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 교대제 근무는 발암물질"
        2010년 04월 01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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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석면은 1970년대까지 미국의 공사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절연 물질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석면이 폐암 혹은 악성 중피종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만, 당시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매일같이 만지고 사용하는 물질이 암을 유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거예요.

    교대제 근무가 발암물질인 이유

      

    불안하면서도 ‘설마 이렇게 다들 사용하는데 이걸 만진다고 암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석면만이 아니었겠지요.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고무 공장에서 벤젠을 만지던 노동자들도, 크롬으로 도금하던 노동자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덴마크 직업병 판정위원회는 2008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다름아닌 야간 근무를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발암물질로 인정한 것이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1주일에 한 번 이상 20년에서 30년 가량 야간근무를 했던 여성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산재보험으로 보상하라는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가족력과 같은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요. 그 결과 간호사, 비행기 승무원 등의 직업을 가졌던 38명의 여성 노동자가 산재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http://www.ask.dk/sw25371.asp)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 중 15%에서 20%가 교대제 근무를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몇 %나 될까요. 짐작하건데, 20% 보다 결코 작지는 않을거예요.

    병원 노동자들, 방송국 노동자들, 운송 노동자들, 제조업 노동자들. 주변을 둘려보면 야간 근무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발암물질이라니요. 석면이, 크롬이 혹은 흡연이 발암물질인 것은 짐작할 수 있는데, 밤에 근무하는 것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납과 같은 등급

    덴마크에서의 판정은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한 기존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08년에는 30여 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한 결과, 비행기 승무 노동자에서 70% 가량, 다른 교대제 근무자의 경우 40% 가량 유방암 발생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논문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야간 근무의 어떤 요소가 암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질문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고 또 여러 실험 결과들이 그것들을 뒷받침했습니다. 예를 들어, 밤 시간에 빛에 노출이 되면, 수면 리듬을 파괴되고 또 멜라토닌이라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호르몬 생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기구(IARC :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결정이었습니다. 2007년에에서 24명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야간 교대제 근무를 유력한 발암물질(IARC 2A, Probable Carcinogen)으로 정의한 것이지요.

    이 말은 흡연이나 석면이 속한 발암물질 그룹(IARC 1, Carcinogen) 바로 아래 등급에 야간 교대제 근무가 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물질에는 납, 디젤엔진 연소가스가 있습니다.

    보통 특정 화학물질이 발암물질인가 아닌가 여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는 국제암연구기구가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이라고 규정한 이 결정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20만년 진화와 충돌하는 자본주의 노동환경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야간 교대제가 인간 몸에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인류의 조상을 어디까지 따라 올라갈 수 있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2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야간 근무제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인 근무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빛에 노출이 되어 일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지내며 그러한 자연 조건에 맞추어서 인류는 진화해 왔던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또 전기가 발명되면서 밤에도 낮처럼 일할 수 있는, 혹은 일해야만 하는 상황과 조건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지요.

    과학자들이 야간 교대제가 생체리듬 을 파괴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20만년 가까이 진화하며 낮과 밤에 길들여진 인간의 몸이 불과 수백년 전에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되는 노동 환경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의 다른 표현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슷한 문제가 또 다른 유방암과 난소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타민D 합성에서도 발생합니다. 야간 교대제가 밤 시간에 노동자를 빛에 노출시켜 생체리듬을 파괴한다면, 비타민D 결핍은 낮시간에도 건물 안에서 일하면서 태양 빛에 노출되지 못해 생겨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어, 감사해야 하나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봅니다. 한국보다는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유럽국가들에서도 덴마크 직업병 판정 위원회의 결정은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직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로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걱정이 됩니다. 석면처럼, 벤젠처럼, 흡연처럼 처음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규제가 지연되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암물질로 밝혀졌던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게 될까요.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남짓하고, 작업장에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시키는 일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가 넘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를 늘려 여성 일자리를 더 마련하겠다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야간 교대제가 유력한 발암물질이라는 과학적인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야간 교대제를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감사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아닌가요. 암에 걸리면 보상해주면 되는 건가요.

    덴마크에서 스칸디나비아 항공 비행기 승무원으로 30여년을 일하고 나서 유방암에 걸렸던 울라 만코프씨는 산재보상 결정이 난 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http://news.bbc.co.uk/2/hi/uk_news/scotland/7945145.stm)

    “만약에 제 직업이 암을 유발하는 줄 알았더라면, 저는 직업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로요. 암으로 죽는 것이니까요. 저는 살아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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