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고향>
    By 나난
        2010년 04월 02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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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년 서클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선배들과 같이 보러 간 공연은 애오개 소극장에서 열린 [가지꽃]이었습니다. ‘한돌의 노래야’라는 부제가 붙은 것처럼 한돌의 노래로 이야기를 엮고, 그것을 노래와 대사로 연결해 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대 한소리 출신의 79학번 박미선과 성대 76학번으로 민요연구회 창단 멤버이며, 노동자 노래단과 꽃다지 초대 대표를 지낸 김애영, 두 명이 등장하여 진행한 공연 [가지꽃].

       
      

    가난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여성노동자의 이야기인데 <초가을>, <소>, <땅>, <가지꽃>, <난 서울간다>, <휴무일>, <오늘만 넘기면>, <외사랑>, <갈 수 없는 고향> 등의 노래를 이어가며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일상적 언어로 다룬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서울 간다… 오늘만 넘기면…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내의 집회나 행사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대학 내 대중 집회도 늘어났죠. 시위의 강도도 높아지고, 학도호국단 내에 학생운동 세력이 들어가 대학축제를 대동놀이와 같은 연행예술운동의 성과로 채운다거나 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비단 대학 내의 분위기만은 아니었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의 충격과 패배감으로부터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민운동진영이 일정한 세력을 회복하고 각 이념서클이 조직적으로 회복하며 운동권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재야단체라고 불리는 민민운동단체들도 발족하게 됐지요, 83년 가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시작으로 84년 4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출판운동협의회, 민주교육운동협의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85년 3월에는 이러한 민민운동단체들의 협의체적 연합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발족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니 84년이야말로 80년대 초반의 패배를 딛고 상승하는 분위기의 최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이하 민문협)의 발족은 그 이전까지 수용자들에 의해 주도되던 노래문화를 본격적인 노래운동으로 이끌어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0년대 탈춤, 마당극 운동을 주도하던 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소극장운동, 소집단 운동으로 존재하던 문예운동이 그 소집단들의 협의구조인 민문협이라는 조직을 발족하게 되었는데, 당시 노래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노래분과로 창립을 하게 됩니다.

    80년대 초반 자유화의 최정점에서 생겨난 민문협

    메아리와 한소리, 석화 등을 중심으로 교류를 해오던 70년대 말~80년대 초반 민중가요 세대들은, 일부는 현장으로 이전을 하였고, 일부는 문화운동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 중 문화운동으로 남은 집단이 바로 나중에 ‘새벽’이라 이름 붙여진 민문협 노래분과의 초창기 멤버들입니다. 문승현, 표신중, 이현관, 박미선, 이미영, 조경옥, 김광석이 주축이 되었고, 후에 문대현, 윤선애, 안치환 등이 결합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84년 봄 애오개 소극장에서의 한돌 노래이야기 [가지꽃]을 시작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 발매(서라벌음반), 가을 [또 다시 들을 빼앗겨]라는 공연을 올리는 아주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공연을 관람하러 가면 민민운동권의 대부분 선배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러왔고, 서로 인사하고 뒤풀이를 하곤 했었습니다.

    공연도 단순히 노래를 이어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마당극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부분 극적인 구조를 가지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거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 당시 민중가요 서클들의 정기 공연이나 대동제 공연이 대부분 노래극이었던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은 아마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서클방에서 악보를 보며 조금씩 노래를 배우고 우리끼리 해석하여 화음을 만들어 부르던 것과는 다르게 어쩐지 전문적으로 보여지는 연주와 노래실력을 가진 선배들의 공연은 가슴을 울렸고, 그야말로 노래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초기 새벽의 활동이나, 노래들도 지식인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후에 지식인 정서라든가, 소시민의 정서라는 일부의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고향> 역시 노동자들을 연민적 시선으로 그려낸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 당시 실제 노동자 현실의 한 단면을 그려낸 서정적인 일상가요로 많은 이들에게 불린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84년 제작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박미선의 목소리로 수록되어 그 당시 느낌 그대로 감상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갈 수 없는 고향>

    한돌 작사, 작곡

    1. 저 멀리 저 산 마루에 해가 걸리면 쓸쓸한 내 맘에도 노을이 지네
    물결 따라 출렁이는 그리운 얼굴 어두운 강 내음이 내 맘을 적시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2.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내 고향 산 마루도 그리워지네
    뜨겁던 지난 여름날 더운 바람 속에 설레이던 가슴안고 서울로 서울로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음원:[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중에서 박미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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