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산층’ 붕괴의 의미는 무엇?
        2010년 04월 02일 0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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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황

    이른바 ‘중산층’의 붕괴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16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OECD 기준 2009년의 중산층 비중은 66.7%로 나타났다. 2003년의 70.1%에 비해 6년 만에 3.4%포인트, 약 50만 안팎의 중산층 가구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2003년의 신용카드 위기 이후 중간계급의 지위 하락이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MF 이전과 비교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1992년에 중산층의 비중은 75.2%에까지 도달한 바 있다.

    OECD 기준의 중산층 비중은 중위소득의 50~150% 사이의 소득을 얻는 ‘중간소득 계층’ 가구의 비중을 말한다. 여기서 중위소득이란 소득수준이 꼭 절반에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즉, 중위소득을 경계로 그 이상의 소득을 얻는 가구가 50%, 그 이하의 소득을 얻는 가구가 50%가 된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의 중위소득은 약 월 304만원이므로 중산층 가구의 소득은 약 월 150만원에서 450만원의 범위 내에 들어 있다.

    통계청 발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간단한 사실부터 밝히면,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소득보다 낮다. 이로부터 평균 이하의 소득을 얻는 가구가 절반이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위소득자로의 부의 집중이 심해진 탓이다. 2009년에 2인 이상 가구의 평균소득은 약 월 340만원이므로 중위소득과 40만원 가까이 차이를 나타낸다.

    혹 이번 발표를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들은 상위층 가구의 비중이 빈곤층 가구의 비중보다 크다는 점을 의아스럽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2009년 현재 빈곤층 가구 13.1%, 상위소득 가구 20.2%)

    그 비밀은 평균소득과 중위소득 사이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중위소득이 평균소득보다 월등히 낮은 경우가 종종 나타나다 보니 소수 상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라는 소득 불평등 상황을 OECD 기준이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 주: 2인 이상 도시가구의 가처분소득 기준. 중산층 비중은 중위소득 50~150% 범위 기준. 자료: 통계청 KOSIS DB

    또한 이번 발표에서 제외된 가구를 포함시킬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번 발표는 2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최근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를 포함시킨다면 이른바 ‘중산층’의 비중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1인 가구의 소득수준 분포가 2인 이상 가구의 소득수준 분포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고, 농어촌 가구의 소득수준 분포 역시 도시 가구의 소득수준 분포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구고령화와 핵가족화 문제, 지역간 소득 불평등 문제를 더 엄밀하게 고려한다면 ‘중산층의 몰락’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자산과 소비 압박으로 확산 중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중산층 비중의 감소를 소득 수준에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보통의 국민들이 인식하는 중산층은 단지 소득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중산층이란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고 자동차와 적절한 문화 생활, 그리고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여력까지를 갖고 있는 계층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중산층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단순히 분배 양태만을 따지는 OECD 방식이 아니라 문화적 자율성에 대한 욕구, 소비주의적 행태, 자산 소유와 교육의 기회까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중산층의 붕괴 현상에 대한 설명들이 ‘계급적 분석’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깊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이러한 총체적 인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산층 붕괴의 실상은 소득 분배 측면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측면을 분석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작성되고 있지 않으나 한국사회에서 자산 불평등과 소비 불평등의 정도는 소득 불평등의 정도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자산 불평등의 경우 지니계수가 0.7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자료는 국회예산정책처(2010), “가계자산에 대한 지니계수 추정과 소득지니계수와의 비교” 참조)

    일반적으로 지니계수는 0.3을 넘기면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인정된다. 2008년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소득 지니계수는 0.321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도 높은 것이지만, 자산 지니계수는 그 배에 육박하는 셈이다.

    다음으로 소비 불평등과 중산층 붕괴 현상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여기에는 이른바 ‘자유재량(discretionary) 소득’의 틀이 유용한 설명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재량 소득이란 전체 소득 가운데 필수적 재화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것을 뺀 나머지 소득을 말한다.

    중산층의 소비행태에 대한 연구에서는 중산층을 1/3 이상의 자유재량 소득을 얻는 계층으로 정의하고, 자유재량 소득은 주로 각종 소비재와 의료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소비에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종류의 서비스와 재화는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물질적 풍요의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풍요의 증거’로 인식되었던 사교육에 대한 소비가 점점 경직성 경비로 변화되면서 가계를 압박하고 있고, 의료 위험에 대비한 금융비용의 부담은 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자유재량 소득’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 주: 실질경상소득 대비 비중. 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 자료: 통계청 KOSIS DB

    가계경제의 진보적 재구성을 고민할 때

    ‘중산층’의 몰락은 흔히 양극화로 설명되어지곤 한다. 사회계층이 양 극단으로 편재되는 현상을 종종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소득과 소비 계층이 엷어지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계층 내에서의 경쟁 압력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또한 중간계층의 몰락은 계층간 이동을 어렵게 하므로 계층간 갈등도 높아질 개연성이 높다. 중간계층은 사회적 여론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경제적 지형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중산층과 서민 중심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가지 정책을 내어 놓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 주거 부문에서 ‘보금 자리 주택’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 가계의 붕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평등’에 있는 만큼 이러한 정책들이 결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과 금융의 대형화, 독점화에서 시작되고 ‘가계 부채’와 ‘노동소득의 하락’,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으로 귀결되고 있는 가계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우리가 답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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