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사회주의, 미래 있나?
    2010년 04월 02일 05: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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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볼리바르와 차베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환호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만큼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베네수엘라의 실험은 벌써 십 년을 넘겼다.

그동안 적지 않은 분석과 평가가 있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그곳의 실체와 미래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혁명의 주체, 방식, 성격 등 다양한 측면의 접근이 이뤄졌다. 이러한 논의 중 부차적으로 취급되어온 것이 바로 석유 문제이다.

석유로 사고파는 혁명

일반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반미, 반제 그리고 반신자유주의적 특징에 대해서는 평가가 일치한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의 석유수출의 50% 이상이 미국이고, 미국의 석유수입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것처럼, 양국은 석유를 매개로 하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베네수엘라 석유 공급 중단시 석유가격 15% 상승을 예측했다.

그런데 이런 양상은 차베스 정권을 포함하여 일각에서 제기하는 ‘21세기 사회주의’ 모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분명 부존자원이 부족한 쿠바의 자립모델과 보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브라질의 실용노선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따라 배우는 볼리비아는 에너지 문제로 브라질과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다. 역시 석유는 피보다 진하다! 무엇보다도 21세기의 미래라고 찬양받고자 한다면, ‘에너지기후시대’인 21세기에 맞는 미래상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 우고 차베스 대통령

석유사회주의의 실험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마찬가지다. 차베스는 볼리바르 선거혁명 이후, 줄곧 쿠데타, 석유자본―노동파업, 소환투표 등 갖가지 위기를 정면 돌파하면서 일단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보인다. 다양한 사회경제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나름의 성과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현재 겪고 있는 전력부족 사태는 70% 이상을 대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가뭄이라는 기후의 탓이기도 하지만, 전력소비증가와 20년간의 설비투자 미흡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전력부족 위기로 지난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 동안을 임시휴일로 지정했다.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현실은 석유 등의 화석사회주의의 미래일 수도 있다. 2006년 영국석유회사 BP(British Petroleum) 통계를 보면,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6위, 생산량 기준 세계 8위이다. 여기다가 오리노코 강 유역의 초중질유(샌드오일)를 합산하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1위 매장국이다. 2006년도 기준으로 총 수출액의 80% 이상이 석유이다.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베네수엘라는 원유가의 주기에 따라 호황과 불황의 경제적 주기가 동조화되는 특징이 강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베네수엘라의 영광의 역사는 석유산업의 호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남미국가와 달리 베네수엘라는 농산물의 70%를 수입한다.

다만 석유이익의 분배에 따라 성장의 결과가 다르게 사회화될 뿐이다. 바로 이것이 과거 우파 정권과 현재의 좌파 정권의 차이다. 즉 차베스 정권은 석유산업의 이익을 제조, 건설, 서비스, 농업 등 비석유산업부문에 재투자하고, 다양한 사회경제 ‘미션’들을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 민중권력을 기반으로 급진적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증거로 제공되는 내용들이다.

석유는 혁명을 잠식한다

   
  ▲ 오리노코 강 유역의 중질유 벨트

베네수엘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체제이행을 위한 ‘열린 혁명’ 혹은 진행형 혁명이다. 특히 대외적인 자원외교와 기후투쟁에서는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 러시아, 이란, 아프리카, 쿠바, 볼리비아 등 반미 제3세계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2006년 유럽연합과 중남미 정상회담에서 블레어의 “넘치는 에너지자원을 세계인들을 위해 책임감 있게 사용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유럽 빈민들에게 난방용 석유를 값싸게 제공하겠다고 천명했다. 런던에서도 ‘붉은 켄'(켄 리빙스턴 좌파 런던 시장)과 시민들에게 싼 값에 석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한 카리브해 국가들에 싼 값에 공급하고 있으며(베네수엘라 석유수출의 30% 차지), 미국 뉴욕의 빈민가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반값 석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무기와 불법자금을 제공하면서 에너지를 구입하는 중국보다 분명 착한 방식이다.

