과 비슷하다.

   
  ▲ 만화 "너 원래 이반 아니지 않았어?" 중에서 (출처=레즈비언문화제자료집)

생식과 관련된 성관계가 정상의 것으로 규정되고 출산에 의해 정당화됨과 동시에 동성애는 죄악과 질병의 이름을 얻었다. 여성은 순결해야 하므로 성에 대해 무지하고 다양한 성적 가능성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성적 호기심이 강한 여성은 발정 난 암캐이거나 걸레로 호명되었다. 그리하여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적인 성’만이 고려가능한 모든 것이 되었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고 이들은 결혼하여 여자는 출산하고 남자는 가장이 되는 정상가족이 꾸려졌다.

그리하여 정상의 가족, 정상의 성, 정상의 섹스, 정상의 출산은 자연의 섭리와 음양의 조화로 이탈자들을 냉정히 구분했다.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성애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여성의 본성이라 믿어져 왔고 낙태한 여성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의심, 자연스러움을 거슬렀다는 죄책감과 자신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무겁게 지고 가야하게 된 것이다. 정자를 제공한 그 많은 남자들은 사라졌고 모성을 져버린 여성들만이 재를 올리고 기도를 하며 아픔을 어루만지게 되었다.

생명권과 선택권, 이분법을 넘어서

20살이 되던 해, 나는 두 번째 성추행을 당했다. 절대적인 수준을 잣대로 한다면 물론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것은 꽤나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당일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다음 날 눈을 뜨고 학교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데 눈물이 났다. 나는 수업시간에 가만히 있다가도 울었고 집에 돌아와서 하얀 백지위에 나 자신에게 띄우는 편지를 쓰며 무척이나 많이 울었다.

대체로 그 편지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런 일을 당했는가.’와 ‘나는 왜 무기력하게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는가.’로 채워졌다. 그날 밤 나는 당사자에게 전화를 했고 사과를 받았다. 물론 그 사과 하나로 내 기분이 홀가분해지고 모든 괴로움을 그 순간이후로 지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는 그것을 하나의 ‘기억’으로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겪은 그 혼란스러움을 어떤 표현과 언어들로 정리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에 대한 형체 없는 비난과 거칠게 울려대는 괴로움이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주장하는 생명권에 대항할 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낙태 시술을 허용하라는 목소리가 생명권이 여성의 선택권보다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은 낙태를 ‘선택’하지만 이것은 결코 사과 한마디로 상처가 치유되지 않듯, 수술 하나로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기 편하자고 애를 아무 고민 없이 떼어내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와 사회 인식을 생각할수록 혼자서라도 애를 낳아 키우라는 일방적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떼인지 절감할 수밖에 없다.

레즈비언으로서 계속 살아간다면 아마 나에게 낙태는 여전히 내겐 일어나지 않을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에 가까이 존재하고 내 피부와 시시각각 접촉하는 사안임을 알게 되었다. 다만 논의에 끼어들고 다양한 이야기중 하나를 구성해 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겠지만 생각하고 생각 할수록 내 삶의 서사들이 마치 윈도우 재생기의 파동처럼 이리 저리로 변하고 굴절하고 운반돼 예상치 못한 무언가에 맞부딪치는 것을 경험한다.

나의 낙태에 대한 잡다한 고민들 역시 그렇다. 앞으로 낙태 담론이 어떤 지형으로 변화할지, 정치적 관점들은 어떻게 구성될 지 알 수 없지만 이 ‘남의 것이 아닌 이야기’가 조금은 나에게 가깝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러니 이 이 글은 순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소매를 걷고 양동이를 찾기로 결심한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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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지금은)레즈비언. 백수로 지낸지 석 달 만에 실없는 소리로 하루의 반을 채우는 무척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실업을 궁극의 놀이로 발전시킬 방법을 고심하지만 동시에 심연이 아득하다. 4월 한 달 간 세 번의 글로 근래의 사소한 단상들을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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