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대통령과 군의 묘한 2중주
    2010년 04월 07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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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밤 서해안 백령도 서남방향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1200톤급 초계정 천안함이 두동강이 난 채 침몰했고, 근무하던 장병 46명이 실종되었다. 이 지역은 수차례에 걸친 남북 해군의 교전으로 인해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NLL(북방한계선) 근방이었고, 사건 직전 한미연합군이 행하고 있던 군사훈련 ‘독수리연습’ 등으로 긴장이 크게 고조된 상태였다. 사건 속보는 온갖 불길한 상상을 자극했다. 북한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 단정하는 오보가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11일이 지났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놀랍게도 국민들은 사건 발생 시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는 4차례에 걸쳐 사건발생 시각에 대한 발표를 수정한 끝에 4월 1일, "당일 발생한 지진파와 열상장비로 촬영된 동영상 등을 종합할 때 천안함이 21시 22분경 사고로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고, 오늘 다시 이를 확인하는 발표를 했다.

지난 일요일 한 방송사가 입수하여 보도한 해군의 상황보고서에는 최초 상황 발생 시각이 밤 21시 15분으로 되어 있고, 1분 뒤인 16분에는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폭음이 청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7분은 여전히 의문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억측과 의혹 증폭시키는 군의 발표

사건 발생 시간을 둘러싼 군의 발표가 오락가락 하다보니 정리된 사건일지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의혹은 솜사탕처럼 부풀어오르고 있다. 침몰된 천안함이 통상적이지 않은 항로를 선택한 경위, 특히 백령도 인근 1마일 이내로 접근한 이유, 당일 있었던 함포사격의 목적과 경위, 구조가 지연된 원인과 타당한 이유, 사고 당일 천안함의 독수리연습 등 한미연합작전 참여 여부 등에 대한 억측과 추론이 난무하고 있다.

원인을 두고도 자체적인 좌초 혹은 피로파괴, 북 잠수정의 침투에 의한 어뢰공격, 미군의 분실 기뢰에 의한 사고, 아군측의 오폭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군당국의 제한된 설명은 의혹만 가중시키고 있다.

군당국은 사고원인에 대한 예단은 금물이라고 짐짓 신중한 체하면서도 부정확하고 논란을 유발할 만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여 발표하고 있다. 최초에는 기뢰나 폭뢰에 의한 폭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가, 차라리 어뢰 가능성이 높다고 번복하는가 하면, 북한이 도발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북 잠수정의 동선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운을 남기는 식이다.

국방부는 또 의혹 부풀리기를 자제하라고 경고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밝힐 아무런 1차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해군은 실시간으로 모든 해군 함정의 위치를 추적하고 그들과의 교신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씨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이 교신기록의 부분 공개만으로도 많은 의혹을 가라앉히고, 군의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기다릴 여유와 신뢰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군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다.

군사기밀보호법과 ‘보안’이라는 전가의 보도

이에 필자가 속한 참여연대는 사건 발생 직후 천안함의 교신일지와 항적기록, 해군 함정의 사고예방·정비·위기대응 매뉴얼과 그 이행 여부에 대한 기록을 포함한 일체의 1차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군의 입장을 고려하여 군사기밀을 제외한 부분 공개도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사실 군사기밀보호법은 절대적인 법이 아니다. 그 군사기밀보호법조차 제7조에서는 "국방부장관 또는 방위사업청장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 ‘공개함으로써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때’ 군사기밀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군은 보안을 내세워 공개 거부 방침을 밝히고 있다.

군의 이런 태도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직접 했던 정보공개청구 사례만도 여러번 ‘보안’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예를 들어 F-X사업에 대해 부적절했다는 취지의 감사결과보고서 공개청구에서 군은 역시 보안을 이유로 결과요지는 물론, 목차와 표지까지 2급기밀로 분류했다.

다목적 헬기 개발사업 감사처분 요구서 공개도 같은 이유로 담당자 싸인까지 2급기밀로 분류해 거부했다. 이라크와 아프간 관련한 여러 차례의 정보공개에서도 군은 자신들이 가공한 정보 이외의 1차자료를 공개하는 데 생래적인 거부감을 표시했다.

민군합동조사단, 그 면면을 보면

강력한 항의에 직면한 군은 중립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위해 이른바 민군합동조사단이라는 것을 꾸려서 의혹 없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조사단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위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진 바 없다. 그 명단도 제대로 공개된 바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육군 중장이 단장이 되고 대다수가 군이며 민간인 24명도 군 소속 연구기관과 2개 조선회사의 선박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선박회사도 사실상 군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중이 제 머리 깎는 격이라는 표현도 과분한 편성이다.

뒤늦게 실종자 가족들에게 일부 과정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고는 하나 이 합동조사단이 군 주도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단의 명칭을 ‘민군합동조사단’이라고 명명한 발상 자체가 군의 관료주의적 접근 자세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천안함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 중요한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군이 묘한 이중주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한점 의혹 없이 모두 다 공개하라는 지시를 네 번이나 했다. 북한도발론 같은 증거 불충분한 예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시도 병행했다. 심지어 "절대, 있는 그대로 보고하고 발표하라", "사실과 증거가 말하게 해야 한다", "민군합동조사단장은 신망있는 민간인이 해야 한다"며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사실관계의 자투리만 선택적으로 공개하거나 이른바 ‘마사지’한 해명자료만 내놓을 뿐 1차 자료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들의 강력한 항의와 대통령의 지시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인양한 선체 절단면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는 구태를 연출하고 있다.

관료주의와 비밀주의의 위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군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인 ‘보안’ 논리 앞에서 문민통제의 헌법정신도, 대통령의 군통수권도 속절없이 무력화되고 있는 셈이다.

군 수뇌부는 무책임하게도 안보니 보안이니 하는 정보독점의 밀실 속으로 숨어버리고 있다. 보안(保安)의 사전적 정의는 ‘안전하게 보호함’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누구의 안전이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군의 태도로 미루어볼 때, 실종병사나 국민의 안전이라기보다는 군 지휘부 자신의 안전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방부 관료와 군 수뇌부는 교신일지 등 자신들이 기밀로 분류한 정보의 공개를 안보의 위기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정작 자신들이 처한 위기는 돌아보지 않고 있다.

군이 직면한 위기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위협 해석의 독점을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통제의 예외지대에 안주하는 것이며, 아울러 국민의 안전을 가능케 하는 군대 이외의 많은 구성요소들에 대한 지적 훈련을 게을리하는 관료주의와 비밀주의의 위기이다. 더구나 자신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에 군이 겪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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