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도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By 나난
        2010년 04월 10일 0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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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인 엘튼 마요는 192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돈시에 있는 한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호손 실험’을 진행하며 조직 내 소통이 중요하고 노동자의 감정을 배려할 때 기업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러셀 혹쉴드는 『감정 노동』을 통해 “서비스 노동에서 노동자의 감정관리도 기업의 중요한 경영업무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노동자의 육체 뿐 아니라 감정마저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이 같은 상황을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에바 일루즈, 돌베개, 14,000원)라고 정의내렸다.

    ‘감정 자본주의’는 감정이 경제행위에 영향을 미치면서 역으로 경제행위가 감정생활을 지배하는 문화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는 ‘자아실현’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되고, 그러한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온갖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치료학이 부상하면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 오늘날 자기계발과 정신분석학이 이전보다 한층 더 기이하게 얽혀 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치료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없지만 이것이 미국의 ‘기업가 정신’과 맞물리면서 ‘자기계발 이데올로기’가 탄생했다.

       
      ▲책 표지 

    또한 심리학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실용서에 과학적 권위가 부여되고 욕구를 긍정하는 성에 대한 일대 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이 개인의 권리가 됨과 동시에, 이를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 치료를 요하는 질병으로 까지 취급되고 있다.

    또한 정신 건강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되면서 감정은 정신 건강의 지표로서 그 자체로 중요한 사회적 역량이 되었고, 감정에 점수를 매기는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90년대에 출현한 ‘감정지능’(EQ)이다.

    그리고 이제 직장에서의 감정은 취업이나 승진 또는 재산증식 등의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일종의 ‘자본’이 되었다. 또 감정지능은 친밀성 증진에 동원되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하는 ‘남성적’ 체제로 간주되어왔고, ‘여성적’ 영역은 경제적 영역과 구분되는 사적이고 정서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런데 이러한 관습적 분할이 흐려지면서 ‘감정 자본주의’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증거로 1920년대에 미국에서 직장 내 위계질서 확립과 생산성 제고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찾은 대안이 심리학이었음을 거론한다. 엘튼 마요의 연구는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3장을 통해 감정 자본주의하의 새로운 문화 지형에서 친밀함을 형성·유지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감정 자본주의에서 연애나 가족은 탈 육체화·탈 낭만화 한다. 저자가 이를 ‘차가운 친밀성’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매개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다.

    극단적인 예로 저자는 온라인 데이트에 주목한다. 온라인은 오프라인 만남에서와 반대로 상대를 ‘아는’ 과정이 상대에게 ‘끌리는’ 과정에 앞서고, 무한한 파트너 ‘시장’은 효율적인 ‘소비’를 요구한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훑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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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 에바 일루즈 Eva Illouz

    파리10 대학에서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문학을 공부하고 히브리 대학 석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펜실베니아 대학교 아넨버그 스쿨 박사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이론을 공부했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베를린 지식연구소 교수를 지냈다.

    『낭만적인 유토피아를 소비하기』는 전미사회학회 2000년 (감정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오프라 윈프리와 고통의 광휘』는 전미사회학회 2005년 (문화사회학 분야)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아도르노 강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이 책 『감정 자본주의』로 펴내 학계와 출판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9년 독일의 유력 일간지 『디자이트』는 에바 일루즈를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들 중 한 명으로 꼽은 바 있다.

    역자 – 김정아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영문학과에서 석사를, 비교문학과에서 박사를 마쳤다. 현재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동화의 정체』, 『눈과 마음』, 『죽은 신을 위하여』, 『슬럼, 지구를 뒤덮다』,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학교엔 귀신이 산다』(공저) 등이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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