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 ‘제목장사’도 이쯤 되면…
        2010년 04월 07일 09:5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의 생존 장병들이 7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등이 진행되면, 의혹을 풀어줄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군 당국이 미리 ‘시나리오’를 짜서 말을 맞추지 않았다면 말이다. 문제는 군 당국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심각하고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 혼란을 키운 것은 언론의 추측 보도 경쟁이 한 몫을 했다. 언론도 자성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중요 정보가 무분별하게 흘러나왔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비판의 대상이 언론은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은 자신들의 속보경쟁 폐해에는 눈을 감은 채 비판의 화살을 정부와 정치권 쪽으로 돌렸다.

    대북 관련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원장이 입을 열었다. 국정원과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을 법한 한겨레가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정서적으로 친숙할 것 같은 보수신문은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다음은 7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일상적인 교육비리 교육감 직선 부작용">
    국민일보 <취업애로계층 작년 比 46만명 급증>
    동아일보 <"천안함 조사결과 따라 단호한 대응">
    서울신문 <"합동조사단장 민간서 맡아야">
    세계일보 <미 "북.이란엔 핵공격 가능">
    조선일보 <작년 재정적자 43조 사상최대>
    중앙일보 <미 "비핵국에 핵공격 안겠다, 단 북한 예외">
    한겨레 <국정원장, 북한 연계 가능성 부인>
    한국일보 <천안함 절단면 공개한다>
    국가정보원장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주요 사항을 말하는 일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 국정원발 언론보도의 상당수는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나온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비공개로 보고하면 정보위원들이 언론에 핵심 내용을 전하는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된다.
      

    언론은 복수의 정보위원 얘기를 종합해 뼈대를 만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국정원장이 전한 발언의 취지는 어렵지 않게 전할 수 있다. 국정원은 대북관련 각종 정보를 총괄하고 분석하는 기관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과 관련해 국정원의 판단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한겨레 "국정원장, 김정일 위원장 승인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 한겨레 4월7일자 1면.  
     

    언론이 국정원 주장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는 7일자 1면 <국정원장, 북한 연계 가능성 부인>이라는 머리기사에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6일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이런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제 없이 1개 부대의 사령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후계구도 정리와 김 위원장의 방중 준비, 화폐 개혁에 따른 혼돈 등 북한 내부 상황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승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국정원장이 북한 연계 가능성을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도<국정원장 "사고 전후 북 특이동향 없었다">이라는 1면 기사에서 “국가정보원은 6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북한과의 관련성 유무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북 내부 상황 감안땐 연계성 부정적" 국정원도 선 그어>라는 기사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은 ‘세부 정보’를 밝힐 수 없다면서도 군 당국과 여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 어뢰 공격설’ 등 북한 연계 가능성에는 부정적이었다. ‘미국 CIA와 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만, 북한군의 도발이라면 교신 같은 게 있어야 하는 데 사건 전후로 의미 있는 특이동향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국정원, 북한 연계성 부정적"

       
      ▲ 경향신문 4월7일자 3면.  
     

    동아일보는 1면 <"북한군 통신 천안함 언급 없어">라는 기사에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6일 ‘천안함 침몰 전후로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며 ‘북한의 관련 여부를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그는 북한 연계설과 관련한 군 당국과 정치권 주장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5면 <"북, 이상동향 없었고 아직 물증 없어">라는 기사에서 “국정원 측은 또 전날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이 침몰 전후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1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취지의 언급과 관련 ‘날씨 등으로 인해 안보였을 수 있고 ‘사라졌다’는 표현은 적합치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북한 개입 가능성 상당 부분 차단"

       
      ▲ 서울신문 4월7일자 3면.  
     

    서울신문은 3면 <국정원 "북 군부 혼자 못할 일"…강경파 감행설 차단>이라는 기사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이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6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다고 밝히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북한 개입 가능성이 상당 부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북한개입설에 선을 그었다는 게 언론의 공통된 설명이다. 서울신문은 “북한 개입 가능성이 상당 부분 차단될 것”이라는 분석을 곁들였다. 북한 연계설을 흘리면서 ‘북풍 몰이’에 들어갔던 일부 보수신문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일까. 조선일보는 특이한 기사를 내보냈다. 원세훈 국정원장 발언에 대한 시각차로 보기도 어렵다. 조선일보는 5면에 < "북 연루됐다면 김정일 지시 있었을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다른 언론이 전한 내용과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 제목이다.

