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핵전략 놓고 헤매다
        2010년 04월 07일 01: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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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4월 6일(미국시간)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NPR은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고, 글로벌 핵 안보 정상회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 8차 검토회의를 앞두고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세계 최강의 핵강대국인 미국이 어떤 핵전략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안보정세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격론 끝에 발표된 핵태세검토

    NPR은 5~10년간의 미국의 중단기 핵전략의 지침을 담은 핵심 문서로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7년에 1차 보고서가 나왔고, 부시 행정부 임기 첫해인 2001년에 2차 보고서가 나왔다. 당초 3차 보고서는 2009년 12월 말에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었지만, 미국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지면서 발표가 지연되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난항 끝에 6일이라는 발표 시점을 택한 이유는 극적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핵 안보 정상회의 및 NPT 회의를 앞둔 시점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후속협정 조인식을 위해 체코 프라하를 방문하기 하루 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오바마가 변화된 핵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핵비확산 외교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4월 5일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제로 연설하면서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과의 결별”을 다짐했다. 미소 냉전이 종식된 지 20년이 지난 만큼, 변화된 시대에 걸맞게 핵무기 보유량과 역할을 감소해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데 지도력을 발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년 9월에는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유엔 안보리 회의의 의장으로 나서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오바마는 “핵무기는 대통령의 무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NPR 보고서 작성에 적극 개입했다. 특히 작년 9월에 미국 국방부가 보고한 초안이 미흡하다며, 대규모의 핵무기 감축을 전제로 한 핵전략 수립을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의 지침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는 실전배치된 전략 핵무기를 수천개가 아니라 수백개를 기준으로 삼아 미국 핵전력을 재구성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조건을 좁혀서 핵 독트린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핵실험과 새로운 핵탄두를 생산하지 않고도 핵무기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시를 반영하듯, 이번에 발표된 NPR은 이전 핵전략에 비교할 때, 전향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것은 사실이다.

    최초의 소극적 안전보장 천명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비핵국가에 대해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를 천명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미국은 NPT 회원국이고 이 조약상의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국가들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특히 미국과 동맹국의 재래식 군사력 및 미사일방어(MD)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돼 “(적대국의) 비핵 공격, 즉 재래식 무기와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공격을 억제하고 대응하는데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적대국이 생화학무기를 이용해 공격해도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의 소극적 안전보장에는 3가지 조건이 달려 있다. 첫째는 비핵국가여야 하고, 둘째는 NPT 회원국이어야 하며, 셋째는 NPT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NPR 보고서는 “NPT 회원국으로서 이 조약상의 의무를 완전히 준수할 때 안보적 이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핵국가들로 하여금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미국 등 관련국들과 협력할 것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미국 핵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NPT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은 예외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핵보유국들뿐만 아니라, NPT에서 탈퇴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북한과 대표적인 NPT 위반 국가로 지목받고 있는 이란은 미국의 핵선제공격 대상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NPR 보고서는 “핵보유국들과 NPT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이 미국이나 동맹·우방국들에게 재래식 및 생화학 무기 공격을 가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좁은 범위 내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적대국이 재래식이나 생화학 무기로 공격할 경우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핵 선제공격 옵션’이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NPR의 공개 문서에서는 북한과 이란을 소극적 안전보장의 예외라고 명시하지는 않았다(참고로 NPR 보고서는 관례상 공개 문서와 비밀 문서로 나눠져 작성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4월 5일자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이란을 “예외국들(outliers)”라고 부르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소극적 안전보장에서 제외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핵 선제공격 전략 유지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핵무기의 역할을 적대국의 미국이나 동맹·우방국들에 대한 핵공격을 억제하는 것에 한정하는 “유일한 목적(sole purpose)” 정책을 채택하는 것도 거부했다. 이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천명한 오바마 행정부조차도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또 다시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미국은 이러한 정책 채택 가능성을 앞으로도 계속 검토하고,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사활적인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보다 핵무기 사용 조건과 환경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핵 선제공격 전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정쩡한 입장은 미국 핵전략이 과도기적 이행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스스로 강조한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전략을 혁신적으로 바꿀 경우, 미국 보수파의 안보 공세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는 일면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핵보유국들은 물론이고 일부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핵 선제공격 옵션을 유지하면서, 과연 당면 과제인 북한과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고, NPT 체제 강화에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극히 의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예상했던 대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의 핵전략은 여전히 그 길로 가는 것이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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