특히 차베스는 코펜하겐 기후총회에서 모랄레스와 함께 기후변화의 선진국 책임론과 기후정의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기후변화 양자를 동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매우 급진적인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의, 빈국과 빈자를 위한 우호적인 석유공급만으로는 세계적인 에너지 빈곤을 해결하는데 역부족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OPEC의 결속력을 다지고(즉 쿼터를 준수하고) 석유산업의 수익성을 고려하는 것은 반대로 석유에 의존하는 빈국과 빈자들의 고통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또한 석유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상황에서는 석유라는 악마의 거래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 국내 상황도 낙관할 수 없다. 차베스는 현 상황을 신자유주의와 신사회주의의 대결로 보고 신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유법 개정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재)국유화 수단을 이행의 밑천으로 삼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 밑천을 신사회주의 이행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쓴다. 석유와 천연가스산업 확대와 산업 다변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석유공사(PDVSA)를 차베스식 엑손모빌(?)처럼 선도적인 국가기업으로 키우고자 한다.

석유권력과 녹색권력의 관계

물론 석유이익을 민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권리’처럼 일정 정도의 빈곤을 해소하고 발전을 하기 위해서 당연히(?) 화석경제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4년 기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7%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석유경제’가 ‘지속가능 경제’로 전환되는 계획과 전망이 있는지는 확실히 모호하다. 석유산업이 국내총생산의 30~40%, 재정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을 반전시킬 혁명적 수단은 무엇일까? 단지 석유공사를 장악했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전환 없이 혁명 없다. 또한 석유 불안이 정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혁명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고 멀리서 보면 비극일지 모른다.

스스로가 혁명을 이야기하고 철저한 변혁을 추구한다면 민중권력의 형태뿐 아니라 지향도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탈석유 시대에 대응하는 장기지속적인 프로젝트를 겨냥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석유 생산정점시기가 아닌 석유 풍요시대에 착수해야 함을 선진국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1992년 일으켰던 쿠데타 실패 당시, 차베스는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설정한 목표들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지금으로서는’ 이 말은 이후 저항의 슬로건이 되었다고 한다). 외부적인 녹색 시각으로는 베네수엘라는 아직도 석유시대에 머물러 있다. 석유 ‘내부에서’ 그리고 석유에 ‘대항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이중전략’은 그 전환과정에서 실제로 ‘대항하는’ 성격은 사라지고 ‘내부에서’라는 지향만 남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적은 내부에 있기 마련이다. 바로 혁명의 성공요인인 석유에 위기요인이 내재해 있다. 석유권력과 녹색권력, 이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즉 이중전략은 석유 내에서의 사회주의 이행전략과 석유 밖의 녹색 이행전략의 역동적 결합인 셈이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과거의 유산과 단절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전환시대에 맞는 이행을 병행하는 것이다.

혁명은 이중의 도약

석유 역사에서 베네수엘라는 OPEC 결성을 주도하고 수익배분과 국유화 조치 등 선구적으로 맞짱 뜬 국가였다. 당시 레페스 알폰소 에너지부장관이 밝힌 것처럼,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에 의존하던 소비에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교훈도 기억해야 한다. 석유사회주의라는 비판에 억울해 하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과 같은 입장에서는 ‘악마의 배설물’을 바로 이러한 경제사회적 프로젝트들이라는 ‘축복의 씨앗’으로 변환시키고 있다고 반론한다.

그런데 에너지기후시대에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석유가 어느 정도 있어야 사회적 경제 혹은 신사회주의 경제로 전환할 수 있을까? 설마 마지막 한방울까지? 막대한 환경피해를 유발하는 오일샌드까지? 지금까지의 ‘경제혁명’ ‘정치혁명’ ‘문화혁명’에 대한 분석에는 ‘에너지혁명’에 대한 주제가 생략되어 있다.

에너지전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브라질과 미국의 바이오연료 공동개발 협력에 대해 쿠바와 함께 브라질을 비난했으나 점차 강도를 낮추며 브라질산 에탄올 수입에 적극적으로 선회했다는 정도이다.

‘남미 특유의 포퓰리즘’이니 ‘가짜 사회주의’이니 규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속불가능한 사회주의냐, 지속가능한 사회주의냐라는 문제제기도 필요한 시점이다. 자연―사회관계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전략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혁명은 이중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와 동시에 화석사회에서 녹색사회로의 도약. 베네수엘라 볼리바르에서 더 많은 녹색혁명에 대한 영감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인가? 관념인가? 아무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에서의 석유혁명만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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