    조선일보 튀는 기사 제목, 무엇 때문일까

       
      ▲ 조선일보 4월7일자 5면.  
     

    조선일보는 북한 연계설에 무게를 싣고 있는 대표적인 신문 중 하나이다. 조선일보 기사 제목만 보면 국정원장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제목장사’의 정도를 넘어선 결과이다. 언론에서는 국민의 관심을 끌고자 자극적이고 튀는 제목을 뽑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때도 전체 취지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국정원장 발언의 취지 자체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은 “원세훈 국정원장은 6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시종 ‘…라면…일 것’이라는 가정법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북한이 연루됐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재가 없인 할 수 없었을 것’ ‘만일 북한이 연관됐다면 정찰총국에서 했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등으로 답했다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없는 내용을 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 연루됐다면 김정일 지시 있었을 것">이라는 기사 제목은 합당한 것일까. 중앙일보 기사는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 왜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중앙일보는 3면 <원세훈, 김태영과 ‘천안함 침몰 원인’ 미묘한 시각차>라는 기사에서 “원 원장은 ‘만약 북한이 연루됐다면 해군부대나 정찰국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니다’며 ‘이 정도로 큰 프로젝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재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 군부 강경파의 단독 소행설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원세훈 김태영 미묘한 시각차"

       
      ▲ 중앙일보 4월7일자 3면.  
     

    일각에서 북한 군부 강경파 단독 소행 가능성을 제기하자 이를 부인하는 차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재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국정원장이 답변했다는 내용이다. 서울신문이 원세훈 국정원장 설명으로 “북한 개입 가능성이 상당 부분 차단될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원세훈 국정원장는 "김 위원장의 방중 준비, 화폐 개혁에 따른 혼돈 등 북한 내부 상황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승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조선일보 기사를 ‘제목장사’로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조선일보는 ‘북풍 몰이’를 멈추지 않았다. 국정원장 기사를 실은 5면에 <“북 일부 잠수정, 추적 피하려 소리흡수 특수타일 부착">이라는 기사를 함께 내보냈다. 조선은 “북한의 상어급 소형 잠수함과 유고급 잠수정 등은 우리 소나(음향탐지장비)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소리(음향)를 흡수하는 특수 타일이 부착돼 있으며, 유고급 장수정 가운데도 구경 533mm의 중어뢰를 탑재하고 있는 모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이 북한 연계설을 증폭시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정원장까지 상반된 견해를 펼치고 나선 상황은 주목할 대목이다. ‘북풍 몰이’에 힘을 싣고 있는 언론은 청와대에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청와대 판단에 불편한 심기 전한 언론들  

       
      ▲ 세계일보 4월7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청와대와 군이 사고발생 초기부터 북한의 개입 여부를 놓고 묘한 시각차를 보여 왔고 그것이 대북 군사정보 공개 문제에서 혼선과 혼란을 부채질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는 남북관계나 6자 회담 등 국제 관계까지 고려해 포괄적 국가안보 차원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고, 군은 추후 있게 될 사고책임 추궁 범위와 정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안보 불안 키우는 ‘VIP 메모’ 논란을 보면서>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은) 군의 판단을 특정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 이 메모는 결국 의문점으로 가득찬 천안함 침몰 경위에 대해 국방장관이 국민 앞에서 얼버무리라고 지시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북 개입 가능성을 거론해서도 안 되지만 정황적으로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의도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의 이런 행보야말로 안보불안을 키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의 ‘북풍 몰이’가 태풍으로 번지기는 힘들어졌다. 청와대와 국정원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민은 사건의 실체를 궁금해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로 신뢰를 잃었다. 신뢰회복 없이는 정부가 어떤 발표를 하더라도 국민 동의를 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사설로 전한 내용은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순간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떠벌리다가는 정부 스스로 불신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